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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atre Romance May 30. 2020

마! 내가 바로 오리지널이다!

National Theatre

 각 나라에는 대부분 '국립'이라는 명칭이 붙은 극장들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국립' 극장으로서 전통 기반의 동시대 작품들을 제작하는 국립중앙극장 (National Theatre or Korea)이 있고 가까운 나라 일본에도 가부키나 분라쿠 등의 전통 공연을 기반으로 작품을 만드는 일본 국립극장(国立劇場), 오페라나 발레, 연극 등 동시대 공연을 제작하는 신국립국장(新国立劇場)이 있다. 조금 더 떨어진 섬나라 대만에도 국립극장(國家戲劇院)이 있다. 조금 더 멀리 유럽권으로 가보자. 프랑스에는 '국립'이라는 명칭은 붙지 않았지만 국가가 극장 운영의 예산을 지원하여 운영하는 극장들이 있다. 코메디 프랑세즈(La Comedie Francaise), 오데옹 국립극장(Theatre de I'Ode'on. 지금은 유럽극장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샤이오 국립극장(Theatre National de Chaillot) 등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헝가리의 국립극장(Nemzeti Színház), 노르웨이의 오슬로 국립극장(Oslo Nationaltheatret), 체코의 프라하 국립극장(Národní divadlo) 등 대부분의 나라에 '국립' 극장을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미국의 대부분 극장들은 영리극장이거나 혹은 재단법인과 유사한 형태의 비영리 민간기구가 주다.)

이렇듯 세계 곳곳 대부분의 나라에 '국립극장'이 있지만, 가장 유명한 국립극장은 단연 영국의 국립극장(National Theatre)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구글에 국립극장으로서 National theatre를 검색하면 너무도 당연하게 영국의 내셔널 씨어터가 가장 먼저 나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영국 국립극장의 공식 명칭은 The Royal National Theatre in London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스스로를 고유명사처럼 NT라고 지칭하는 것을 봐서도 이들의 자부심은 엄청나고 실제 위상도 대단하다 할 수 있다.

런던 사우스뱅크의 내셔널 씨어터 ⓒ philip vile (출처 : https://www.timeout.com/london/theatre/national-theatre)

영국 내셔널 씨어터의 시작은 국립극단이다. 영국 국립극단은 1963년, 영국의 대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Laurence Olivier)에 의해 설립되었고 그는 극단의 첫 예술감독으로서 극단을 이끌어 나갔다. 처음에는 런던 워털루 지역에 위치한 Old Vic 극장을 거점으로 하여 극단을 꾸려나갔으나 이후 1976년 런던 사우스뱅크 지역의 템즈강 옆에 극장을 완공하면서 보금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새로운 보금자리가 생기면서 영국 내셔널씨어터는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 연극 시장을 휩쓸며 세계 공연예술계의 중심격으로 올라섰다.

내셔널씨어터가 극단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어서 소수의 단원들이 평생 극장에서 공연하는 개념은 아니다. 내셔널 씨어터는 극단 상임단원 없이 배우 조합을 기반으로 매 공연마다 새로운 캐스팅으로 새로운 배우들과 공연을 올리고 공연이 끝나면 배우들과의 계약도 끝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배우의 기량에 따라 자유롭게 캐스팅이 가능하다는 점과 '직원'의 개념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배우들의 정년이나 복무 문제 등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소수의 인원이 '국립'이라는 공공성을 띈 단체를 독점한다는 비판을 받을 필요도 없고 무사안일주의에서도 벗어날 수 있어 여러가지 이득이 있다.

출처 : https://www.nationaltheatre.org.uk

극장의 미션은 첫째, 영국 고전 희곡의 현대적 재해석 작품 제작, 둘째, 셰익스피어의 영국 전통 극들을 계승할 수 있는 동시대 극작가 발굴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나라 영국답게 스토리에 주목하고 주로 극을 기반으로 한 공연을 제작하는 것이다. 극장은 이런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1년의 프로그램을 미리 선정하고 발표하는 시즌제로 운영하고 있는데, 주목 할 만한 점은 매 시즌마다 최소 3편 이상의 신작을 올리는 것을 프로그래밍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시즌제를 운영하며 레퍼토리를 구축하는 것에도 신경을 쓰지만 새로운 작품이나 아티스트들의 발굴에도 힘을 쏟고 있다. 내셔널 씨어터가 극단을 기반으로 시작한 만큼 탄탄하게 정립된 창작 시스템이 있고, 이를 뒷받침 할 시설들이 있기에 극장만의 튼튼한 레퍼토리를 구축하고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고 선도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보인다. 또한 연간 상주하는 사무원 및 스태프만 750여명에 달하며 아티스트들 까지 87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고 하니 가히 엄청난 규모이며 얼마나 작품 제작에 공을 들이는지 인력의 수만 봐도 알 수 있을 지경이다.

Olivier Theatre (출처 : https://www.nationaltheatre.org.uk/)
Lyttelton Theatre (출처 : https://www.nationaltheatre.org.uk/)
Dorfman Theatre (출처 : https://www.nationaltheatre.org.uk/)

다음은 극장 시설을 살펴보자. 내셔널 씨어터는 비교적 작은 극장 3개를 보유하고 있다. Olivier Theatre는 극장의 첫번째 예술감독 로렌스 올리비에의 이름을 딴 극장으로 에피다우르스의 고대 그리스 극장을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원형극장을 본떠 만든 만큼, 열린 무대 형식과 부채 모양의 관중석을 갖추고 있으며 1100명이 수용가능하다. 객석이 부채처럼 펼쳐져 있어 무대와 객석이 가깝고 어느 각도에서든 시야 방해 없이 관람이 가능하다. 세 극장 중 가장 큰 크기다. 두번째 극장은 Lyttelton Theatre이다. 내셔널씨어터의 초대 이사장인 올리버 리텔튼의 이름을 딴 극장이다. 프로시니움 극장이며 약 890명 정도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Dorfman Theatre는 블랙박스 씨어터로 인류학자 로이드 도프만의 이름을 딴 극장이다. 로이드 도프만은 이 극장을 내셔널씨어터 극장 중 가장 작고, 가장 날것이며, 잠재적으며 융통성으로 가득한 방이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블랙박스 시어터지만 그 크기가 비교적 커 그만큼 실험적인 작품들을 제작해 보기에 적합한 공간으로 보인다. 가능한 관객 수용 인원은 400명 정도이지만 블랙박스 형태인 만큼 공연마다 객석의 형태도 물론 달라진다. 내셔널 씨어터의 행보는 단순 사우스뱅크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이 세곳 극장 이외에도 내셔널 씨어터는 레퍼토리화 된 작품을 런던 내 외부 극장을 장기 대관하여 공연을 올리기도 하고 영국을 넘어 다른 나라에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워 호스( War Horse)'는  웨스트엔드에서 내셔널 씨어터가 아닌 다른 극장을 장기 대관하여 공연했고 뿐만 아니라 영국 땅을 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브로드웨이에서 내셔널 씨어터의 작품이 올라가지 않는 해는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내셔널 씨어터에서 탄생한 작품들은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내셔널 씨어터가 보여주는 독보적인 걸음 중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크게 2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듯 하다. 첫번째는 바로 NT Studio다. 워털루 지역에 마련된 NT Studio는 아티스트들이 최고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물리적 기반으로 대본개발, 실험, 작품개발을 위한 공간이다. 매년 1500여편의 새로운 희곡들을 투고받아 읽고 개발하며  전 세계의 아티스들이 모여 작품 개발을 위한 워크숍을 운영하기도 한다. 또한 기존 레퍼토리들을 발전시키기 위한 실험실 역할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신흥 아티스들을 새롭게 육성하는 것은 물론 중견 아티스트들에 대한 지원도 적극적이다. NT Studio는 내셔널 씨어터의 미션을 실현시키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겠다. 매년 천여명에 가까운 작가, 연출가, 작곡가, 디자이너들, 배우, 학자들까지 프로젝트나 워크숍에 참여해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이는 '워 호스' 같은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좋은 작품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성공이나 실패의 잣대나 압력에 자유롭게 탐색하고 실험할 수 있는 공간과 여유는 필수적이다. NT studio는 바로 그런 활동들을 실현시킬 수 있는 완벽한 공간이다. 


두번째는 NT Live이다. NT Live는 2009년부터 시작한 공연 실황 생중계 프로그램으로 공연 시장의 새로운 대안 컨텐츠 개발의 가능성을 열어 준 프로그램이다. 공연이라는 장르는 그 특성상 그 장소에 있어야만 관람할 수 있는 공공재적, 시간집약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공연만의 고유한 특성임과 동시에 한계점으로 작용한다. NT Live는 이러한 한계점을 역으로 이용한 새로운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런던까지 공연을 관람하러 오기 어려운 지역이나 해외의 관객들에게 공연 실황을 담은 영상을 생중계하기 시작했고 이는 공연을 간접적으로나마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은 물론 저렴한 금액에 세계적인 수준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내셔널 씨어터 측에서는 NT Live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그들의 브랜드 가치를 올릴 수 있었었고 더불어 저작인접권이나 방송권 등의 판매로 추가적인 수익을 창출하는데도 큰 기여를 했다. 작품 속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는 클로즈업부터 공연 전체를 볼 수 있는 풀샷까지 작품에 따라 연출되는 영상 연출에도 힘을 들이며 매 작품마다 맞춤화 된 최첨단 촬영 기법으로 영상을 제작한다. 특히 공연의 실황을 담는 것이기 때문에 촬영날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들의 웃음소리, 기침소리까지 공유된다. 영상으로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실제 공연을 관람하고 있는 느낌을 들게 만드는 것이다. 현재까지 전세계에 2000여개의 장소에서 9백만명 이상의 관객들이 NT Live를 통해 내셔널 씨어터의 작품을 관람했다고 하니 가히 엄청나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국립극장이 처음으로 2014년 NT Live의 판권을 사 들여와 연극 '프랑켄슈타인',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 '햄릿', '코리올라누스', '워호스' 등을 상영했고 대부분의 작품이 전석 매진되는 상황이 벌어졌었다. 해외에서 제작된 웰메이드 연극에 대한 국내 관객의 갈증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내셔널 씨어터의 공연 티켓 금액은 '국립'이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굉장히 저렴한 편이다. 이 금액에 높은 퀄리티의 공연을 보는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다. 가격 경쟁에서 선점을 취할 수 있었던 덕분에 내셔널 씨어터는 관객들에게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고 충성관객의 수가 높으며 극장의 유료 점유율도 굉장히 높다. 국립이기에 이뤄낼 수 있었던 성과이지만 국립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공연시장에서 내노라하는 작품들을 계속해서 생산해 내는 것도 엄청난 일이다.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 아티스트와 작품들의 지속적인 개발 의지, 독보적인 존재가 되겠다는 의지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겠다. 

출처 : https://www.nationaltheatre.org.uk/

안타깝게도 현재, Covid-19의 여파로 우리가 영국 런던, 사우스 뱅크의 내셔널씨어터까지 갈 순 없지만 감사하게도 내셔널씨어터는 National Thatre at Home이라는 프로그램을 구성해 NT Live로 영상화된 작품들을 유투브에서 볼 수 있게 하고 있다. 집에서 머물며 세계적인 작품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자. 

내셔널씨어터 유투브 바로가기 -> https://www.youtube.com/user/ntdiscoverthea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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