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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꽃들의 행진

by 베를리너

기다림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한 번의 시도로 원하는 결과가 나오기를. 시험을 한 방에 합격하고, 응모한 글도 첫 번째 당선되기를, 첫 번째 데이트에서 상대를 완벽하게 파악하기를. 모든 상황이 내 욕망대로 움직여주길 바란다. 그렇지 못한 현실에, 인내심이 줄어들고 사소한 일에 짜증이 생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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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되자 폭죽 터지듯 꽃망울이 맺혔다. 두 번째 개화. 제라늄이 힘차게 가지치고 있어, 싹인지 꽃인지가 불쑥 튀어나왔었다. 얼굴을 화분에 가까이 갖다 대니, 옆에 놓인 코스모스에 꽃망울이 보였다.

첫 번째 개화 때만 해도 3개의 꽃이 피었었다.


이번엔 6개의 봉오리가 열렸다. 입술을 앙다물고, 나를 기대감에 빠지게 하는 꽃봉오리. 마치 여행 가기 전날처럼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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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핀 꽃이 피고 생각보다 빨리 진다고 생각했었다. 마음을 읽은 듯, 두 번째 개화 소식을 들려주는 코스모스 덕에 껌껌한 겨울 아침이 환하게 밝아진다.

식물등을 쬐고 있는 채송화는 줄기가 붉게 물들고 앙증맞은 이파리를 힘차게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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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가 두 번째 개화를 준비하고, 제라늄이 위로 무성하게 클 때도 채송화는 자신의 시간에서 최선을 다한다. 선물받은 루꼴라는 한번 엎어지는 시련을 겪고도 겨울을 묵묵히 견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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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뜻대로 상대가 맞추지 않고, 세상일이 딱딱 이뤄지지 않는다고 실망하는 내게, 겨울꽃들이 말한다. 가장 좋은 시간에 꽃 피울 거라고.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식물들 앞에 조바심이나 실망을 내려놓게 된다.

초연한 겨울꽃들의 행진이 귀하고 아름다운 새해 선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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