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서구룡 문화지구 Xiqu Center & Freespace
1998년, 홍콩 정부는 아시아의 문화예술 중심지로서 발돋움하기 위한 엄청난 계획을 발표한다. 바로 ‘서구룡 문화지구 프로젝트’. 중국 본토와 연결된 홍콩의 구룡반도의 서쪽에 매립지를 만들어 문화예술 시설 및 교육시설을 조성해 아시아의 문화예술 시장을 이끌어 나가는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홍콩 정부 주도의 최대 규모의 문화도시 조성계획은 홍콩은 물론 전 세계의 문화예술 시장의 이목을 주목시켰었고, 다사다난했던 긴 시간을 뒤로하고 단계적으로 베일에 쌓여있던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바로 2019년 1월에 개관한 Xiqu Centre이다. 시취센터(戲曲中心)의 ‘시취戲曲’는 중국에서 희곡, 즉 전통극을 뜻한다. 극장의 이름이 내포하듯이, 시취센터는 중국 전통극의 예술과 보존, 발전, 그리고 중국 남방 전통 오페라인 '월극'을 육성하고 또 다른 형태의 작품들을 만들어 내는 것을 미션으로 삼고 있다. 중국 전통극의 유산과 전통을 발전시키기 위해 새로운 작품과 레퍼토리를 창작하는 것은 물론 지역의 예술가를 육성하는 데도 힘쓰고 있다. 특히 시취센터는 중국 남방의 전통 오페라인 ‘월극’의 전용 극장으로 설계되어 그것의 상연에 최적화되게 지어졌다고 한다. 물론 월극 이외에도 경극, 곤극 등 중국 오페라는 물론 전통을 기반으로 한 현대 음악극이나 연극도 선보인다.
서구룡 문화예술지구는 아시아 문화예술 중심지로서의 발돋움을 위해 계획적으로 조성되는 문화지구인만큼 도시 간의 접근성과 시장의 흐름, 방문하는 관객의 움직임까지 철저하게 신경 쓴 듯하다. 중국 본토, 베이징까지 연결되는 고속철도역(Hong Kong West Kowloon Station - Express Rail Link)이 시취센터와 근접해 있고 홍콩 본섬에서는 페리를 타고 구룡반도에 내려 10분이면 도착할 만큼 가깝다. 물론 홍콩 각지에서 버스를 이용해 방문하는 것도 쉽고, 홍콩 내 지하철 역인 오스틴 역( Austin MTR station)에서 내리면 시추센터는 그야말로 코앞이다.
시취센터는 서구룡 문화지구의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과감한 디자인으로 주목을 끈다. 중국 전통 등불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건물 외관은 전통적 요소와 현대적 요소를 혼합하여 디자인되었다. 언뜻 보면 대나무를 엮어 둔 문양 같기도 하고, 극장 무대를 여는 무대 커튼 같기도 하다. 새롭게 아시아 문화예술 시장을 이끌어 나갈 공간인 만큼 도시적이고 현대적이지만 전통이라는 정신을 잃지 않고 이어나가겠다는 의지가 돋보이는 걸작이다. 시취센터의 특이한 점은 건물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따로 없이 갈라진 무대 커튼과 같은 모양으로 자연스럽게 개방되어 있다는 점이다. 근처를 지나는 보행자들도 아무런 진입 장벽 없이 호기심에 극장 안을 들여다 보고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는 구조다. 일반적으로 전통 공연을 위한 시설은 방문하기에 진입장벽이 높다고 인식되고 젊은 관객들에게 그리 반겨지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시취센터는 공연장을 개방되고 열린 형태로 만들었고 공간 자체를 모던하고 심플하게 조성했다. 이는 젊은 관객들을 많이 유입시켜 더 이상 전통을 고리타분한 옛것으로 남겨놓지 않겠다는 의지처럼 보였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티켓박스가 있는 넓은 아트리움이 있고 중앙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따라가면 중국식 정자가 나온다. 정자 안에는 영상을 송출할 수 있는 DID가 있고 정자 주변으로는 관람객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곡선 형태의 의자가 있다. 의자에 편하게 기대 누어 천장을 바라보면 기하학적 문양의 천장을 볼 수 있고 옆으로는 객석으로 들어갈 수 있는 나선형의 계단이 보인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극장에 들어갈 수 있는 입구를 발견할 수 있다. 시추센터에는 1,075개의 객석을 갖춘 대극장인 Grand Theatre와 200석까지 수용 가능한 Tea House극장, 그리고 8개의 스튜디오와 세미나홀을 갖추고 있다.
시취센터에서 눈여겨 볼만한 공간은 단연 이곳만의 독특한 형태로 관객들을 사로잡는 Tea House Theatre이다. 주로 중국 전통극에 새롭게 관심을 가지는 새로운 관객들에게 전통극을 소개하기 위해 특별히 기획된 프로그램을 상연하는데 쉽게 말하면 유명한 예술의 전당의 '11시 콘서트'나 국립극장의 '정오의 음악회'정도를 생각하면 된다. 다만 공연의 장르가 중국 전통 공연들을 이해하기 위한 장르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Tea House Theatre의 가장 특별한 점은 공연 중간 전통차와 딤섬, 디저트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객석 공간은 일반적인 객석이 아니라 음식을 제공받을 수 있는 탁자들이 놓여 있다. 20세기 초 홍콩 티 하우스의 따뜻한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재현한 것이다. 음식은 문화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점, 또한 티를 마시며 공연을 관람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는 중화권에서 이러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는 것은 과거의 향수를 기억하기 위한 중장년층의 관객에게도, 새로운 경험을 중요시하는 젊은 관객에게도 소구 될 수 있는 기획 프로그램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중국 문화를 깊숙이 체험하고 싶어 하는 여행자 관객에게도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너무나 적합한 기획이 아닐까.
서구룡 문화지구에서 공연장으로 개관한 두 번째 공간은 바로 지난 2019년 6월에 개관한 Freespace이다. 시취센터가 전통 공연을 발전시키기 위한 공간으로 탄생되었다면, 프리스페이스는 동시대 공연을 위한 공간이다. 시취센터에서 서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아직도 한창 앞으로 개관할 공간들의 공사현장들과 현대미술을 위한 전시공간인 M+ Pavilion을 지나치면 프리스페이스를 발견할 수 있다. 구룡반도의 끝 부분으로 녹지 공간 위, 그리고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위치다. 서구룡 문화지구는 그 규모가 꽤나 엄청나서 더운 기후의 홍콩에서는 걷기에 조금은 버거울 수 있지만 문화지구 내에서 셔틀버스 또한 운영되기 때문에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동시대 공연을 위한 공간인 만큼 건물 자체는 아주 모던하고 심플하다. 네모난 형태의 모던한 건물에 마스킹 테이프로 아무렇게나, 하지만 멋스럽게 Freespace라고 적혀있다.
프리스페이스에는 홍콩에서 가장 큰 규모의 블랙박스형 공간인 The Box가 있다. 전시는 물론 실험적인 극, 댄스, 음악, 영상 상영까지 중소규모 공연, 영상 작업에 충분히 적응할 수 있는 유연한 공간이다. 좌식 객석으로는 450명까지 수용 가능하고 스탠딩 공연으로는 900명까지도 수용 가능한 큰 공간이다. The box 이외에도 간단한 식사를 하며 음악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라이브 뮤직 바인 Livehouse와 창작공간은 The Room and The Studio도 있다. 건물은 반듯한 네모 형태로 지어진 만큼 외벽에 대형 스크린을 통해 도전적이고 실험적 작품들, 미디어를 이용한 야외 공연장으로도 사용될 수 있도록 기능적으로 만들어졌다.
서구룡 문화지구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공연장이 될 극장은 Lyric Theatre Complex이다. 2023년에 완공 예정인 이 곳은 주로 무용과 연극 공연장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1,450석 규모의 대극장과 600석 규모의 중극장, 270석 규모의 소극장으로 구성될 예정이며 대형 리허설룸과 작품을 함께 개발하고 협업할 상주 단체 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라 한다. 리릭 시어터 콤플렉스는 남쪽 바다와 맞닿는 위치에 있어 이러한 위치를 디자인적으로 최대한 활용한 극장을 건립할 예정이라 홍콩 섬에서 구룡반도를 바라보면 하나의 작품이자 또 하나의 야경 명소로 거듭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서구룡 문화지구 프로젝트의 최종 단계까지는 몇 년의 시간이 남았다. 하지만 프로젝트로 건립될 3개의 공연장 중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 수 있는 2개의 공연장은 이미 건립되었고, 운영이 시작되었다. 판은 깔아졌다. 이제 서구룡 문화지구의 남은 숙제는 어떤 프로그램들로 공간을 다채롭고 윤택하게 채워 홍콩 시민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갈증은 물론 아시아 지역의 아티스트들, 관객들까지 만족시키냐가 될 것이다. 아시아 문화예술계를 이끌어 나갈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하겠다던 큰 포부. 아시아는 물론 세계 공연 시장을 놀랍게 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