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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atre Romance Nov 29. 2019

극장, 여행자.

극장이 좋아서  극장을 공부하고,  극장에서 일하고, 극장에 갑니다.

어쩌다 흘러온 연극. 어쩌다 흘러온 극장


 나는 사실, 극장에 일절 관심이 없었다. 그냥 가릴 장르 없이, 예술이 좋아서 막연하게 예술경영이라는 학문을 공부하게 된 멍청이에 불과했다. 예술의 모든 것이 좋지만 할 줄 아는 예술은 없었던 그땐, 예술경영이라는 학문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막연히 시작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님을 지금은 안다.)

 영상 비즈니스를 공부하다 어떻게든 예술경영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해 다니던 대학을 때려치우고 예술경영을 공부할 수 있는 대학에 다시 입학했다. 그때 당시 내가 다녔던 학교는 예술경영 전공으로 입학할 수 있던 과가 3개였다. 연극과, 방송영상과, 영화과. 나는 어느 과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할지 선택해야 했다.


 학창 시절과 스무 살의 나는 인디음악과 EDM을 좋아했다. 머리가 좀 컸던 중학생 때부터 부산에서 혼자 서울에 올라가 인디밴드들의 공연을 보기도 했고, 곧 죽어도 가보고 싶었던 홍대 거리에도 갔었다. 한창 유행이었던 록 페스티벌도 가보고, 20살이 되고 나서는 그토록 원했던 EDM 페스티벌에도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음악과 페스티벌을 좋아했고, 막연히 페스티벌 기획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방송매체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방송영상과는 선택권 밖이었다. 영상 비즈니스를 공부하고 있었기에 영화과의 예술경영 전공으로 입할할까 고민했지만, 페스티벌 기획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연극과로 진학하기로 했다. 페스티벌과 연극이 무슨 연관이 있느냐 하겠지만 그때 당시의 나는 페스티벌 또한 무대 예술이고, 무대 위의 예술을 기획, 경영하는 것을 배우고 싶었기에 연극과로 진학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내가 한 가장 멍청한 선택 중 하나였다. (아니, 멍청하다기 보단 어느 과에서도 페스티벌이나 콘서트에 관련된 경영을 배울 수 있는 학교가 아니었던 것이다!)


연극이라곤 중학교 때 부산의 작은 소극장에서 본 <서툰 사람들>이라는 연극이 전부였다. 즉, 나는 연극의 '연'자도 모르고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처음 입학해서 들은 수업이 연극 개론이었다. (연극 개론은 학창 시절, C를 받은 유일한 수업이 되었다.) 나는 교수가 당최 무슨 말을 해대는 건지 알 길이 없었는데 동기들은 끄덕끄덕 열심히 듣는 것이었다. 입학 후에 알게 된 건, 나 빼고 다들 연극에 열정이 넘치는 친구들이라는 것. 다들 연극이 하고 싶어서 이 학교에 왔다는 것. 나 하나 빼고.


짐작하겠지만, 나는 예술경영학과에 입학한 것이 아니라 연극과에 예술경영 전공으로 입학한 것이었다. 즉, 내가 진학한 학교는 연극에서의 (더해서 뮤지컬과 같은 극예술, 무대예술에서의) 예술경영을 공부하는 곳이었지, 예술경영 그 자체의 학문만을 공부하는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예술경영 전공 수업이 따로 있었지만, 학교의 주 커리큘럼은 연극을 배우고, 연극을 만드는 것이었다. 물론, 당연히. 연극과 이니까!


 1년을 버텼다. 여전히 연극에 '연'자도 모르고, 연극에 '연'자에도 흥미가 없는 상태였지만, 어렵게 들어왔다는 이유로 1년을 버텼다. 팔자에도 없는 연기 수업도 듣고, 연극 제작에도 참여했다. 하기 싫다고 징징대며 대사가 단 한마디인 배역을 떠맡아 무대 위에 서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기억은 끔찍하다.)

그렇게 2학년이 되었고, 2학년 1학기를 보내고 나서야 나는 도저히 주변 동기들과 선후배들의 열정을 따라가기엔 벅차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열심히 하고 싶은 의욕이 들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관심과 흥미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굉장히 비참해졌다. 모두가 100%의 의욕과 열정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 나만 나태하고 무관심한 1인이 되어본 적이 있다면 그 비참한 기분을 알 것이다.


결국, 휴학을 했다. 3학기 동안 맘 붙일 곳 없이 학교를 다니다 보니 눈은 자연스럽게 밖으로 쏠렸다. 영어 공부도 하고 싶었고 막연히 외국에 가고 싶었다. 엄마를 졸랐다. 그렇게 어학연수를 떠났다.


어학연수로 선택한 나라는 영국이었다. 음악을 좋아했고, 페스티벌을 여전히 좋아하던 나에게 영국은 늘 궁금했던 나라였다. (엄마 미안) 브리스톨이라는 작은 소도시에서 9개월을 보내기로 했다. 연극의 '연'자를 모르던 것처럼 그때의 나는 영어의 '영'자도 모르던 때였다. (물론 지금도 잘 모른다) 외국까지 갔으면 되든 안되든 열심히 놀고 말을 할 기회를 만들어야 했는데, 소심하고 바보였던 나는 무식하게 도서관에서 공부만 했었다. 당연히 영어실력은 늘지 않았다. 4~5개월을 영국에서 보냈는데도 아직 입을 여는 것이 어려웠고, 당연하게 슬럼프가 왔다.


슬럼프가 오니 나만 이렇게 한심하게 사나 싶었다. 과거를 들춰보았다. 내가 작년엔 뭘 했더라. 친구들은 뭐하지? 학교 동기들은 뭘 할까. 궁금해졌다. 페이스북이 한창 시작되던 때였다. 페이스북에 들어가 보았더니 동기들은 여전히 학교생활에 열심히 었고, 몇몇 친구는 체홉의 '벚꽃동산'을 준비 중이었다. 궁금해졌다. 내 동기들은 연극의 어느 부분이 그렇게 좋아서 저렇게 열심히일까. 새벽 2~3시까지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고, 의상을 만들고, 무대를 만들고 소품을 만드는 것일까. 어떤 것이 좋아서 저렇게나 열심히일까.


답답해졌다. 어떤 것이 좋아서 저들이 저렇게 열심히 공부하는지, 무엇 때문에 저렇게 열정을 쏟는 것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다시 한번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심해졌다. 알려고 시도하지도 않은 내가 한심해졌다. 동기에게 연락해 희곡 벚꽃동산 대본을 보내달라 부탁했다. 카페로 가서 티 한잔을 주문하고 앉아 벚꽃동산을 읽었다. 한심하고 비참한 시간들에서 벗어나자고 생각했다. 줄을 그어가며 처음으로 찬찬히 대본을 읽어 보았다.


 벚꽃동산을 읽은 이후 가끔 또 다른 희곡을 읽고 가끔 극장에 방문했다. 음? 음. 재미있었다. 점차 내가 사는 이 지역엔 무슨 공연이 있나, 무슨 극장이 있나 구글에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극장에 방문하는 내가 낯설면서도 신기했다. 하나도 못 알아듣는 공연들을 보면서도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들은 즐거웠다. 극장 외관을 찬찬히 살펴보고, 어떤 브로슈어를 내고 있는지, 어떤 프로그램들이 있는지 보는 게 점차 흥미로워졌다. 극장 안에 들어가 자리에 앉으면 주변의 관객들이 떠드는 소리도 묘했다. 그러다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고 주위가 조용해지는 그 순간도 좋았다.


나는 가끔에서 자주 극장을 방문하기 시작했고,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는 그 시간들을 기다리게 되었다.


졸업은 해야 했기에 학교에 다시 가긴 해야 했지만,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어학연수의 끝 즈음에는 학교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연극의 '연'자도 모르지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복학을 했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극장을 좋아하게 되었다.

서서히 공연에 물들고, 극장이라는 공간에 물들었다.

나는 극장을 좋아하고, 극장에서 일하고, 극장을 여행하고, 극장을 탐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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