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

2019. 5.17

by 효창 응봉 최중원

천하를 통일하고 나면 한숨 돌릴 수 있을 것이라 진시황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지금은 머리를 조아리고 있지만 호시탐탐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지방 제후들, 칼 끝을 언제 자신에게로 돌릴지 모르는 장군들, 그리고 변방의 오랑캐들 모두가 걱정의 덩어리가 되어 새벽녘에 그의 잠을 깨웠다.


지금까지 그는 자신에 대항하여 반기를 드는 자들의 목을 하나도 남김없이 베어버렸다. 수많은 책들도 불태워버렸다. 그럼으로써 얻은 나라다. 진시황은 필요하다면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의 목을 베어버릴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죽으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될 것인지는 보나 마나 뻔했다. 제 아들은 어렸고 유약했다. 신하들이라고는 하나같이 못 미더웠다. 나라는 다시 여럿으로 나뉠 것이고, 자기가 평생에 걸쳐 이룬 대업은 무위로 돌아갈 것이었다. 결국 방법은 진시황 자신이 영생을 얻는 것이었다.


천하를 통일하며 수많은 지역을 다녀봤지만, 그는 지금까지 신선이나 그 비슷한 존재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자신이 정복한 지역의 사람들은 언제나 가진 것 없고 보잘것없는 농민들이었다. 오늘 먹을 것을 오늘 구해야 하는 빠듯함 속에는 믿음이나 여타 신비로운 것들이 자리를 잡을 구석이 없었다. 가끔은 몇몇 자신이 신선이라 자칭하는 자들을 만나긴 했는데, 모두 엉터리였다. 진시황은 그들을 여지없이 찢어 죽였다. 지금까지 그가 해온 일들이 그런 것이었다. 미개한 헛짓거리들과 말이 안 되는 믿음들을 몰아내고, 규율과 법을 만들고, 길을 닦고 도량형을 통일하는 일. 10년 전에만 해도 누군가가 자기 앞에서 영생을 말했다면 자신은 망설임 없이 그를 처형했으리라. 하지만 지금 이렇게 절박한 마음으로 영생을 찾아 헤매다니 웃긴 일이었다.


그런 이유로 진시황은 변방, 오랑캐들의 땅, 자신이 한 번도 발을 디뎌 본 적이 없는 곳들에 희망을 걸었다. 영생을 얻을 방법이 있다면, 실마리는 분명히 어딘가 바깥에, 자신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곳에 있으리라. 이 나라에는 더는 그런 신비가 존재하지 않았다.


서른 명가량의 날쌔고 오랑캐들의 언어를 할 수 있는 후보들을 천거받아 그중 인상이 단단한 열 명을 직접 골랐다. 그들은 모두 다른 방향의 변방으로 보내질 것이었다. 동 이로 2명, 서융으로 3명, 남만으로 3명, 북적으로 2명. 두 명 빼곤 모두 남자였다. 두 명의 여자들도 남자들처럼 보였다. 자신의 신하들이 이미 충분히 그들의 임무에 관해 설명했기에 진시황은 그들에게 굳이 말을 더 보탤 필요가 없었다. 황제의 명을 받들고 있다는 징표를 직접 하사하고, 넘칠 정도로 많은 금은보화를 주었다. 어쩌면 재물을 밝히는 신선이 있어, 영생의 비법을 넘겨주는 대신에 보상으로 금화를 요구할지도 모 르는 일이었다.


그 뒤로 진시황은 오래도록 기별을 기다렸다. 달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었다. 그는 그동안 반란을 일으킨 두세 지방을 평정하고 영주들의 목을 쳤다.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영주들뿐만이 아니었다. 온몸으로 그는 자신의 노화를 느꼈다. 아무리 몸에 좋다는 귀한 음식이며 약을 달여 먹어봐도 그의 눈은 점점 침침해지고 왼쪽 무릎은 점점 아파져 왔다. 그 좋아하던 양고기 요리며 술도 이제는 마음껏 먹을 수가 없었다. 이런 종류의 항명에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그래왔던 것처럼 무자비한 처형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 그는 깊은 무기력감을 느꼈다.


다음 해에는 자신이 영생의 실마리를 찾아 보냈던 열 명 중 한 명이 붙잡혀서 수도로 압송되어왔다. 그는 애초부터 자신의 명을 따라 오랑캐들의 땅으로 갈 생각이 없었다. 그는 남쪽의 도시에서 떵떵거리며 진시황이 준 금은보화를 모두 탕진하고, 노름판에 뛰어들어 빚을 진 다음 지방 관아에 들러 황제의 징표를 보이고는 돈이며 양곡을 받아 갔다. 어느 노름판인가에서 시비가 붙어 싸움이 났는데, 홧김에 두 사람을 죽인 뒤 도 망갔다가 병사들에게 잡혔다. 진시황은 그를 직접 심문하고, 직접 그의 목을 베었다. 누군가의 목을 직접 벤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다음 해에는 서융으로 보냈던 세 명 중 한 명이 돌아왔다. 홀몸이었던 그는,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돌아왔다. 물론 그는 그 사실을 숨길 작정이었지만 진시황 부하들의 눈을 피하지는 못했다. 그가 가지고 온 것만 아니었다면 당연히 진시황은 아이를 포함한 모두의 목을 직접 쳤을 것이었다. 그는 생로병사의 꽃이라며 한 줌의 말린 식물을 진상했다. 바짝 마른 꽃잎들이 바스락 소리를 내며 진시황의 손에서 부서졌다. 서융에는 신묘한 능력을 갖춘 신선들이 있어, 수백 년 동안 죽지 않고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내리는데, 그들에게 영생을 부여해주는 것이 바로 이 꽃이라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꽃은 막 뽑아서 아직 살아 있을 때 먹어야 효과가 있는데, 고산에서 아주 희귀하게 자라는 이 식물을 산 채로 수도까지 들고 올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마른 꽃에 남아있 는 영험함으로는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 정도 수명을 늘릴 수 있을망정, 영원히 늙지 않을 수는 없다고 그는 벌벌 떨며 말했다.


바스락거리는 꽃은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파리 날개를 씹어먹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꽃을 먹은 다음 날부터 진시황은 자신의 시야가 한결 선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신에게 그 꽃을 구해와 바쳤던 사람을 다시 불러, 군사들을 붙여줄 터이 니 더 많은 꽃을, 가능하면 살아있는 상태로 구해오라 명했다. 물론 그의 아내와 아이는 수도에 남아있어야 할 터였다.


다음 해에는 북적에서 군대를 몰아 쳐들어오는 바람에 큰 전쟁이 벌어졌다. 만리장성이 아직 다 완성되기 전이어서 피해가 적지는 않았지만 결국에는 오랑캐들을 다시 국경 밖으로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나머지 여덟한테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진시황의 아들은 이제는 혈기왕성한 청년이 되었다. 하지만 진시황이 보기에는 언제나 욕심만 앞설 뿐 모든 면에서 부족했다. 물론 그 밑으로 다른 아들들이 여럿, 딸들이 여럿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진시황의 성에 차지 않았다. 그는 후계자들의 부족함을 실감할 때마다 변방에서의 기별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것만으론 모자랐다. 50명을 새 로이 뽑아서 각 방향으로 보냈다. 그들의 임무 중에는 먼저 보냈던 사람들을 찾아서, 그들의 동태를 살피고 자신의 명에 충실히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지면 죽여버리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천하를 통일한 지 10년이 되었다. 진시황은 여전히 영생에 대한 비법을 알아내지 못했 다. 그 누구에게서도 기별이 오지 않았다. 궁궐에서는 성대한 연회가 열렸다. 모든 지방의 영주들이 참석했다.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의 축하 사절단들도 도착하여 공물을 바쳤다. 진시황은 사절단들에게 어떻게 해서든 불사의 방법을 얻고 싶었지만 누구도 그런 것에 대하여 알지 못했다. 몇 달 전부터 그는 음식을 잘 소화하지 못했다. 고기를 제대로 먹지 못한지도 일 년이 되었다. 몸은 점점 무거워졌고 말이 생각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거나, 그 반대로 생각하는 속도가 말을 따라잡지 못하는 일도 빈번해졌 다. 근육으로 탄탄했던 몸은 탄력을 잃고 쳐졌다. 그는 일찍 연회장을 떠나 홀로 자신의 침실로 들어갔다. 여자를 안는 일에도 더는 흥미가 없었다.


침상에 누워 그는 생각했다. 영원히 사는 방법은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천하를 통일한 내가 이렇게 애를 써도 얻을 수 없다면, 그것은 없는 것이다. 결국 나도 한 명의 사람으로 죽는 것이다. 내가 이룬 모든 것들, 이 나라, 이 궁전, 군대 모두 내가 늙어가다가 죽는 것처럼 쇠락하고 결국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열심이었나. 내가 이 많은 사람을 죽인 것은 다 무엇 때문이었나. 그러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영생을 얻었다면 무엇이 바뀌었을까. 내 가 천하를 통일하기 전에는, 불로불사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내가 일찍이 적이었던 초나라를 복속하기 전에는, 천하 통일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내가 진의 왕이 되기 전에는, 초나라와 싸워 이기겠다는 욕심이 없었다. 같은 이치로, 만약 내가 영생을 얻었 다면 나는 또 다른 무엇인가를 욕망했을 것이었다.


영원토록 산다면 나의 욕심으로 얻은 성취들로 무한정 높은 탑을 쌓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 욕심을 성취하기 위해 베어버린 목들이며 태운 책들이며 써버린 돈들 역시 바다를 채울 만큼 많았을 테다. 지금까지 진시황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무엇인가를 소비하는 것에 거리낌이 전혀 없었지만, 이제는 이 모든 것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연회장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전쟁을 멈추고 태평성대를 이룩한 자신을 칭송하는 내용이었다. 그래도 이룬 것이 있다는 생각에 약간의 위안을 느끼며 진시황은 보드라운 비단이불을 고쳐 덮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내일은 100명, 아니 200명의 사람들을 보내자. 누구보다 더 날래고 충성스러운 사람으로. 그들 중 어느 한 명이라도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다면 나는 그에게 세상의 모든 금은보화를...

이전 01화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