이중섭-1
아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홍콩 그중에서도 작고 조용한 섬입니다. 지하철도 없고, 패스트푸드점도 없는 대부분의 홍콩사람들은 선호하지 않는 작고 작은 섬입니다.
이곳에 있으며 홍콩의 시위, 코로나를 다 겪어내었죠. 특히나 3년간 코로나를 겪으며 내가 사방이 아파트로 둘러 쌓여있는 도시에 있었다면 더 버텨내기가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즘도 일이 있어 시내에 나갔다 돌아오면 ‘하, 조용하고 좋다.’하는 생각을 하니까요.
아이는 학교로 남편은 회사로 돌아가며 일상을 되찾으니 홀가분한 마음이 제일 크지만, 가끔은 ‘오늘은 무얼 하며 하루를 재미있게 보내야 하나’ 하는 생각만 하며 하루하루를 충실히 보내던 그때가 생각나곤 합니다. (물론 그때로 돌아가고 싶진 않습니다.) 아이와 함께 해변에서 모래놀이, 꽃게잡이 하며 보낸 평온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 깊은 곳에서 고요하고 평화로운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평화롭던 한때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이중섭의 그림이 있는데요. 이중섭이 1950년대에 그린 것으로 알려진 애들과 물고기와 게입니다. 아이 둘과 물고기 그리고 게가 어우러져있는 모습을 가만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이 그림의 배경인 제주도의 작은 단칸방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던 그때가 이중섭에겐 가장 평온했었고, 평생을 애가 타게 그리워하던 날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이 그림은 이중섭이 아내와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사무치는 그리움에 죽어가며 그린 그림이라고 합니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나의 가족을 떠올리며 외로움과 슬픔으로 지쳐가는 이중섭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마음 한편이 아려오는 것 같습니다.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시대에 살았던 이중섭의 삶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으로 계속되는 피난생활, 끊임없이 가족의 안전과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불안정한 상황의 연속이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은 항상 편안함,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던 와중에 마주한 제주에서의 삶은 풍족하진 않았지만 잠시라도 현실을 잊고 오롯이 가족에 집중할 수 있는 소중한 한 때이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중섭의 그림 중에는 유난히 아이와 자연이 평화롭게 어우러지는 그림이 많은데요. 아이들의 표정이 평온하여 보는 이도 자연스레 미소를 짓게 합니다. 제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늘 무언가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크게 태교를 하진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미안한 마음을 달래보고자 곁에 두고 자주 보던 그림이 있는데요. 이중섭의 해와 아이들이라는 그림입니다.
커다란 해가 꽃밭에 평화로이 누워있는 아이들을 커다란 해가 따뜻하게 안아주고 있는 듯 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임신기간을 해외에서 보내며 문득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병원에 가야 하면 어떡하지? 남편이 출장 중에 응급상황이 생기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들 때 이중섭의 그림을 보면 그림 속의 해와 아이들이 ‘괜찮아 다 잘 될 거야.’라고 다독여 주는 것 같아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내 마음에 위로를 주던 그림이 전쟁 중에 그려졌다고 하니 믿어지시나요?
3년간 코로나를 겪으면서 가고 싶을 때 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절망감, 언제 코로나에 걸려 격리소에 가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가 게임의 퀘스트 같았죠. 하루를 잘 보내고 나면 ‘아, 그래도 무사히 하루가 갔다.’하는 마음에 안심이 되었으니까요.
저에게 코로나로 불편한 시기는 기껏해야 3년이었지만 너무나도 지겹고 끝이 보이지 않아 막막한 마음이 컸는데요. 평생을 일제수탈과 한국전쟁으로 혼돈 속에 살아왔던 이중섭은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이다지도 따뜻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요?
전쟁 중에도 그의 마음속 한편에는 아이들과 함께 뛰노는 평화로운 세계가 있었던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