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lic Thatre & Delacorte Theater
매년 봄부터 여름까지 뉴욕 센트럴파크에서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동이 트기도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준비를 단단히 한 듯 보인다. 돗자리며 피크닉용 의자, 책은 물론이고 심지어 뜨개질 거리를 들고 줄을 서는 사람들도 있다. 누군가는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기타를 들고 노래를 한다. 왜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새벽부터 센트럴파크에서 줄을 서고 있을까? 바로 매년 센트럴파크에 위치한 Delacorte Theatre에서 열리는 Shakespeare in the Park 공연 티켓을 얻기 위함이다. 티켓을 얻기 위해서는 길게 늘어진 줄에 서서 반나절 이상을 공원에서 보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아주 밝다. 익숙한 듯 대화를 나누고 이 상황 자체를 즐기는 듯 저마다의 방법으로 시간을 보낸다. 이런 오래되고 독특한 관행은 뉴요커들이 공연예술을 축제로서 즐기는 방법이며 동시에 뉴욕에 여름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본격적으로 퍼블릭 극장에 대해 소개하기 전에 '셰익스피어 인 더 파크'와 델라코트 극장에 대한 정보를 조금 나눠볼까 한다. 셰익스피어 인 더 파크는 매년 5월에서 8월까지 델라코트 극장에서 열리는 무료 공연으로 Public Theatre의 주관으로 열리는 하나의 축제다. 퍼블릭 극장을 설립하기도 한 Joseph Papp은 셰익스피어와 고전극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확대시키고 장려하는 것을 목적으로 1954년부터 셰익스피어 워크샵을 열었고 이 워크샵이 자연스럽게 셰익스피어 축제의 근원이 되었다고 한다. 조셉 팹은 워크샵과 축제를 이어가기 위한 극장을 마련하기 위해 오랜 기간 노력했고 그 결과로 1962년 센트럴파크 한가운데 델라코트 극장을 짓고 축제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셰익스피어 인 더 파크가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셰익스피어의 작품만 상연하는 것은 아니다. 종종 희랍극을 바탕으로 한 고전 희곡이나 브레히트와 같은 유럽권 작품들, 더 나아가 뮤지컬을 상연하기도 한다.
축제가 열리는 델라코트 극장은 언급한 바와 같이 센트럴파크에 위치해 있다. 1800여 명이 수용 가능한 야외 원형 극장이다. 센트럴 파크 한가운데에 있는 야외극장에서 공연을 보는 경험은 정말 특별하다.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면 무대 뒤로 센트럴 파크의 숲이 펼쳐지고 조금 더 멀리 바라보면 맨해튼의 하늘 높이 치솟아 있는 빌딩들이 보인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무대를 바라보고 공연을 보려고 객석에 앉아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 공연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으면 촙촙한 여름밤의 공기와 함께 모든 것이 마법같이 느껴진다. 모든 분위기가 로맨틱해지면서 공연을 보고 있는 내가 행운아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 로맨틱한 경험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역시 티켓 구하기다. 공연 티켓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4가지다. 첫째는 공연 당일, 정오에 극장 입구에서 배포하는 티켓을 얻는 것이다. 가장 힘들지만 가장 가능성이 있는 방법이다. 티켓을 얻기 위한 수고스러움과 노고는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씻은 듯이 사라질 테니 뉴요커들과 함께 줄을 서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두 번째는 온라인 추첨 응모이다. 공연 당일 홈페이지를 통해 티켓을 응모하면 공연 당일 정오에 당첨자를 발표하는 형식이다. 뉴요커들 사이에서도 로또라고 불린다고 하니 정말 복권이나 다름없다. 셋째는 기부금 티켓. 최소 100불의 금액을 기부하면 티켓을 얻을 수 있지만 이마저도 한정수량이라 선착순이라고 한다. 사실 셰익스피어 인 더 파크는 공연예술이 일부 특정 계층만 향유하는 것이 아닌 누구에게나 열려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출발한 만큼, 유료로 티켓을 얻는 것은 공연의 의미가 조금은 퇴색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100불 정도쯤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전해볼 만한 방법이다. 마지막 방법은 공연 직전에 극장 앞에서 줄 서기인데 미수령 티켓 한정이므로 운이 정말 좋아야 할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위에서 언급했듯, 델라코트 극장에서 열리는 셰익스피어 인 더 파크 축제는 퍼블릭 극장의 주관으로 열린다. 그렇다면 퍼블릭 극장은 어디에 있을까? 퍼블릭 극장은 센트럴 파크 한가운데에 있는 델라코트 극장과는 거리가 있다. 좀 더 아랫 동네, OFF-Broadway로 내려가야 한다. 퍼블릭 극장은 뉴욕대 캠퍼스 건물들과 유니크한 카페나 레스토랑들이 몰려있어 도시의 활기와 문화적 풍요로움이 느껴지는 그리니치 빌리지와 이스트 빌리지, 노호 지역이 만나는 경계선인 Astor Place에 위치해 있다. 애스터 역에서 출구로 나오면 거대한 붉은 벽돌 극장 건물과 함께 Public이라고 적혀있는 깃발들이 휘날린다. 퍼블릭 극장은 원래 공공도서관이었던 곳을 매입해 극장으로 탈바꿈시킨 곳이다. 철거될뻔한 건물을 퍼블릭 극장의 설립자 조셉 팹이 극장 공간으로 매입하여 사용토록 뉴욕시를 설득시킨 것이다. 퍼블릭 극장의 건물은 1965년에 뉴욕시 랜드마크 보존위원회가 최초로 지정한 뉴욕시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1967년에 문을 연 퍼블릭 극장은 오프 브로드웨이의 최대 규모 극장으로 단연 오프 브로드웨이의 터줏대감이라 할 수 있다. 조샙 펍은 처음에 퍼블릭을 설립하면서 크게 3가지 목표를 정했다고 한다. 바로 수준 높은 셰익스피어 공연을 무료로 보여주는 것, 양질의 신작 공연을 제공해 관객의 수준을 고취시키는 것, 그리고 제작할 공연 작품 선정에 있어서 창작자나 배우의 성별이나 인종, 종교, 문화적 배경, 성적 취향 등에 따라 어떠한 차별도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큰 목표 아래 퍼블릭 극장은 꾸준하게 현대 사회를 깊은 통찰력과 성찰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작품들을 수용했고, 대두되는 사회문제들에 전면으로 맞서며 날카로운 비판의식이 담긴 작품들을 제작했다. 이는 곧 뉴욕 시민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은 원천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독보적이고 일관적인 작품 제작 방향을 고수할 수 있었던 원천은 퍼블릭 극장이 우리나라의 공공 극장과는 달리 정부의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후원금과 공연 수익으로만 운영되는 비영리 극장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의 지원이 없기에 정부로부터 가해질 수 있는 압박이나 검열에 자유로울 수 있었고 더욱더 진보되고 열린 시각의 작품들을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극장 시설과 프로그램을 더 자세히 살펴보자. 퍼블릭 극장은 주로 극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 올라가는 5개의 극장과( Anspacher Theater, LuEsther Hall, Martinson Theater, Newman Theater, Shiva Theater) 음악 공연을 올리는 펍 형식의 공연장인 Joe’s Pub으로 구성되어 있다. 극장들의 규모는 크지 않고 모두 100석에서 300석 남짓한 객석 규모를 갖추고 있다. 극 기반 작품을 올리는 극장들은 Newman 극장만 프로시니엄 형태이고 나머지는 실험적인 작품들의 개발에 적절한 블랙박스 형태를 갖추고 있다. 더불어 퍼블릭 극장은 공연장 외에 작품에 필요한 무대나 소품, 의상들을 직접 제작할 수 있는 씬샵과 의상 제작실도 구비하고 있는데 씬샵과 의상 제작실의 구비가 꾸준히 안정적인 작품을 제작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이 다섯 개의 극장들에서는 실험적인 연극 작품부터 상업성이 짙은 뮤지컬까지 상연되고 있다. 퍼블릭 극장에서 처음으로 올라간 프로덕션은 뮤지컬 <Hair>였고, 최근에는 브로드웨이에서 메가 히트작으로 평가받는 <Hamilton>이나 곧 국내에서도 라이센스 공연으로 상연할 <Fun Home>과 같은 작품도 퍼블릭 극장에서 초연되어 브로드웨이로 진출한 것을 보면 퍼블릭의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Joe's Pub에서는 주로 음악 공연을 상연한다. 우리나라 극장에서는 잘 볼 수 없지만 미국에서는 종종 보이는 공연장의 형태가 바로 Joe's Pub과 같은 공연장이라 할 수 있는데 말 그래도 공연장은 펍 형식으로 음악을 즐기며 술과 음료를 먹을 수 있는 형태다. 객석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함께 놓여있고 음식들도 고급스럽다. 음식의 가격도 꽤나 나가는 편이다. 우리나라에는 재즈바 같은 형식이나 트로트 디너쇼 정도로 보면 쉽겠다. 분위기는 트로트의 그것과 다르게 영하고 힙한 느낌이지만 말이다. Joe's Pub에서는 캬바레나 재즈, 솔로 가수들의 공연 등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고 있는데 에이미 와인하우스, 아델이 데뷔를 한 공연장으로 잘 알려져 있으니 그야말로 작은 공간에서 뿜어내는 힘이 대단하다.
퍼블릭 극장에서 올라가는 공연들은 기본적으로 시즌제로 미션을 기반으로 기획된 공연들이 상연되고 있고 시즌 이외에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 Public's Shakespeare Initiative(Public LAB), Public Work, Public Forum, Mobile Unit, Under the RaderFestival이 바로 그것이다.
'퍼블릭 셰익스피어 이니셔티브'는 실험의 장으로 쉽게 말하면 쇼케이스랄까. 본 공연 전 조금 작은 규모로 쇼케이스를 열고 관객들과 극 안에 있는 주제나 아이디어를 함께 토의하며 작품을 개발하는 프로그램이다. 관객들은 저렴한 가격에 새로운 극을 접하고 또 함께 참여하여 작품을 개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퍼블릭 극장은 관객들을 연극 속에 참여시킴과 동시에 예술가를 개발하고 젊은 창작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퍼블릭 워크'는 커뮤니티 연극 프로젝트로 아티스트들이 작품을 일방적으로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 작품을 제작하며 작품을 통해 사람들을 연결하고 커뮤니티를 재 형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둔 프로그램이다. 즉 지역 주민과 함께 연극을 만드는 것이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작품을 제작하는 만큼 사회적이나 정치적으로 이슈가 될 만한 작품들이 퍼블릭 워크를 통해 탄생하고 있다.
'퍼블릭 포럼'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극작가, 비평가 등 다양한 분야의 공연예술인들이 모여 동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문제들에 대해 토론하고 공연예술계의 역할, 퍼블릭의 올바른 방향성을 이끌어내는 프로그램으로 2010년부터 시작되었다. '모바일 유닛'은 다양한 층위의 관객들을 만나고 소외된 계층을 위해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감옥, 노숙자 쉼터, 주민센터 등 소외계층이 있는 곳에 직접 찾아가 무료로 퍼블릭의 공연을 선보인다.
마지막으로 '언더 더 레이더'는 공연예술 축제로 뉴욕의 관객들에게 국내 및 해외 예술가들의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장이다. 지난 16년 동안, 언더 더 레이더는 42개국에서 229개 이상의 극단 작품을 선보이며 퍼블릭의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 중 하나가 되었다. 공연예술의 시각적, 미학적, 사회적 실천 면에서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선보이며 공연예술의 미래를 제시하고 있는 중요한 프로그램이다. 한국계 미국인 극작가 영진 리의 작품도 이 언더 더 레이더를 통해 소개되었다. 이외에 극작가들을 육성하는 그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Emerging writers group도 운영하고 있다.
퍼블릭 극장에서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디자인이다. 퍼블릭 극장에서 하는 공연들의 포스터나 홍보물들은 한눈에 봐도 '아! 퍼블릭 극장의 공연이구나!'를 알 수 있다. 세계적인 그래픽 디자이너인 폴라 셰어(Paula Scher)가 1994년에 극장의 아이덴티티를 디자인 한 이후 지금까지 일관되게 대부분의 공연들의 홍보물들을 작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장 안으로 들어서면 비단 홍보물뿐만 아니라 극장 자체 또한 철저하게 디자인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작은 안내표시판부터 극장의 위치, 인포메이션까지 디자인된 로고타입과 폰트로 디자인되어 있다. 한 극장의 아이덴티티와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해서 얼마나 섬세하게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2013년 여름, 셰익스피어 인 더 파크에서 '사랑의 헛수고' (Love's Labour's Lost)를 볼 수 있었다. 공연예술을 사랑하는 뉴욕 시민들, 그리고 그들이 축제를 즐기는 방법들을 보며 즐길 줄 아는 이들의 여유로움과 열린 마음이 너무도 부러웠다. 또 뉴욕에서 인턴십을 하는 동안 만났던 프로덕션 매니저가 퍼블릭 극장의 인턴으로 일을 하고 있어서 퍼블릭 극장을 투어 해볼 기회도 있었는데, 작지만 단단해 보였던 극장들, 전문적으로 잘 완비된 씬샵과 의상 제작실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 극장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퍼블릭 극장의 전문성과 뚜렷한 미션을 기반으로 한 기획력, 정체성은 물론 비영리 극장임에도 자생 가능한 안정적인 창작환경, 보장된 자유, 탄탄한 내실, 다양한 문화적 저변의 힘들이 질투 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창작 환경이나 시장의 규모가 본질적으로 달라 직접적으로 비교하거나 무작정 그들의 방식을 따르는 데에는 분명 무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퍼블릭 극장이 70여 년 동안 고수해 온 정체성과 환경, 운영 방식에 우리가 분명 배우고 적용해야 할 지점들이 있다고 믿는다. 불과 몇해 전, 예술 검열이 우리 예술계에 미쳤던 영향에 대해 조금만 곱씹어 본다면 말이다. 우리는 조금 더 변화해야 한다. 퍼블릭 극장이 뉴욕의 문화 예술 씬에서 독보적인 역할과 동시에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힘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