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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리너 Nov 09. 2023

FKK(Freikörperkultur)를 아십니까?

Wannsee 호수와 "자유로운 신체문화"에 대한 추억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뭐예요?

이 흔한 질문에 나의 답변은 “초여름”이다.

베를린의 여름은 판타스티쉬 fantastisch (환상적)이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을 지나, 세상은 초록으로 뒤덮이고 공기엔 움틀거리는 생명력이 가득 찬다. 거리를 지나가는 여행객들의 차양 모자는 들뜸과 기대로 주름져 있다.

한국 여름의 불쾌한 습도는 말라 뽀송뽀송 하고, 작열하는 한낮의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가, 그늘 속으로 들어가면 어느새 시원하다.      

베를린에는 아름다운 호수들이 있는데, 샬롯텐부르그 성((Schloss Charlottenburg) 안 호수에 종종 들렸다.

현대적인 건물들이 즐비한 도시 안, 고풍스러운 성이 있는 공원으로 들어가면 중세 시대로 시간여행을 온 것 같이 기분이 묘했다. 

기숙사방에 돌아가면, 의자나 티브이처럼 방을 채우고 있는 물체가 된 것 같이 무감각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지곤 해서, 호수로 곧잘 시간여행을 가곤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에서는 인문학을 전공할지라도, 공과대학 학과를 부전공으로 정해야 했다. 20년 전부터 시대의 화두였던 환경공학 선택, 당위적인 수순을 밟았다. 


생태학 첫 수업.

기술 사회학과 수업 때 친해졌던 외국친구들과도 뿔뿔이 흩어지고, 외딴섬이 되어 강의실 한편에 나무 책상처럼 튀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교수님 말씀이 환경공학 과제 중, 베를린의 지열 에너지(*), Biomass 에너지(**), 태양광 에너지, 풍력에너지 등 신재생에너지관련 시설을 조사해야 한단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이 노래졌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 안녕? 혹시 넌 베를린 출신이니?”

어깨까지 내려오는 갈색머리를 찰랑거리며 열심히 노트에 받아 적고 있는 여학생에게 말을 걸었다.

“응! 난 베를리너린(Berlinerin; 베를린 시민-여성형) 이야! 넌? 어디에서 왔니?”

그 친구는 호기심을 가득 담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나에게 질문 공을 던졌다.

“난 한국에서 유학 왔어. 근데, 베를린 지리에 익숙지 않아서, 괜찮으면 과제를 같이 할 수 있을까?”

“ 그럼!”

오래 고민 후 용기 내어 말을 꺼낸 것에 비해, 돌아오는 대답이 명료하다. 

친구의 이름은 멜라니.

“핸드폰 번호 알려줘!”

우리는 핸드폰 번호를 나누고는 츄스! 안녕 (Tschüss)! 하고 헤어졌다. 보통 이야기하길, 프랑스어는 여성스럽고 독일어는 남성스럽게 들린다고 한다. 그런데 너무 사랑스럽게 Tschüss를 외치는 멜라니의 독일어를 들으면 그 생각이 바뀔 수도 있을지 모른다.     


독일어가 사랑스럽게 들리는 베를리너린을 만나기 위해 며칠 후 약속장소에 나갔다. 

막상 자리에 나가니 멜라니보다 머리 하나가 큰 얀과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한 수줍은 또 다른 베를리너린 니나 그리고 통통한 얼굴의 야콥이 있었다. 이들은 각각 커플이었다.     

나는 운 좋게(?) 사랑이 꽃피는 커플들 사이에서 환경공학 부전공을 이어갈 수 있었다. 

당시, 에라스무스라는 프로그램(Erasmus-Programm)이 있었는데, 유럽의 각 대학들이 협약을 맺어 일정 기간 교환학생처럼 공부할 수 있었다.

스마트한 얀은 스웨덴으로 한 학기 교환학생으로 갔고, 멜라니는 남자친구 얀이 자리를 비우는 동안  자주 나와 만나고, 연인을 그리워하는 멜라니의 허기진 배와 가슴에 맛있는 잡채와 불고기를 해주며, 감탄을 받고, 더욱 친해질 수 있었다.

Liebe geht durch den Magen! (리베 겟트 두르히 덴 마겐; 사랑은 맛있는 것을 먹으면, 이루어진다!)  


얀이 돌아온 7월의 어느 날.

우리는 과제를 마치고 베를린의 아름다운 호수 반제(Wansee)로 발걸음을 옮겼다. 

반제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게 인적이 드물고, 우릴 비추는 건 하늘에 둥실 떠있는 보름달뿐이었다.

허걱.

얀이 옷을 훌렁훌렁 벗더니 몸에 한 오라기도 남겨놓지 않고는 반제로 풍덩 뛰어드는 것이 아닌가.

슬금슬금 올라오는 여름의 열기 때문인지, 호수의 신비로운 분위기에 매혹됐는지,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 얀의 실루엣을 보니 아찔했다. 난 감히 수영할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다른 애들이 풍덩풍덩 호수에 몸을 던지는 걸 보면서, 내가 보고 있는 게 실재가 맞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독일의 에프카카 FKK(Freikoerperkultur;자유로운 신체문화)라든지 나체 해변, 남녀공용사우나등 나체에 비교적 관대한 문화는 알고 있었지만, 눈앞에서 성인들이 벌거벗고 있으니 뭐라 말할 수 없는 놀라움이 나를 꽁꽁 묶었다.     

다행히 우리가 벗었으니 너도 벗어야 한다 라는 강요(?)는 없었다. 물장구 소리를 배경 삼아 호수와 여름 밤하늘과 함께, 쿠션이 훌륭한 풀숲에서 아늑하게 gemütlich (게뮤틀리히) 앉아있었다. 첨벙첨벙, 밤하늘의 별들을 눈에 담고 물소리를 배경 삼아 누우니, 천국에 와있는 것 같았다.     


독일은 해님이 귀한 손님이라, 해가 찾아오면, 부지런히 일광욕을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대학 캠퍼스나 공원, 풀밭이나 잔디밭이든 나의 몸이 기댈 자연 쿠션이 있다면 햇빛을 온몸으로 흡수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자연을 사랑하는 독일인들의 햇빛 사랑을 온몸으로 표현한다고 생각하니, 나체로 수영하는 친구들이 이상해 보이지도, 야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서 옷의 중요성을 실감하는 적이 많았다. 각종 자리에 어울리는 옷차림이 있고, 백화점 브랜드 코너에는 옷을 차려입고 가지 않으면 냉랭한 대접을 받기 일쑤였다. 

오랜만에 만난 이모에게 남편을 소개하는 자리에, 남편이 “캐주얼”한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나가서, 한껏 차려입고 나오신 이모에게 미안한 적도 있었다. 옷차림으로 예의를 표시해야 하는 것이다. 결혼식에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가서, 초대한 혼주에게 빛나는 하객이 되어주는 것도 미덕(?)이다. 

옷을 잘 입으면 환대를 받고, 허름하게 입으면 대접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옷은 나 자신이 아닌데 말이다. 수치심을 가려주고 추위를 막아주는 도구일 뿐이데, 옷이 “나”로 변해서  “나”인척 살고 있다니, 조금 이상하기도 하다.      


독일에서 7년여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공항에서 엄마는 나의 낡은 청바지와 티셔츠에 놀라며, 새 옷 사러 가자고 한 게 기억난다. 독일인의 수수함, 소탈함이 몸에 밴 내가, 오랜 기간 딸을 기다려온 엄마 눈에 초라하게 보였을 수도 있다.

보쿰에서 함께 머물렀던 독일 가족들은 검은색 패딩 점퍼 하나로 겨울을 났다.

많은 코트나 겉옷이 필요해 보이지 않았다. 수수한 옷차림을 했지만, 누구보다 삶을 아끼고, 자연과 사람을 사랑했다. 여름휴가는 1년 전부터 계획해서, 카라반을 몰고 크로아티아로, 남부 프랑스, 북부 이탈리아에 가서 열흘 이상 흠뻑 새로운 환경에 몸과 마음을 담그고 온다. 집 앞마당 가든에 정성껏 키운 사과나무는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고, 가을엔 사과를 수확하여 가족들과 친척들에 나누어주었다. 사과는 무스가 되고 잼이 되어 이방인인 나에게까지 차례가 온다.     

친구들은 수영을 마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옷을 입고, 눈길은 호수를 향한 채로, 시원한 맥주를 들고 한모금 들이켠다.

사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모든 포장을 풀어 거짓과 위선을 내려놓고, 물살이 주는 간지러움을 느끼며, 달빛에 샤워할 수 있다면, 하나의 멋진 삶의 방식이 아닐까 한다.

베를린의 초여름은 이렇듯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날 초대하고 경험하게 했다.     

알몸 수영은 태어나면서부터 쓰고 다니는 안경을 통해 볼 때, 수치와 부담으로 느껴지기에 무리가 있지만, 버킷리스트에 올려놓고, 기회가 된다면 한번 실천해 보고 싶다.

자연이 주는 아늑함과 내가 스스로에게 허락할 자유를 누려보기 위해서라면.


 * 지열에너지 [Geothermal energy]: 지구에 저장된 지하수 및 지하의 열을 이용한 에너지로, 주로 태양열로부터 땅에 저장되며 냉·난방 등에 활용 가능하다.

 ** Biomass 에너지 : 화학적 에너지로 사용 가능한 식물, 동물, 미생물 등의 생물체, 즉 바이오에너지의 에너지원을 의미하며, 생태학적으로 단위 시간 및 공간 내에 존재하는 특정 생물체의 중량 또는 에너지양을 의미하기도 한다. [바이오가스 발전소] 자연에서 얻어진 에너지로 사용 가능한 식물, 동물, 미생물 등의 모든 유기 생물체로 생물량, 생물체량, 생물연료라고 불리기도 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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