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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리너 Aug 11. 2024

하트 아이비는 도돌이표!

손편지 좋아하세요?

새로운 달 첫째 주 월요일이다. 편지지를 챙겨 길을 나선다.
노인종합사회복지관에 거주하는 어르신께 한 달에 한 번 편지 쓰는 날이다.
“베를리너 씨, 손 편지 한번 써 봐.”
작년 겨울 안산여성문학회의 지인분이 권유했다.
“노인복지관에 혼자 사는 어르신인데, 어르신이 못 읽으면, 복지사가 읽어주기도 해.”
그때부터 난 손 편지를 이** 어르신 앞으로 보내고 있다.

굳이 모임에 가서 쓰지 않아도 된다. 혼자 썼을 경우, 편지봉투  인증샷을 단톡방에 올리면 된다. 그렇지만 오늘은 손 편지 모임이 가고 싶어졌다. 아버지 수술과 학교 기말고사, 새롭게 맡은 수업 준비하느라 주변을 돌아볼 틈이 없었다.
제철을 맞아 한껏 맛이 든 감자를 쪄서 통에 담아 두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문학회 부회장님이 물병에 담긴 수경식물들로 장식을 꾸미고 있었다. 원예가로 활동 중이시라 남다른 솜씨. 
“이걸로 가져가! 하트 모양이야.”
부회장님이 건네준 수경 식물명은 하트 아이비다. 예전에 파키라와 고무나무로  물꽂이를 시도했었다. 하트 아이비는 가녀린 손을 부드럽게 뻗고 있다. 물과 어울린다. 오랫동안 머물 수  있을 것 같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고 했잖은가!  

손 편지 봉사자들은 본인의 편지를 낭송했다. 무더위와 장마에 어르신이 어떻게 지내는지 여쭈었다. 시원한 수박을 나누어 드실 가족들이 오는지도.

난 담당하는 어르신의 성함과 연세만 알고 있다. 상상 속에서 그려봤다. 82세 어르신은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익숙한 의자에 앉아 사회복지사에게 내 편지를 건넨다.

"글씨가 작아서, 좀 읽어줄 수 있어요? "  눈길을 바깥세상으로 옮긴다.  

초록을 뽐내는 나무 사이로, 내 삶을 구경하는 모습.
난  기억 저장고에서 꺼낸 이야기를 전해 드린다. 특별한 주제보다는 날씨,  가족 그리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쓴다.
어렸을 때 군인 아저씨에게 위문편지 썼던 것이 기억난다. 그땐 무슨 이야기로 한 장을 채웠었지?


어르신이 지루해할까 자세히 쓰진 않는다. 6월 아버지 수술이 다행히 잘 되어 정기 검진을 다니셔야 한다는 이야기, 결혼 후 남편이 좋아하는 복숭아를 자주 먹는다고.
수박을 볼 때마다 수박 대장이었던 아버지가 떠오른다고.

어떤 봉사자는 복지관으로 편지와 함께 선물도 보냈다고 한다. 무슨 선물일지. 받는 이의 표정도 궁금하다. 즐거운 상상이다. 

손 편지 봉사자 회원분이 복지관 담당자나 어르신을 직접 만나는 것을 제안했다. 어르신을 직접 만나면 반갑고 신기할 것 같다. 

어르신께 답장받는 봉사자도 있다. 단톡방에 '**님 답장이 왔어요!'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상 받는 기분일 것 같다. 

하트 아이비는 순전히 어르신 덕분에 받았다. ‘암을 이겨내는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에세이에 보면 아래와 같이 쓰여있다.

삶에 집착하지 않는 초연한 자세도 필요합니다. 경쟁하는 순간, 몸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몸의 균형이 깨집니다. 반대로 도를 닦는 것처럼 마음을 비우면 투병에 큰 도움이 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행위를 통해 마음을 비울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 욕심, 미움, 원망이 쌓여 청소 안 한 어항처럼 뿌옇다. 손 편지를 한 줄 한 줄 써 내려갔다. 
부회장님은 오이와 블루베리 위에 하얀 요구르트를 얹어 권했다.

두 장의 편지를 쓰는 동안, 마음속 탁한 먼지가 차분히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초록향이 담긴 편지는 빨간 우체통 입속에 쏙 넣어주었다.
내 손에 들려진 ‘하트 아이비’. 초록색 하트모양 잎은 마음의 균형이 흔들릴 때 나를 잡아줄 것 같다. 도돌이표처럼, 첫째 주 월요일 오전 손 편지 쓰는 시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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