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강아지 ‘축복이’는 새끼 때부터 구석진 장소에 숨는 걸 좋아했다.
몸을 있는 대로 작게 만들어 바득바득 소파 밑 작은 공간으로 기어들어 간다. 이제는 몸집이 커졌지만, 그래도 찾아 들어가길래, 먼지 가득한 소파 밑을 플라스틱판으로 막아 버렸다.
‘빨간 머리 앤’ 소설 속 앤은 비밀의 숲에 자신만의 공간이 있는 것처럼, 나도 나만의 '비밀의 숲'을 찾았다. 결혼 전 살던 동네, 후미진 골목길에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사람도 없고 혼자 생각을 정리하기 딱 좋았다. 얼마 전 방문해 보니, 2층 내 비밀장소가 사라져 버려 아쉬웠다.
지금 사는 동네의 산책로에 나무로 만든 그네가 있다. 안쪽에 자리 잡은 데다, 그네에 앉으면 나무에 내가 폭 안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무 그루터기에 앉은 것 같기도 하고, 벤치에 앉은 것 같기도 한데, 등받이가 있어 편안하고 앞뒤로 흔들흔들하면 나무와 장난치는 것 같다.
겨울이 되자 그네는 점차 잊혀 갔다.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고 총총걸음으로 따뜻한 곳을 찾아 빠르게 걸어갔다.
이전에도 시설들이 없어지던 경우가 있어, 그곳을 지날 때마다 그네가 그대로 있는지 확인하곤 했다. 그네는 하얀 눈을 맞고, 강풍이 불던 어느 날에도 꿈쩍없이 자리를 지켰다.
얼마 전 날씨가 풀리자, 옷차림을 가볍게 하고 산책길을 나섰다.
‘봄에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조심조심 걸어라. 어머니 대지가 아이를 잉태하고 있으니.’
인디언 속담을 떠올리며.
들꽃들이 톡톡 터지 듯 만개하고, 나무가 어깨동무하며 숲을 이룰 때, 부끄러운 듯 바닥에 바짝 붙어 있는 민들레꽃을 보았다. 봄이 만개한 밤 풍경 속 눈에 들어온 그네.
축복이도 예전 기억이 났는지 그네 앞에 잠시 멈추어 선다.
축복이를 앉히고, 나도 그 옆에 앉아 발을 굴려 그네를 앞뒤로 흔들어본다. 그네에 온몸을 맡기자, 셋이 한 몸이 되어 아래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나는 나무에 몸을 맡기고, 축복이 몸을 손으로 꽉 잡으니, 축복이도 편안히 엎드려 그네를 탄다.
밤바람이 슉슉 뺨을 스치지만, 춥지 않고 부드럽게 느껴진다.
밤 그네를 타면서 봄이 허락한 나무와 나만의 시간을 누려본다. 봄과 함께 찾은 나만의 비밀 공간. 밤 그네. 빨간 머리 앤처럼 밤 그네의 이름을 지어줘 봐야겠다.
겉은 딱딱하지만, 내게 보드라운 봄을 느끼게 해 준 밤 그네에 앉아,
짧은 봄을 깊이 들이마시어야겠다.
*브런치북 발행일인데, 사정상 이 글로 갈음합니다.
기다려주신 독자분들 계시다면 죄송합니다. ㅠㅠ
다음주에 진솔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성난 봄비가 내리네요. 안전하고 평안한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