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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리너 Jun 24. 2024

뜨거운 여름엔 뜨겁게 놀멍!

축복이의 여름산책

난 두 살 하고도 3개월이다.
이 집에 온 지 2년이 넘었다는 뜻. 주인이 왔다 갔다 부산하다. 옷을 갈아입네.
혹시? 산책? 킁킁~

빨리 가방으로 들어가야지!

옳지! 주인이 현관문과 거실 사이에 설치한 울타리를 연다. 이때다 점프! 멍~!
가방 안에 있으면 나갈 확률이 높아진다. 나의 의지를 보여줬다. 이제 주인도 내 마음을 알겠지!

주인이 계속 뭘 먹는다. 입속으로 들어가는 건 뭐지? 맛있게 먹고 있다. 이 냄새가 뭔지 엄청 궁금하지만, 난 이 자리를 굳건히 지킬 테다!
눈을 마주치자! 동그랗게 간절하게! 그러면 주인이 몸을 숙여 나를 쓰다듬기도 한다.

그래, 나를 쓰다듬는다. 이제 일어나요! 나가요! 난 간절한 눈빛을 쏜다. 주인은 내 물통에 물을 담는다. 오 예! 이제 확률은 점점 높아진다.

컹컹!

내가 짖으면 더 확실해진다! 산책! 산책! 산책! 난 온 마음을 담아 크게 짖는다.

“조축복! 조용히 해!”

주인은  꽥 소리를 지른다.

흥. 난 의사 표현을 한 것뿐인데, 왜 화를 내지?

몇 번 더 짖었다. 주인이 무관심한 걸 보고 일단 지켜보기로 한다. 주인은 파란 가방을 꺼낸다. 파란 가방 이라니! 완벽해! 가방은 곧 산책이다. 꼬리펠러를 마구 돌린다. 이쯤 되면 주인도 알아채겠지? 행복. 행복 :D

산. 책. 대·환.영.

파란 가방에 물통을 넣더니  나를 차에 태운다.

주인과 단둘이 나가는 게 얼마 만인가? 난 창밖과 주인 얼굴을 번갈아본다. 설마 이 길이 주사 맞으러 가는 길은 아니겠지? 얼마 전 귀를 긁었더니, 귀 냄새를 맡더라고. 그 길로 난 의사 손에 맡겨졌었다. 대왕 주사를 한 대 맞았다. 어찌나 아프던지. 깨갱. :-(

의사 얼굴만 떠올려도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린다.


주인은 차를 세우고, 나를 가방 속에 쏙 넣는다.
앗. 이 익숙한 냄새는 뭐지?
“올해 반려견 놀이터 처음이시네요! 광견병 접종 증명서 보여주세요!”
올해 처음이라니! 너무한 거 아냐?
“아. 작년에 보여드렸는데.”
“매해 보여주셔야 해요.”
주인은 핸드폰으로 계속 뭘 뒤적인다. 난 더워서 혓바닥을 내밀었다. 좀 낫긴 한데.
주인은 10분째 앱을 뒤적이고 있다.
“아, 지루해! 더워! 빨리! 빨리!”
품에서 내려놓던지. 헐떡거리는 나를 본 안내원 아줌마가
“이번엔 그냥 들어가세요! 찾아보니 작년 10월에 맞추셨네요!”
컹컹! (땡큐 쏘 마치!)

앗! 그런데 아. 무·도 없다. 친구들의 냄새가 그립다. 사람도! 예전처럼 말이야!

http://blog.naver.com/dreamlover33/223200641738
“오늘 전세 내셨네요!”
아줌마가 한마디 거든다. 덥긴 하지만, 공놀이마저 놓칠 수 없다.
주인에게 공을 물어다 주었다.

놀고 싶어. 계속~계속~


주인은 몇 번 공을 던져주더니, 덥다며 앉으라 한다. 난 더 놀고 싶은데!

다른 친구들은 여전히 코빼기도 안 보인다. 뜨거운 여름엔 뜨겁게 놀아야 하는데!

이제 갈 시간인가!

“월요일이라 다 휴무네!”
“강아지 가방 속에 넣으면 동반 가능한가요?”
주인은 카페에 전화를 건다.
“네…. 가방 속에 넣고 덮개를 닫아야 해요?”
주인은 다른 곳에 전화를 걸고, “네! 갈게요”라고 한다.

여긴 어디?  익숙한 곳이네.
주인은 한 손에 커피, 다른 한 손엔 나를 들고 나온다.

앗 저건 뭐지? 가서 인사해도 될까? 눈빛이 심상치 않구먼. 가게 안  맛있는 냄새나는 것에 관심이 있는 걸까?

“냐옹이네”  

저 아이들은 또 뭐야?
날아다니네! 기다려! 내가 얼마나 빠른지 보여줄게! 난 엄청 빠르다고!

의사아저씨도 내 뒷다리에 얼마나 감탄했는데! 폐활량이 좋데! 어딜 가? 내 뜀박질, 봐줘!

주인은 오늘따라 멍하게 앉아있네. 어쨌든 밖에 나오니 좋다!

“덥다! 들어가자!”
카페에 사람이 하나도 없네. 좀 놀아볼까? 소파 끝까지 살금살금 걸어보자!
왈왈! 주인이 찡그린다. 얼마 만에 나온 건데! 주인! 좀 놀아보자고!
“어이쿠! 벌써 5시네!”
주인이 날 차에 태운다. 차창을 연다. 밖을 내다보다, 나를 보기도 한다. 물 냄새도 나고. 나무 냄새도 있고. 뷔페 음식을 먹은 것 같네.

아까 사납게 달려드는 벌 때문에 놀라긴 해도, 나쁘지 않은 하루였어.

으흠, 오늘은 물로 내 발을 씻겨도 참아주겠어.  놀이터를 다녀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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