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4.26
K
K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고, 무엇인가에 대해 이해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어떤 노력과 대가를 들여서라도 그것을 이해해야 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K는 이탈리아 남부 요리를 제 맛이 나게 요리하는 방법이나 뉴턴의 고전역학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거쳐 양자역학으로 이어지는 물리학의 패러다임 변경의 과정에 대해 이해했다.
K에게 제일 어려운 이해의 대상은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끝나면 결국 나는 이 사람에 대해서 하나도 알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결국 이해를 하고 나면 겨우 이것뿐이었구나 하는 실망이 찾아왔다. K에게는 후자의 경우가 더 견디기 힘든 것이어서, 차라리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또는 아직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경험적으로나 선험적으로나 불가능한 것이 자명해 보이는 이런 시도를 계속하는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한 때의 K에게는 제일 힘들었다. K는 이렇게 생각해 봤다 : 내가 누군가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순간이 온다고 치자. 그러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다음 단계를 K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더 이해할 게 없는 대상은 K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할 것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4 행정 내연기관의 작동원리를 이해했을 때 다른 모든 내연기관에 대한 관심이 식었던 것처럼, 사람에 대한 관심이 식어버릴지도 몰랐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런 허무한 생각에 빠져 있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언제나 K의 앞에는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를 자극하는 사람이 새롭게 나타났고, K는 고개를 크게 한 번 젓고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얻게 된 이런저런 공식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대상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시작했다.
L
L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으며, 그렇기에 무엇인가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비행기가 어떻게 뜰 수 있는지에 대해서 누가 물어본다면 L은 양력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었고,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날개의 아래로 흐르는 공기와 날개의 위로 흐르는 공기의 속도가 달라서 양력이 생기는 거라고도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물리학자가 아닌 이상 그 이상으로 양력에 대해서 이해할 수는 없었고, 이해할 필요도 없었다.
L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L 역시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노력이 벽에 막히면, L은 더 나아가려고 하지 않고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L은 한 사람의 이 부분이 이해되지 않으면, 그 사람의 다른 부분을 찾았다. 그 사람의 많은 부분이 이해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찾았다.
다른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또한 동시에 자기 자신 역시 타인에게 완벽하게 이해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타인에게 품었던 큰 기대가 무너지는 일이 L에게는 없었지만, 희망 섞인 기대에 기대지 않고 타인과 관계를 맺고 유지해가다 보면 종종 이게 다 무엇을 위한 일인가 싶었다. 우리가 대화를 해도 결국엔 특별하게 가까워지지 못할 것인데, 너의 나를 향한 관심도 나의 너를 향한 관심도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에만 기능할 뿐인데…
하지만 즐겁고 재미있는 순간은 자주 등장했으며, 대화를 끌어가기에 충분한 정도의 정보만 있으면 L은 이런저런 방법들로 그 순간들을 꽤 길게 늘일 수 있었다. L은 언제나 자신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까지만 타인을 향해 다가갔고, 타인에게도 딱 그만큼의 자신만을 보여줬다. 그만큼의 거리를 두고 서 있어도 충분히 의미 있는 관계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K + L
K와 L은 어느 독서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첫날이라 서로 낯을 가리는 분위기였고, 사람들은 자신의 말속에 자신을 너무 많이 투영하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단어들을 골랐지만, 그 둘은 그날 바로 서로가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연히도 그 둘은 모임이 열리는 곳에서 집까지 가는 방향이 같았고, 그래서 종종 한밤에 같은 버스를 타거나, 모임 이후 술이라도 한잔 하게 되면 새벽에 함께 택시를 타게 되었다. 집이 좀 더 가까웠던 L이 먼저 내렸고, K는 혼자서 조금 더 갔다. 버스나 택시 안에서 그들은 주로 이번 모임에서 주제가 되었던 책이나, 모임에서 나왔던 논점들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보통의 대화는 평탄하면서도 무난하게, L이 내릴 때까지 30분 정도의 시간 안에 마무리될 수 있는 분량 안에서 잘 흘러갔다.
하지만 어느 외국 소설가의 단편소설집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모임이 끝난 다음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는 조금 달랐다. 어쩌다 보니 대화의 주제가 바뀌고 바뀌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이 주제에 있어서만큼은 둘 다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화는 계속 평행선을 맴돌았다.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하며, 따라서 그것을 좇는 노력은 무의미하다는 L의 주장은 K에게는 지금까지 자신의 노력과 실패, 그리고 나아가서는 L에게 자신을 이해시키려는 시도로서의 이 논쟁도 모두 부정해버리는 것이었다. 반대로 설사 완벽한 이해가 불가능하더라도 그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시도가 타인과의 관계를 더 깊게 만들어준다는 K의 주장은 L에게는 우선 자신이 경험적으로 이해 가능한 범주를 넘어서기도 했거니와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이 피상적이었다는 비난처럼 들렸다. 논쟁은 30분이 넘게 이어졌다.
K와 L은 이렇게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화가 끊어지면 안 된다는 것에 동의했다. 그들은 보통은 L 혼자 내리던 정류장에 함께 내렸다. 정류장 바로 앞이 자기 집이었기 때문에 잠깐 고민했으나 L은 조금 더 걸으면 나오는 호프집으로 K를 안내했다.
“그래서, 결국 그쪽이 말하는 거는 내가 “사람들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을 이해해 달라는 거잖아요. 그거부터가 모순이 아닌가요. 그쪽은 나에게 타인이니 그쪽 말 마따나 나는 결국은 그쪽을 이해할 수 없는걸요.” 하고 K가 물었다.
“이해하지 않고도 받아들이는 선택지도 있어요. “ L이 대답했다.
“그러면 왜 제 “ 사람들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라는 말은 받아들이시지 않는 건가요?” K가 다시 물었다.
“그 말을 받아들이는 순간 “이해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선택지가 섣부른 오답이 되어버리거든요” L이 다시 대답했다.
생맥주와 마른안주를 사이에 두고 이런 식의 논쟁이 흘러갔다. 호프집이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지만, 서로의 의견은 계속 평행하게 달렸고, 이대로 헤어지기엔 K와 L 둘 다 여전히 찝찝했다. 결국 둘은 편의점에서 술과 안주를 조금 더 사서 L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L의 집에 들어와서 외투를 벗고 거실 한쪽 푹신한 소파에 앉았더니 K와 L을 둘러싸고 있던 전투적이었던 분위기가 한결 누그러들었다. 잠시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침묵이 흘러가는 동안 그들은 창밖에서 나는 빈 도로를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차들의 소리, 술에 취한 누군가가 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 미화업체 직원들이 재활용품을 수거해가는 소리 따위를 들었다. 벌써 새벽이다. 내일이 주말이라서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