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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atre Romance Dec 31. 2019

마치, 연극 장면 속에 있는 것 같은

Royal Shakespeare Theatre

 영국 중부의 아름다운 마을, Stratford Upon Avon. 스트랫퍼드 어폰 어반에 들어서는 순간, 당신은 그가 살았던 중세 시대로 시간여행을 하게 될 것이다. 유유히 흐르는 에이번 강가 주변으로 거리는 온통 독특한 16세기 튜더 양식의 나무집들로 가득하다. 금방이라도 길가에는 꽃과 과일을 파는 상인들이 거리를 메울 것 같고, 나무집 2층 창가에서는 정갈한 머리 두건을 쓰고, 하얀 앞치마를 맨 소녀가 고개를 내밀 것만 같다.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나무집들 사이 골목골목을 걸으며 고풍스러운 장식의 간판들을 바라보면 독특한 점을 깨닫게 된다. 거리 곳곳의 가게 이름들이 하나같이 공연, 연극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막을 뜻하는 Act, 희곡에 등장하는 인물들, 희곡의 제목들이 간판에 새겨져 있다. 그뿐 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에 호기심을 품고 다가가 보면 배우들을 만날 수 있다. 배우들은 희곡 속 인물들을 열연 중이다. 거리에서 펼쳐지는 무대를 구경하며 아름다운 강이 흐르는 이 목가적인 마을을 걷고 잇노라면, 마치 연극 무대 위를 거니는 희곡 속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이다. 이쯤 되면 이 마을은 어떤 곳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River Avon ©sungyeon Park

 스트랫퍼드 어폰 어반은 바로 영국의 위대한 시인 셰익스피어가 태어나고 또 죽은 후 그가 묻혀있는 곳이다. 이 곳에는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생가도 있고, 그가 묻혀있는 성당도 있다. 대문호의 생애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마치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존재 없이는 마을의 모든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이 느껴진다. 모든 것은 셰익스피어와 맞닿아 있다. 그의 손끝에서 나온 유려한 문장들과 그가 탄생시킨 수많은 인물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유명한 희곡들과 시까지, 그는 마을 곳곳에 물들어 있다. 이 마을은 위대한 시인 그 자체다.


 이런 곳에서 그의 작품들을 감상하지 못한다면, 스트랫퍼드 어폰 어반은 반만 알고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행히도, 당신은 이 마을을, 그리고 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곳엔 그의 희곡을 가장 활발히 무대 위에 올리는 Royal Shakespeare Company(이하 RSC)의 본거지인 극장이 있기 때문이다.

출처 : https://www.rsc.org.uk/your-visit/our-theatres/ © RSC

극장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RSC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RSC는 세계적인 연극 제작 극단으로,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을 현대극으로 각색한 작품들을 제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동시대 작가들의 희곡으로 창작 작품을 제작하기도 한다. 최근엔 뮤지컬 제작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RSC를 들어본 적은 없어도, 뮤지컬 마틸다는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뮤지컬 마틸다는 RSC가 제작한 메가 히트작 뮤지컬로 브로드웨이 진출은 물론 국내에서 라이선스로 공연되기도 했다.)

 RSC는 매해 약 20 작품 정도를 제작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약 1000여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기도 하다. 여타 제작 단체들처럼 기본적인 무대, 의상, 소품을 만드는 상주 직원들은 물론, 셰익스피어 작품에 필요한 무대용 갑옷, 무기 등을 제작하기도 하고 가발을 직접 제작한다. 단연 이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RSC는 이들의 본거지인 스트랫퍼드 어폰 어반 뿐만 아니라, 런던 외 뉴캐슬 등 지역으로 진출해 공연을 상연하기도 하고, 해외 진출도 매우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2020년에는 RSC의 작품 중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명동예술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다고 하니 궁금하다면 예매해볼 것!)


 돌아와서 RSC가 상주하는 극장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스트랫퍼드 어폰 어반 기차역에서 내려 셰익스피어의 생가가 있는 도심을 중심으로 마을을 탐색하다 보면 마음까지 평온해지는 River Avon에 닿을 것이다. 스트랫퍼드 어폰 어반을 가로질러 흐르는 에이본 강 옆에는 RSC가 상주하는 3개의 극장을 만날 수 있다. Royal Shakespeare Theatre, Swan Theatre, The Other Place가 바로 그곳이다.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과 스완 극장은 waterside에, 디 아더 플레이스는 조금 떨어진 Southern Lane에 위치해 있다.


출처 : https://www.rsc.org.uk/your-visit/royal-shakespeare-theatre / Photo by David Tett © RSC


 우선 RSC의 메인 극장인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을 먼저 살펴보자. 이 극장은 원래 1879년에 개관하고 1932년 화재로 소실된 Shakespeare Memorial Theatre가 있었던 인접한 부지에 같은 해에 다시 지어졌다. 이후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이라는 이름은 RSC가 설립되고 1년이 지난 1961년에 정착되어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이 극장 또한, 셰익스피어 시대 작품의 특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일명 One-room 형태로 배우와 관객이 같은 공간을 함께 사용하고, 무대는 관객 쪽으로 돌출되어 있어, 관객들이 무대 삼면을 둘러싸고 앉는 형태이다. 이 One-room 형태의 극장은 우리네 원형무대처럼 관객들과 소통하고 좀 더 가깝게 극적 경험을 할 수 있는 형태라 할 수 있다.

 2010년에는 리노베이션을 통해 재개관을 했는데, 현재는 1018석의 객석을 가지고 있으며, 배우와 스태프는 물론 관객들에게도 편리한 형태로 디자인되었다. 전에는 없던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여 장애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으며, 루프탑에는 에이번 강을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게 레스토랑을 마련하고, 관객들이 쉴 수 있는 카페와 테라스도 새롭게 만들어졌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이 정말 중세시대의 극장에서의 체험을 방불케 한다면,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은 그에 비해 훨씬 더 현대적이고, 심지어는 위압적으로 느껴진다. 무대나 객석의 형태는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의 그것과 비슷하나 목조건물이 아닌 철제로 지어져 훨씬 현대적이고 차가운 느낌에다가, 또한 야외극장이 아닌 실내극장의 형태라 더욱 그러하다. 나는 가난한 여행자로, Upper Circle좌석 중에서도 거의 무대 뒤쪽처럼 느껴지는 좌석에서 Tempest를 관람했는데, 배우들의 앞모습보다는 뒷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을 정도로 좌석 위치는 좋지 않았지만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불법 격투기 도박장에 온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극장 자체에 있는 것만으로도 독특한 경험이었다. 

Tempest를 상연한 Royal Shakespeare Theatre (2012) ©sungyeon Park


다음은 스완 극장이다. 1986년에 첫 문을 연 스완 극장은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보다는 조금 작다.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과 로비, 박스오피스, 레스토랑을 같이 쓰는 형태다. 객석은 426석으로 무대 형태는 로열 셰익스피어의 그것과 동일하게 돌출된 형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차가운 철제 느낌의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과 달리 따뜻한 느낌의 나무로 객석과 난간 등이 만들어져 있고, 그 사이사이에 빨간 객석 의자가 포근해 보인다는 점이다. 로열 셰익스피어와 또 다른 점은 객석 플랜이다. Stall, Circle 등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Ground, Gallery로 구분되어 있다. 이렇듯 무대나 객석이 언뜻 보면 런던의 사설극장 형태와 비슷해 보이지만, 차이가 있다면 아름다운 문양의 파사드는 없이 벽돌로 된 벽이 무대 위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이 극장 또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동시대에 맞게 각색한 작품들, 또는 현대 극작가의 작품들을 상연한다.

출처 : https://www.rsc.org.uk/your-visit/swan-theatre Photo by David Tett © RSC


 마지막으로 디 아더 플레이스를 살펴보자. 스튜디오 형태 극장을 갖춘 이곳에서는 공연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벤트들을 진행 중이다. 매주 목요일마다 무료 재즈 공연이나 무료 라이브 음악 공연, Bright Smoke라는 이름 아래 희곡이나 시 따위의 낭독 이벤트도 있다. 이곳에서는 이들이 소장하고 있는 4만 점이 넘는 의상들도 대여도 가능한데, 공연이나 TV, 영화 산업에 필요한 전문직들만 대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학교나 대학, 스타일리스트, 포토그래퍼, 심지어는 개인이 파티에 입고 싶어서 대여하는 것도 가능하다. From page to stage라는 투어도 있다. 투어 명에서 알 수 있듯이 공연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체험해 볼 수 있는 투어다.


출처 : https://www.rsc.org.uk/your-visit/the-other-place Photo by Sam Allard © RSC


 매년 약 2.5만 명의 관광객이 스트랫퍼드 어폰 어반에 방문하고 1만 명 이상의 관객이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에 방문한다고 한다. 마을을 방문한 상당수가 극장에도 방문한다는 말이다. 그만큼 이 마을에서 셰익스피어와 그의 연극은 중요하고, 극단과 극장의 영향력 또한 상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에게도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이 아름다운 마을에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 특별한 공간에서 세계적인 극단과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선보이는 무대를 놓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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