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MaMa Experimental Theatre Club
뉴욕은 모두에게 꼭 한 번은 살아보고 싶은 도시다. 절대 잠들지 않는 이 도시에는 꿈과 환상에 젖은, 잠들고 싶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모여든다. 예술가라면 더더욱 그렇다. 모든 아티스트들은 뉴욕을 갈망한다. 하지만 뉴욕은 위험한 곳이다. 살인적인 물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싼 임대료, 또한 크고 작은 범죄들이 우발적으로 일어난다. 그것뿐인가. 당신에게 재능이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절망하기에도 딱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 뉴욕은 꿈을 꾸게 하는 곳이지만, 동시에 꿈에서 깨게 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티스트들은 뉴욕에 모여든다. 예나 지금이나 말이다.
나에게도 뉴욕이라는 도시는 언제나 꿈같은 도시였다.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곳, 살아보고 싶은 꿈같은 도시였다. 그런 나에게 꿈같은 기회가 주어졌었다. 바로 해외인턴십이라는 제도였다. 내가 다닌 대학에서는 매년 학생들에게 해외 예술 현장을 경험할 수 있는 해외인턴십 제도를 진행하고 있었고, 나는 졸업반 때 이 해외인턴십 사업에 합격하여 4개월이라는 시간을 뉴욕에서 보낼 수 있었다. 그것도 뉴욕 오프오프 브로드웨이의 역사이자 현재인 라마마 실험극장이라는 곳에서.
라마마 실험극장은 뉴욕을 꿈꾸는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안식처 같은 곳으로 연극계의 전설 Ellen Stewart가 설립했다. 기부금과 티켓 수익을 통해 비영리로 운영되는 라마마는 그 시대에 오프-오프 브로드웨이에 설립된 극장 중 지금까지도 운영되고 있는 유일한 극장이다. 지난 세기 동안 엘렌 스튜어트는 아프리칸-아메리칸으로서 가장 성공한 프로듀서로 꼽힐 뿐만 아니라 오프-오프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힌다. 본격적으로 엘렌 스튜어트가 공연계에 발을 들인 건 1961년이다. 자신의 작은 지하방을 신인 배우나 무명 극작가들에게 연습 공간을 제공할 목적으로 마련한 것을 시작으로 1969년에 두 개의 극장을 소유하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1969년에서 1970년 사이에 라마마에서 프로듀싱한 작품이 동 시즌 브로드웨이에서 올라간 작품 수보다 많았다고 하니 그녀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아티스트들에게 헌신하며 작품을 선보였는지 추측할 수 있다. 엘렌 스튜어트는 뉴욕을 벗어나 해외에서도 제작을 맡았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곳에서의 자유분방한 실험이 호의적인 관심을 끌었고 이후 여러 나라에서 제2의 지점을 설립하도록 초대받았다고 한다.
엘렌 스튜어트는 2011년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이후에는 예술감독 Mia Yoo에 의해 극장이 운영되고 있다. 라마마는 지금까지도 엘렌 스튜어트의 신념대로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아티스트들이 정체성이나 배경에 관계 없이 경계를 넘어 창조적 자유를 가질 수 있는 극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라마마라는 극장이 뉴욕에서 문화적 구조 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세계적인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엘렌 스튜어트가 살아 생전 아티스트들에게 보여준 관용은 재능있는 많은 배우, 연출가, 작가들이 라마마에서 성장할 수 있게 했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라마마를, 그리고 오프-오프 브로드웨이를 이끄는 힘으로 작용했다.
현재 라마마 극장은 뉴욕 이스트 빌리지 4번가에 위치해 있다. 엘렌 스튜어트를 기리기 위한 Ellen Stewart Theatre, 지하에 위치한 The Downstaris, 그리고 옆 건물에 위치한 First Floor Thatre와 The Club. 총 4개의 극장과 주요 극장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La Galleria라는 이름의 1개의 갤러리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컬처허브라는 프로그램을 위한 공간과 리허설룸, 그리고 이탈리아 스폴레토 외각 지역에 위치한 예술가들의 휴양지이자 워크숍 공간인 La MaMa Umbria International을 가지고 있다. 네 개의 극장은 모두 소극장 규모이며 실험 극장답게 블랙박스로 이뤄져 있다. 엘렌 스튜어트 극장이 300여 개의 객석을 갖춰 가장 객석 수가 많고 클럽이 100석 이하로 가장 작다. 낡은 건물에 자리 잡은 극장들이기 때문에 극장들은 모두 낡았고 구비된 장비들도 신식은 아니다. 하지만 라마마라는 공간이 주는 특유의 공기와 아우라가 있어 극장에 들어설 때마다 묘한 느낌에 휩싸인다.
엘렌 스튜어트 극장이 있는 건물에는 라마마의 공연을 기획하는 사무실이 있고 라마마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아카이브도 있다. 이 아카이브는 라마마 만의 독특한 공간이라 할 수 있는데 1967년부터 라마마에서 아티스트로 활동했던 Ozzie Rodriguez 가 이 아카이브를 관리하고 있다. 라마마에서 공연되었던 공연의 소품들, 퍼펫, 의상, 조각들은 물론 사진, 프로그램, 포스터, 대본 등 다양한 자료들을 모아 두고 관객들이나 대학의 학생들, 아티스트들에게 투어를 제공하고 있으며 학자들이나 연구자들에게도 연구를 위한 자료들 또한 제공하고 있다. 극장에 처음 인턴십을 위해 도착했을 때 오지는 인턴을 온 우리들에게도 투어를 시켜주었고, 그의 극장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한껏 묻어있는 투어를 들을 때부터 나는 이 극장과 즉시 사랑에 빠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극장 건물의 4층에는 기숙사가 있는데 나 같은 인턴십을 온 학생이나 라마마에 공연을 온 아티스트들이 머물 수 있게 되어있다. 수용 기준 인원은 8명 정도밖에 안되지만, 나는 이 기숙사에서 가장 많게는 2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함께 지낸 적이 있다. 기숙사에서 모두 잘 수 없어 극장의 분장실까지 숙소로 사용하고 나 또한 분장실의 샤워실에서 샤워를 했던 기억이 난다.
라마마는 기획 극장답게 매해 시즌제로 운영하며 세계 유수의 작품들을 초청해 선보이고 올해로 58번째 시즌을 맞았다. 네 개의 극장에서 한 시즌에 70여 개의 작품을 선보이는데 선보이는 작품은 실험극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곳답게 수용하는 작품의 스펙트럼이 아주 넓다. 라마마는 엘렌 스튜어트가 처음 극장을 설립했을 때의 신념을 그대로 이어 아티스트들에게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의 공간으로서 운영된다. 장르 편향 없이 연극, 음악극, 1인극, 무용, 무용극 등 정말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장르를 정의할 수 없는 실험적인 작품들도 선보이고 있다. 시즌 프로그램 외에 주목할 만한 프로그램은 4가지 정도다. 첫 번째로 댄스 페스티벌인 "La MaMa Moves!"이다. 올해 13번째 시즌을 맞은 La MaMa Moves! 는 매해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다양한 스타일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아티스트들을 큐레이션해 선보이고 있는데 비단 움직임뿐만 아니라 설치미술이나 영상이 함께하기도 하고 심포지엄이 함께 열리기도 한다. 두 번째는 인형극 축제인 "The La MaMa Puppet Festival"로 전 세계 퍼펫 아티스트들이 작품을 선보이는 작은 축제다. 1962년 엘렌 스튜어트가 바로 한국에서 온 퍼펫 아티스트를 초청해 공연한 이후로 지금까지 프로그래밍에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고 라마마의 대표 프로그램이 되었다. 어린이 관객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La MaMa Kids"는 어린이 관객을 위한 워크숍으로 직접 악기를 만들어보거나 소리를 탐색하는 등 잠재적 관객이 될 어린이들을 예술과 조금 더 가깝게 생활하며 창의적으로 성장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Culturehurb. 서울예술대학과 라마마 극장이 2009년부터 함께 진행한 프로그램으로 라이브 스트리밍, 텔레프레젠스, 영상 프로젝션 디자인 등 신기술과 예술을 결합시켜 새로운 형태의 예술장르를 발견하고 신진 기술을 실험하는 프로그램이다. 인턴을 가기 전, 학교 재학 당시 서울예술대학의 디지털 미디어 기술을 위한 아텍이라는 장소에서 컬처허브를 통해 함께 텔레프레젠스 공연을 제작하거나 컬처허브에서의 활동들을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관람하는 등의 활동을 살펴본 적이 있는데, 지금의 펜데믹 상황에서 라이브 스트리밍이나 영상 기술을 통한 기술 기반의 예술은 그때 당시 흔한 것은 아니었어서 이 작은 극장에서 신 기술을 구축하고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 참 진보적이라고 느꼈었다. 라마마 극장은 빠르게 컬처 허브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선구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던 덕에 지금의 펜데믹 상황에서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빠르게 온라인으로 전환시키며 대응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라마마에는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배출되었다. <대부>의 알 파치노, <택시 드라이버>의 로버트 드니로, <라이언 킹>의 줄리 테이머도 라마마를 거쳤다. 연극계 거장들인 피터 브룩이나 안드레이 서번, 톰 호건도 라마마에서 성장했고 그 유명한 블루맨 그룹도 라마마 출신이다. 라마마에서 이런 아티스트들이 배출된 것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바로 '실험'이 아닐까 싶다. 나는 라마마에서 인턴을 하는 짧은 기간 동안 '실험'에 대한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었다. 물론 머릿속에 물음표를 가득 채우게 한 몇몇 공연들도 있었지만, 이곳에서의 시간과 경험들이 느끼게 해 준 것은 시도와 실천이 있어야 발전이 있다는 것. 첫 발을 내딛는 시도와 실천이, 세상을 섬세하게 바라보는 시선들이 시작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작은 지하공간에서 초라하게 시작한 라마마는 국제 공연계뿐만 아니라 뉴욕 내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공간으로 성장했다. 설립 이후 현재까지 이곳에서는 76개국에서 온 15만 명 이상의 예술가들과 5천여 개 이상의 작품을 지원했으며 2018년에는 토니 어워드에서 지역 극장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라마마는 머물러 있는 곳이 아니다. 일찍부터 새롭게 시작될 시대에 대해 빠르게 반응하고 변화를 이끌어 나가는 곳이다. 나는 오프-오프 브로드웨이의 역사이자 현재였던 이곳의 미래가 너무나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