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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atre Romance Apr 01. 2020

클래식 고어들의 성지

Berliner Philharmonie

전 세계의 클래식 애호가들이 베를린에 가야만 하는 이유. 베를린에 간다면 꼭 들려야 할 곳. 단연 압도적인 공간. 바로 베를린 필하모니 (Berliner Philharmonie)이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인 베를린 필하모니커(Berliner Philharmoniker)의 상주 공연장이기도 한 이곳은 클래식 고어들의 성지다.


출처 : https://www.berliner-philharmoniker.de

베를린 필하모니는 베를린 문화예술의 중심지라고도 할 수 있는 포츠담 광장 옆에 위치해 있다. 1960년 9월 15일, 새로운 공연장 건립을 위한 첫 삽을 뜬 이후, 공교롭게도 1961년에 동독과 서독을 나누는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면서 공연장의 위치는 서독 외곽지역이 돼버렸지만 이후에 다시 장벽이 붕괴되며 베를리너 필하모니는 베를린의 음악적 심장의 역할은 물론 도시의 랜드마크 중 하나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나 이 밝은 노란색의 독특한 형태의 건물 외관을 본다면 그냥 지나치지는 못할 것이다. 전통적인 공연장인 육중한 사각형이 아닌 사방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지붕의 형태는 언뜻 보면 서커스를 위한 공연장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특이하다. 독특한 생김새 덕분에 카라얀의 서커스(Zirkus Karajani), 콘서트 상자(Konzertschanchtel)이라는 별명도 있다고 한다.

 

©David Burghardt (cool cities)

 클래식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고 말해도 무방한 내가(흥미 또한 전혀 없다), 베를린 영화제에서 영화를 관람을 위해서 방문했던 베를린 여행의 빠듯한 일정에도 이곳 방문을 빼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빈야드(Vineyard) 스타일 무대의 웅장하고도 우아함을 품은 그 품격 있는 자태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주로 극(劇)을 다루는 극장을 찾는 나에게 베를린 필하모닉은 미지의 세계나 다름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때 당시 한국에는 빈야드 스타일의 무대를 갖춘 공연장은 없었기에 그 공간이 주는 에너지와 위압감을 직접 경험하고 싶었다. (지금은 잠실에 위치한 롯데콘서트홀이 2016년에 새로 개관하면서 우리나라도 빈야드 스타일의 무대를 갖춘 콘서트 홀에서 클래식 공연을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베를린 필하모니는 현대 콘서트홀의 대세인 빈야드(Vineyard)식 홀의 어머니 격이다. 19세기 이래의 기존 콘서트 홀들은 대부분 직사각형의 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이런 형태들은 객석의 시야 확보는 물론 음향시설에도 영향을 미쳐 한계가 있었다. 베를린 필하모니의 건축가였던 한스 샤룬은 과감히 기존의 형태를 버리고 무대를 공간 가운데에, 객석을 경사가 진 방사형 형태로 무대를 둘러싼 모양으로 디자인했다. 이는 어느 위치에서 무대를 바라 보아도 확 트인 시야는 물론 명료한 사운드로 관객들에게 만족감을 안겨줄 수 있었다. 이러한 형태를 바로 빈야드 형식이라 부르는데 빈야드 스타일의 공연장은 현대 콘서트홀의 대세로 자리매김했다. 

(빈야드 형태의 콘서트홀은 대표적으로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콘서트홀, 미국 LA의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일본 도쿄의 산토리홀, 프랑스 파리의 필하모니 드 파리, 덴마크 코펜하겐 콘서트홀 등이 있다.)


베를린 필하모니의 공간은 두 개로 나뉜다. 바로 2,440여 개의 객석을 갖춘 Grand Hall(Großer Saal)과 1,180여 개의 객석을 가진 조금 더 작은 규모의 Chamber Music Hall(Kammermusiksaal)이다. 독특한 것은 두 개의 공연장이 각각의 건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Grand Hall은 1963에 완공되었고, Chamber Music Hall은 1980년대에 개관했다. 

Philharmonie Seating Plan


빈야드 스타일의 무대를 갖췄다는 것은, 다양한 객석 플랜을 가지고 있다는 말로 읽을 수 있다. 객석의 위치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공연에 따라 다르지만, 그랜드 홀의 가장 저렴한 좌석은 21유로부터 열정적인 지휘자의 모습이나 연주 단원들의 손 끝을 가장 섬세하게 바라볼 수 있는 가장 앞쪽 좌석은 290유로까지 치솟는다. 한화로 40만 원을 웃도는 금액이다. 공연에 따라 스탠딩 좌석을 오픈하기도 하고 합창석 좌석을 판매하기도 하는데 가난한 여행자라면 당일에만 판매하는 이 티켓들을 노려보는 좋을 것이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공연을 단 돈 9유로에 관람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에 따른 노력과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당신의 몫이다. 

Chamber Music Hall Seating Plan

챔버 뮤직 홀은 그랜드홀 공연에 비해 비교적 티켓 가격이 저렴하다. 가장 저렴한 좌석은 8유로부터, 가장 비싼 좌석은 45유로다. 세계적인 수준의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합리적인 가격이 아닐 수 없다. 학생 티켓 개념의 28살 이하의 콘서트 고어들을 위한 특별 티켓 가도 존재한다. 베를린 필하모니커 재단이 young audience를 위해 매 공연마다 50장씩 그랜드 홀 공연은 15유로에, 챔버 뮤직홀 공연은 8유로에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나는 안타깝게도 여행 일정 동안 관람할 수 있는 공연이 없어 극장만이라도 방문하기 위해 극장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해 극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포츠담 광장에서 걸어 도착한 베를린 필하모닉 홀의 경관을 보고 있자니 경탄이 절로 나왔다. 극장 투어로라도 이 공연장 안을 샅샅이 볼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출처 : https://www.berliner-philharmoniker.de/en/philharmonie/guided-tours/

로비로 들어서자 지금까지 방문했던 극장과는 다른 로비가 펼쳐졌다. 무대와 객석의 형태가 독특하니 로비 또한 다른 형태를 띨 수밖에 없었다. 미로처럼 엉켜있는 로비와 객석으로 들어가는 계단과 문들. 내가 앉을 객석을 찾아가는 것도 하나의 여행이 될 것만 같았다. 콘서트 홀로 들어가 보니 빈야드 스타일의 무대에서의 공연 감상은 전혀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라는 게 확실해졌다. 텅 빈 무대가 주는 위압감에 가벼운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특히 무대 오른쪽에 위치한 거대한 오르간을 보니 절로 웅장한 오르간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콩닥대는 마음을 부여잡고 가이드 투어를 따라 갤러리 곳곳을 둘러보고 있자니 어느 좌석에서나 무대 시야가 좋음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무대에서 가장 먼 좌석과 무대와의 거리가 30m 정도에 불과하다. 심지어 무대 뒤쪽 (전형적인 프로시니엄 무대로 생각했을 때) 갤러리에 앉아서 콘서트를 감상하는 것도 독특한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지휘자의 열정적인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고, 그 뒤로 같은 공간에서 음악을 감상하고 있는 객석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일 거라는 게 확실했다. 어느 좌석이나 평등하고 고른 음향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그 편차와 거리감을 최소화되어 있다는 것. 연주자들과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객석 형태는 물론 훌륭한 공연을 함께 경험하고 있으며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관객들까지. 

출처 : https://www.berliner-philharmoniker.de/en/philharmonie/guided-tours/

겉과 안에서 바라본 극장은 경탄을 넘어서 짜릿함까지 선사했다. 극장이라는 공간이 공연 관람을 하는 단순한 공간에서 벗어나 방문 자체로도 함께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과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는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공간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체험할 수 있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텅 빈 객석에 앉으면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지휘자, 심지어 음악 소리까지도 들리는 듯했고 로비로 나서니 우아한 드레스와 정장을 갖춰 입은 관객들이 와인잔을 부딪히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극장은 왜 있는가? 에 대한 개인적인 답을 얻을 수 있었던 공간이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독특한 경험을 원한다면 베를린 여행을 위해 우아한 드레스와 구두를 챙겨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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