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가는 사람과 남는 사람
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이 직장은 학창 시절, 꼭 일해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졸업 후 이곳에서 사회의 첫 발걸음을 내딛고 싶다고 생각했고, 어찌어찌 그렇게 연수단원이라는 직책으로 이곳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 시작 덕에, 혹은 탓(?)에 지금의 내가 있다.
이곳에서 처음 일 한 것은 2014년, 딱 10년 전이다. 물론 이곳에서 10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낸 것은 아니고, 지난 10년간 두세 곳의 직장을 거쳤다. 몇 곳의 직장을 거치며 나는 몇 가지 진실을 깨달았다. 많은 직원들 중 나는 아무개 1이라는 것. 내 자리와 업무는 언제든 누군가가 대체할 수 있다는 것. 입사와 퇴사는 그다지 큰일이 아니라는 것. 이 자리가 누군가에겐 동경하는 자리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뼈저리게 떠나고 싶어 하는 자리가 될 수 있다는 것. 나는 지난 10년간 그저 그런 평범한 사실들을 깨닫고 대부분의 일에 무던해진 중고 직장인이 되었다.
지난 1년간 열손가락으로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동료들이 퇴사했다. 그 자리는 또 누군가가 들어와 쉽게 대체되었다. 그리고 퇴사자는 늘 그랬듯 빠르게 잊혔다. 정말 많은 동료들을 떠나보내고 또 새로운 동료들을 만나다 보니 이젠 정말 누가 퇴사해도 별 타격이 없다. 심지어 타 부서에 새로 온 분은 어떤 일을 하시는지, 이름이 무엇인지도 잘 모를 정도다. 누군가가 퇴사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속으로 그저 퇴사자가 맡았었던 일이 내게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몇 달 전, 동료 A가 퇴사했다. 좋지 않은 일로 상처를 받고 마음이 힘들어 결정한 퇴사였다. 또 다른 동료 B는 A의 퇴사에 많이 동요했고 슬퍼했다. 당사자는 오히려 담담해했는데, 옆에서 더 분노하고 감정적인 모습을 비치는 B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정말 내가 이미 닳을 대로 닳아버렸구나라고. 이렇게 모든 일에 무던해진 나와 이 상황들이 슬퍼졌다.
어차피 떠날 사람들이니, 혹은 나도 떠나갈 것이니 라는 마음으로 직장을 오가기 시작하니 회사에 가서도 동료들과 그다지 많은 대화들을 하지 않게 돼버린 것 같다. 이 전에는 회사 사람들과 퇴근 후 저녁식사도 하고 함께 공연을 보기도 했다. 심지어 돌이켜보니 1박 2일로 짧은 여행을 한 적도 있고 서핑을 하러 간 적도 있었다. 작은 모임을 만들어 매달 날을 정해두고 술을 마시러 가기도 했다. 물론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진 이유에는 ‘나이가 들었다‘라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나이 듦에 따라 가정이 생긴 동료들이 많아졌고, 나 또한 체력도 이전 같지 않아 졌다. 그저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집에 가서 누워버릴 생각만 드니까. 아무튼 이렇게 회사 생활에 냉소적이고 회의적이며 무던하게 된 것이 조금은 쓸쓸하다.
퇴사하는 사람들도, 남겨진 사람들도 아무런 죄가 없다. 떠난 사람들은 자신만의 기준에 의해 움직였을 것이고, 또 행복을 찾기 위해 떠났을 것이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남아있다고 해서 결코 패배자가 아니다. 본인이 가진 신념에 충실하고 현재의 위치에서, 노동 속에서 작은 보람들을 찾아내고 있을 것이다. 이들은 행복을 위해 이곳을 목적지로 삼고 도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그저 떠나가는 사람도, 남아있는 사람들도 행복하길 바란다. 나 또한 어떤 선택을 하든, 조금 더 나아지고 행복해지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