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5.24
1.
솔직히 말하자. 청소는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엔트로피의 증가라는 자연의 물리적 법칙에 반하는 것이며
언제나 과거의 정돈된 상태를 목표로 하기에 과거지향적이다. 무엇보다 너무나도 귀찮은 일이다.
물론 내가 청소를 싫어한다고 해도 그 필요성마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청소가 필요하다. 빈도와 강도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사람은 존재 자체가 자연에 반하며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구석이 있고, 따라서 청소라는 행위에 모든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고.
어질러진 내 방의 상태를 애써 외면하면서 나는 글쓰기의 세계로 도피하여 시간을 좀 벌어볼 작정이다.
그러기 위해서 예전에 잠깐씩 나와 같은 공간을 공유했던 친구들이 건네는 도움을 기꺼이 받아보도록 하자.
2.
"청소란 말이야,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억압하고 착취를 감추기 위해 발명한 개념이라구"
지금까지 들어본 것 중에 제일 급진적인 청소에 대한 의견을 개진한 사람은 친구 A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좋아하는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친구였는데, 나와 그는 1년 반을 기숙사 2인실에서 같이 살았다.
"생각해 보라고, 혁명이라는 중요한 과업을 이뤄내야 하는 이 중차대한 시대에 사람들은 고작 자신의 방에 먼지가 조금 쌓였다는 이유로 어떤 청소기를 사야 할지, 거기에 맞는 필터는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혹시 부모님한테도 그렇게 말해 봤어?"
"응"
"뭐라셔?"
"이런 헛소리 하는 꼴이나 보려고 대학 등록금 내준 게 아니니 빨리 니 방 걸레질이나 하라셨어"
하지만 A는 막상 청소를 할 때면 무척이나 열심이었다. 다이소에서 사 온 작은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방을 꼼꼼히 쓸어 담고는, 해진 수건을 물걸레로 사용하여 훔치고 닦는다. 가끔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된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나는 그와 조금 더 친해지고 싶어서 마르크스의 책을 빌려서 읽어봤던 적이 있는데, 무엇보다 사람은 노동을 통해서 자신의 본성을 변화시키고 나아가서 세계를 바꾼다는 대목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청소라는 노동을 통해 혹시 A는 무엇인가를, 어떻게든 바꾸고 싶었던 것일까.
3.
“나에게 청소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을 정리하는 게 아니라, 내 안의 모드를 리셋하는 거야"
하고 친구 B는 말했다. 그는 A의 뒤를 이어 나의 새로운 룸메이트가 된 사람이었다.
"요컨대 중요한 것은, 깨끗이 청소된 공간이 아니라, 청소를 하는 행위 그 자체인 거지"
그는 경영학을 공부하는 친구였다. 나보다 나이가 서 너살 많았는데, 이 때는 "신보호주의의 대두가 국제 경영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1년 가까이 석사 논문을 쓰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논문을 쓸 때 1장의 글을 마무리하고 나면, 바로 그 장의 주제에서 벗어나서 다음 장의 주제에 몰두해야 하는 거야. 그런데 사람의 정신이란 게 그렇게 기계처럼 바로 모드가 전환되는 게 아니잖아? 그러면 책상을 한 번 정리하는 거지. 펼쳐져 있는 참고 서적들도 다시 다 책장에 꽂아 놓고, 노트북의 바탕화면도 새로이 정리하고, 바닥을 쓸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피자박스나 맥주 캔들도 납작하게 만들어서 재활용함에 넣어. 그러고 나서 깔끔하게 청소된 내 책상에 앉으면, 그제야 나는 다음 장을 쓸 마음의 준비가 되는 거야. 요컨대 물리적인 청소를 통해서 내 머릿속도 청소하는 거지"
"그러면 논문을 다 쓰고 나면 엄청난 대청소를 하겠네?"
B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청소를 하는 날이 오기는 하겠지. 논문을 다 쓰든, 졸업을 포기하든 때가 되면 거하게 한판 벌일 생각이야”
전반적으로 B는 자신의 주변을 청결하게, 혹은 깨끗하게 해 놓고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졸업논문이 다 완성되기 전에는 자신의 공간을 완벽하게 청소할 수 없다고, 핑계가 아니라 정말 지금까지 쓰던 졸업 논문의 내용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모두 사라질 수도 있다고 말버릇처럼 B는 말했다. 하지만 B는 결국 자신의 논문을 완성하지 않고 대학원을 떠나버렸다. 새로운 룸메이트가 오기 전까지 나는 혼자서 우리의 방을 리셋해야 했다.
4.
"무릇 진지하게 사색하는 태도가 삶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세상의 모든 세속적인 주제로부터 철학적인 의미를 끌어낼 수 있어야 하죠. “청소”라는 주제가 좋은 예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고 강사 C가 말했다. 대학교에서 들었던 서양 철학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풀어서 설명해주는 교양 강좌였다. 물론 C와 나는 같은 공간에서 살아봤던 적이 없고, 따라서 이론이 아닌 실천적 측면에서 그가 청소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나는 알지 못했다. “좋은 사색은 질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럼, 청소에 대한 사색은 이런 질문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겠죠. 청소란 무엇인가? 왜 우리는 청소를 하는가? 청소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얻는가? 다른 행위와 청소를 구분 짓는 요소들은 무엇인가. 청소의 정도가 있는가? 주제가 그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많은 질문들을 던져볼 수 있고…”
“청소 이야기 나와서 말인데, 형 오늘 나오면서 분리수거 다 했어요?”
하고 내 옆에 앉아서 수업을 듣던 D가 나에게 귓속말로 말을 걸었다. 마지막 학년 때 기숙사 재배정에서 탈락한 다음 나는 학교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서 근처 투룸에서 월세를 나누어 내고 같이 살 사람을 찾았는데,
그렇게 하우스메이트가 된 사람이 D였다. 강사 C와는 반대로, 나는 D가 청소를 이론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실천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의 나지막하고 작은, 그러면서도 규율과 권위가 서있는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는데,
늦잠을 자다 정오가 다 되어 일어나 부리나케 나오는 바람에, 오늘 아침에 내가 하기로 했던 분리수거 쓰레기 버리기라는 임무를 완전히 까먹었기 때문이었다.
D는 유별나게 청결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청소에는 예민했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청소를 하는 것보다 청소를 위한 규칙과 계획을 짜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 규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무척 스트레스를 받았다. 요컨대 설거지가 안 되어 있으면 그 지저분한 상태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설거지를 누가 언제 하는지에 대한 이미 명문화되어있는 규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싫어했다. 우리 집의 냉장고 문에는 D가 제안하고 내가 고개를 끄덕인, 우리의 공동생활에 필요한 수많은 명문화된 규칙들이 적혀있었는데, 그 규칙들이 점점 증식하여 더 큰 문이 달린 냉장고를 사야 할 지경이었다. 그들 중에서 지금까지도 뚜렷하게 기억이 남는 규칙이 하나 있다. 한 번 지키지 못한 규칙은, 두 번 다시 어기지 않는다.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이런 무시무시한 메타-규칙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 규칙을 어기면 분명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 만 같았다.
저번 달에 이미 내 차례였던 분리수거를 하지 않았던 사실이 있었기에, 나는 대답을 얼버무리고는 수업에서 15분 일찍 나와서 먼저 집으로 향해야 했다.
5.
자신이 머무는 곳마다 새로운 생태계를 창조해서 “창조자”라는 멋들어진 별명을 얻게 된 친구 E도,
청소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싫다며 부모님이 주신 용돈으로 살면서 방문 청소 서비스를 받았던 친구 F도 생각난다. 하지만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청소를 해야 할 시간이다. 커피는 식었고, 설거지 거리는 쌓여 있으며, 책상 밑에는 머리카락들과 과자 부스러기가 보인다. 세탁기가 자신의 임무가 끝났다고 건조한 전자음으로 전보를 친 지도 한참 지났다. 친구 E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하는 것은 무척 유감이지만 다음 기회가 있을 것이다. 청소는 생각보다 꽤 자주 해야 하고, 나는 언제나 그게 너무 귀찮아서 어떻게든 그 임무를 가능한 한 끝까지 미루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