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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atre Romance May 19. 2020

브루클린 덤보에서 사진만 찍지는 말 것

St. Ann's Warehouse

뉴욕을 다양하게 즐기고 싶어 하는 여행자라면 단연 브루클린으로 떠날 것이다. 화려한 맨해튼 중심가에서 뉴욕을 즐기는 일도 황홀한 일이지만, 때로는 그 번잡한 도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들게 하는 신비로운 곳이기 때문이다. 물론, 외부에서 바라보는 맨해튼의 풍경과 야경은 미치도록 아름답기도 하다.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브루클린의 '핫'한 스폿은 누가 뭐래도 Dumbo일 것이다. 덤보에는 묵직하게 쌓아 올려진 빨간 벽돌 건물 사이로 보이는 브루클린 브릿지를 카메라에 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북적댄다. 이들을 지나 브루클린 브릿지 파크에 앉아 맨해튼을 바라보며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보면 뉴욕이 온통 내 것이 될 것만 같다. 거대한 공장형 건물들, 유니크한 부티크와 고급 레스토랑, 트렌디한 카페들로 즐비한 덤보는 맨해튼과는 또 다른 뉴욕스러움을 마음껏 풍기는 곳이다.

브루클린 덤보에서 바라본 브루클린 브릿지와 맨해튼 시티 ⓒSungyeon Park

많은 여행자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덤보를 찾지만, 덤보에는 사진을 찍기 위한 핫스폿을 뛰어넘은 특별함이 있다. 바로 아트 씬이다. 이제 브로드웨이의 높은 임대료와 물가상승을 이겨내지 못하고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오프 브로드웨이, 오프오프 브로드웨이를 넘어 브루클린까지 예술인들의 활동 범위를 넓혔다는 이야기는 이제 익숙하다 못해 당연해진 일이 되어 버렸다. 덕분에 공장이 많고 우범지역이었던 브루클린의 범죄율이 낮아지고 트렌디한 공간으로 떠올랐다는 것도 이제는 옛날옛적 이야기다. 브루클린에는 시티와는 또 다른 아트 씬이 형성되어 오히려 맨해튼의 주민들은 종종 공연과 전시를 보기 위해 브루클린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이 현상들의 중심엔 덤보가 있고, 덤보 아트 씬의 중심 격인 St. Ann's Warehouse가 있다.


2015년 이전의 St. Ann's warehouse의 외관과 공연 MAYDAY MAYDAY 티켓. ⓒHEAJI JEON
2015년 이전의 St. Ann's warehouse의 내부. 역대 공연의 포스터가 걸려있다. ⓒHeaji Jeon

 내가 이 극장을 방문했을 때는 2013년으로, 그때 당시에는 덤보의 작은 공장을 극장으로 개조시킨 곳이었다. 그때도 여전히 빨간 벽돌의 공장건물이 극장이었지만 창문 하나 없이 회색 셔터문 위로 ENTER라고 적힌 빨간 철문만 있던 다소 차갑던 공간이었다. 공연 포스터가 붙어있지 않았다면 극장 인지도 모르고 지나칠 만큼 문화시설 다운 면모는 아니었다. 크기도 작고 다소 낡은, 정말 예술가들이 발굴해 낸 공간 같은 느낌이었달까. 하지만 지금의 St. Ann's Warehouse는 잠깐 몸담았던 낡은 공장을 떠나 리모델링을 거친 한 담배공장이었던 건물로 이전했다. 이전에 소개했던 브리스톨의 Tabacco Factory Theatre처럼, New St. Ann's Warehouse는 담배공장 건물이었던 공간을 공연장으로 변환시켜 새 보금자리를 만든 것이다. 공장으로 사용되던 건물 형태는 그대로 유지하고, 공장 건물을 둘러싼 벽돌 외벽도 그대로 유지한 대신 누구나 편하게 들릴 수 있도록 아치형 열린 문을 만들고 아름다운 정원 형태로 꾸몄다. 보금자리를 열린 공간으로, 더 크고 넓은 곳으로 옮긴 덕분에 St. Ann's Warehouse는 예술적 보금자리로서의 뉴욕 예술시장의 중요한 틈새를 메우며 그 위상을 더욱 굳건히 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의 전방위 아티스트들부터 해외 유수의 프로덕션이나 신흥 아티스트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공간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올해로 40주년을 맞는 St.Ann's Warehouse의 시즌 (출처:https://stannswarehouse.org)

St. Ann's Warehouse에서 가장 눈여겨볼 점은 역시 극장을 채우고 있는 아티스트들의 작품이다. 올해 40번째 시즌을 진행하는 극장은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단체들의 유수한 작품들을 기획하여 선보이고 있다. 2000년대 이후로 차곡차곡 그 명성을 쌓아나가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스코틀랜드 국립극단의 <Black watch>, '렛미인' 이라는 영화를 원작으로 한 연극 <Let the light on me>, 영국 컴플리시테 극단의 <The encounter>도 St. Ann's Warehouse를 거쳐갔다. 이뿐만 아니라 샤우뷔네 베를린의 예술감독 토마스 오스트마이어의 작품들, 미국 우스터 그룹, 니하이 극단의 작품들까지. 그야말로 St. Ann's Warehouse는 세계적인 극단과 아티스트의 작품을 뉴욕 공연시장에 선보이는 곳이다. 세계 연극 시장의 트렌드를 알려면 St. Ann's Warehouse의 시즌 프로그램을 확인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St. Ann's Warehouse에서는 직접 Puppet Lab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인형극을 통한 작품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20여 년 동안 퍼펫을 이용한 지극히 연극적이고 창의적인 작품들이 이곳의 실험실에서 태어났고 세계를 누볐다. 단순히 작품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에서 더 나아가 퍼펫을 이용한 작품들의 전통을 보존하고 공동작업을 위한 실험을 강화하는데 노력하고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저기 거처를 옮겨 다니며 극장의 브랜드와 프로그램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텐데도 그 명성을 꾸준히 이어나가고 뉴욕 연극 시장에서 독특한 포지셔닝으로 자리 잡은 극장이 실로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David Sundberg / Esto (출처:https://stannswarehouse.org)

이제 St. Ann's Warehouse 극장은 2015년 이후 덤보 워터 스트릿에 위치한 담배공장에 영구적으로 몸담게 되었다고 한다. 이전과 동일하게 여전히 블랙박스 형태의 극장을 유지하지만 극장의 크기는 커졌다. 객석은 1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확대되었고 뉴욕 시민들이 언제든 빌릴 수 있는 스튜디오도 구비했다. 덤보를 찾는 사람들이 우연히 극장에 발을 딛기도 쉬워졌다. 아기자기한 극장 정원에서는 다양한 문화 이벤트가 열리고 여유를 부리며 시간을 보내기에도 아름다운 장소가 되었다. 이 전보다 확장된 크기와 더 세련된 장소, 시민들에게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하드웨어를 갖추게 된 셈이다. 이제 St. Ann's Warehouse 지금까지 쌓아온 명성에 더해 새로운 앞날을 쌓아갈 준비가 되었다. 덤보에 간다면 사진만 찍지 말자. 사진보다 더 특별한 기억을 오랫동안 남길 수 있는 St. Ann's Warehouse 극장에 방문해 공연을 관람해 보자. 당신의 핸드폰 속 사진첩도 윤택해질뿐만 아니라 머리와 마음속에 있는 사진첩도 선명한 이미지와 감동으로 윤택 해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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