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2019.6.14

by 효창 응봉 최중원

1

적당한 포만감을 즐기며 마루에 드러누워 밖의 풍경을 구경하다가 산책을 하러 나가기로 한다. 자동으로 열린 문을 통해서 오전의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 들어온다. 더위도 한 풀 꺾이고, 가을로 접어드는 선선한 바람의 향을 맡는다. 집 밖을 나가지도 않았지만 벌써 즐겁다.


“또 어디 나가니” 하고 헤드폰을 끼고 컴퓨터 책상에 앉아있던, 나와 같이 사는 사람이 말한다. 이 사람은 좀 불쌍하다.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다. 제일 친한 친구라고는 컴퓨터뿐이다. 컴퓨터는 친구이자 같이 일을 하는 동료이기도 하다. 타자를 치고, 마우스 스크롤을 내리고, 그러면서 언제나 모니터를 본다.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것 같다. 종종 모니터를 돌려 자신의 작업을 나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구한다. 디자인을 잘 알지 못하여 언제나 대답이 궁한 나는 아무 소리나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어본다. 그러면 이 사람은 내 소리를 어떨 때는 찬사로, 어떨 때는 경멸로 받아들이고 “역시 그럴 줄 알았어” 하며 환호를 하거나 “역시 그럴 줄 알았어” 하며 머리를 감싸 쥔다.


내가 문 앞에 서서 가만히 이 사람을 보고 있자니 조금 섭섭한 얼굴로 물어본다. “너 혹시 밖에서 새로 친구라도 사귄 거 아니야?” 이 사람은 조금 속이 좁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대답을 얼버무리고 얼른 문 밖으로 몸을 날린다.


2

나는 산책을 자주 한다. 산책을 하는 이유는 없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 지면 화장실에 가는 것처럼 산책이 하고 싶어 지면 산책을 한다. 어느 정도는 정해진 길이 있다. 집 앞 넓지 않은 찻길을 건너서 풀숲이 무성한 공터를 가로질러간다. 공터 한편에는 쓰다 남은 건축 자재들이 여기저기 만들다 만 탑처럼 쌓여있다.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 올라가지 않고 지나친다. 공터의 끝에서는 우선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주택가의 골목길을 걸으면서 나무와 담벼락이 드리우는 그늘과 햇볕이 만드는 기분 좋은 리듬을 몸으로 느낀다.


오전의 이 동네는 조용하고 사람이 없다. 나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산책을 할 때는 방해받지 않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산책을 하면서 진지한 사색을 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사색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다들 철학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대목에서 잠깐 나는 나와 같이 사는 사람을 생각한다. 그 사람의 말수가 적은 컴퓨터 친구를 생각한다. 그 둘은 좁은 방에 둘이서 있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나와 같이 사는 사람이 친구인 컴퓨터와 둘이서 사실은 어떠한 종류의 철학적인 사색을 해보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한다. 옆에서 보기에 그 사색은 스펙트럼이 아주 넓다. 나와 같이 사는 사람은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즐거워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가끔은 졸기도 한다. 반면 컴퓨터 친구는 한결같이 규칙적인 팬 돌아가는 소리만 낸다. 이 일방적인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면서 나는 몸이 가는 대로, 계단을 오르고 담을 넘어 걷고 걷는다. 그리고 이번에 나오는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폐업한 슈퍼마켓 앞 평상 위에서 나는 새로 사귄 친구를 만난다.



3

집에 돌아와 보니 같이 사는 사람은 책상에 엎드려서 자고 있다. 잠은 좋은 것이다. 나도 자는 것을 좋아한다. 이 사람은 잠을 조금 더 많이, 그리고 자주 잘 필요가 있다. 내가 맞다면 이 사람은 무슨 일인가의 마감을 맞추느라 어제부터 계속 깨어있었다. 규칙적으로 몸을 천천히 들썩이며 웅크려 자고 있는 이 사람을 보니 나도 노곤해지는 기분이 든다. 밖에서 새로운 친구랑 열심히 논 덕분이다. 가볍게 책상 위로 뛰어올라가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는 잡동사니들을 대충 팔과 꼬리로 떨어트려 치우고는 나의 자리를 잡는다. 다 마시고 식은 커피가 들어있는 잔은 떨어트리면 좀 번거로운 일이 벌어지기에 모니터 앞쪽으로 밀어 놓았다.


기분 좋게 잠의 세계로 빠져드려는 순간 나는 컴퓨터의 모니터를 본다. 모니터에는 금붕어가 헤엄을 치고 있다. 하나 둘 셋, 모두 세 마리다. 나는 이것이 화면보호기라는 것을 안다. 발전한 모니터 기술 때문에 더 이상 화면보호기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마치 인간의 꼬리뼈처럼 진화를 따라가지 못한 예전의 흔적이다. 꼬리가 사라지는 방향의 진화라니 나에게는 악몽 같은 생각이지만.


물론 나와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은 나를 약 올리기 위해 이 화면보호기를 띄워놓는다. 이 금붕어들은 진짜가 아니다. 다들 그것을 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고양이들은 바보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 빨갛고 노란 픽셀들이 한 덩어리를 이루어 헤엄치듯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내 안의 누군가가 내 안의 어떤 스위치를 탁, 켜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졸음은 사라진다. 나는 시선을 모니터에 고정한 채로 몸을 납작 엎드리고, 전투기가 출격 전에 무장 장치들을 점검하는 것처럼 발톱을 꺼내어 쫙 펴보고는 다시 숨긴다. 세 마리 중 왼쪽 위에서 헤엄치는, 왠지 모르게 움직임이 굼뜨지만 제일 큰 금붕어를 목표로 삼는다. 숨을 고르고, 다리의 근육을 최대한 수축시킨다. 힘을 모으고, 지금이다 하는 순간에 금붕어를 향해 달려든다.


4

나와 같이 사는 사람은 무척 화를 낸다. 여기에 그대로 옮겨 적어본다.

“이놈아! 아니 왜 주변에 뭐가 서 있는지 도통 신경을 쓰지 않는 거야? 내가 너 때문에 깨 먹은 컵이 몇 개며 쏟은 커피가 몇 잔인 줄 알아? 또 커피에 젖어서 갈색이 돼버린 만화책은 또 몇 권인 줄 알아? 아니 내가 데스크톱으로 작업하고 있어서 이번에는 키보드만 젖었지만, 맥북이라도 펼쳐놓고 있었으면 전체 메인보드를 갈아야 했을 수도 있었다고! 맥북 메인보드 교체 비용이 얼만지는 알아? 적어도 100만 원은 된다고! 100만 원이 얼마큼 큰돈인 줄 알아? 내가 몇 시간 일해야 이 돈을 버는지 알아? 그 돈으로 네가 먹는 홀리스틱 급 사료를 몇 포대나 살 수 있는 줄 알아? 가만히 있어 보자. 미안해 내가 암산에 좀 약해. 대략 2kg들이로 80포대네.. 츄르는 1000봉은 더 살 수 있고... 응? 이제 네가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 알겠지? 이 티셔츠도 봐봐! 커피 때문에 이렇게 얼룩이 져 버렸잖아! 이거는 어떻게 할 거야? 네가 손빨래라도 할래?”

티셔츠에 대해서 말하자면, 나는 얼룩이 진 상태가 조금 더 맘에 든다. 하얀색 단색은 좀 심심하다. 그래 봤자 나의 예쁜 3색 무늬에 대적하려면 몇 번은 더 음료를 쏟아야겠지만.

“아니, 들어왔으면, 금붕어들하고 놀 거면 시작하기 전에 기척이라도 줄 것이지. 그러면 내가 잔을 치우기라도 하잖아. “

고양이는 원래 걸어 다닐 때 기척을 내지 않는다. 사람들처럼 쿵쾅거리며 부산을 떨며 다니지 않는다. 그래도 고양이들은 서로 다 알아본다. 이건 둔한 인간이 잘못이다.

“도대체 몇 번을 말해도 알아듣지를 않아. 제발 컴퓨터 책상 위에서는 좀 조심히 해달라고, 응? 알았어?”

이 사람의 손이 내 얼굴로 향한다. 이 분위기에 이 사람의 손이 내 얼굴로 향하는 것은 내 턱이나 이마를 기분 좋게 만져주려는 것이 아니다. 고양이가 무엇인가를 잘못했을 때에는 코를 지그시 눌러주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정말 하나도 맞지 않는 팁을 이 사람은 어디선가에서 얻었음이 틀림없다. 분명히 단짝 친구 컴퓨터한테서 얻어낸 정보다. 언젠가는 네 녀석에게 커피를 쏟아버리고 말겠어.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사람의 검지 손가락이 바로 내 분홍색의 촉촉한 코 앞에까지 다가왔기 때문에, 나는 귀를 아래로 젖히고, 입을 크게 벌려 이빨을 드러내면서 하악, 하고 나의 의사를 전달한다. 효과는 언제나 그렇듯 확실하다. 나와 같이 사는 사람은 마음의 상처를 입고 침실로 들어간다.


5

나는 화장실에 가서 맛동산을 두 덩이 정도 꼼꼼히 묻어놓는다. 그러고 나서는 밥을 아작아작 씹어 먹고, 물도 조금 마신다. 창가에 올라앉아서 바깥 풍경도 구경한다. 작은 날벌레들이 날아다니고, 종종 잠자리도 보인다. ㅁ두 어번은 덩치만 크고 둔한 멍멍이들이 목줄을 찬 채로 지나간다. 그러면서 나는 나와 같이 사는 사람을 생각한다. 이 사람이 지금 이렇게 날카로운 이유는, 얼마 전에 프로젝트 비딩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 아니면 저번 달에 반년 정도 만나던 사람이랑 헤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까 이 사람이 말 한대로, 내가 책상 위에 있는 컵을 떨어트려서 깨트린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일은 처음이다. 심지어 이번 달 초에 컵을 쏟아서, 다시 읽으려고 책상에 모아두었던 전 연인의 편지를 온통 갈색으로 물들여서 도저히 읽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을 때에는 칭찬도 받았었다. 궁상맞은 짓 안 하게 잘해줬다고 츄르를 두 개나 주었다. 그 편지들은 하지만 아직도 세 번째 서랍 안에 들어 있다. 잘 말려진 채로. 이 사람은 아마도 곧 다시 그 편지들을 꺼내서 궁상을 떠는 것을 시도하게 될 것이다.


문득 나는 생각한다. 이 사람과 함께 지내게 되면서, 나는 예전의 일과 미래의 일에 대해서 부쩍 많이 생각하게 된다. 사람에게 있어 지금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그들에게는 십 수년의 지나간 과거들과 또 수십 년의 다가올 미래들이 중요하다. 과거는 현재의 원인으로, 현재는 과거의 결과이자 미래의 원인으로, 또 미래는 덜 미래의 결과이자 더 미래의 원인으로... 끝도 없는 인과의 고리들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다. 나는 사람과 그들이 생각하는 시간관념이 함께 산책을 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누가 산책을 시키고 누가 산책을 하는가. 누가 즐겁고 누가 귀찮은가. 목줄의 손잡이는 누가 쥐고 있을까.


보통의 고양이는 이렇게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일의 이유에 대해서도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고양이에게도 원인과 결과는 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다. 배가 부르면 누워서 그루밍을 한다. 졸리면 잠을 잔다. 요의가 느껴지면 화장실을 간다. 화장실이 더러우면 집 안의 다른 폭신한 곳을 찾는다. 기분이 나쁘면 하악하는 소리를 낸다. 하지만 언제나 원인에서 결과로 이르는 과정은 순식간이다. 그 과정을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나눌 이유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고양이에게는 지금, 현재라는 시간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고양이가 인간의 말을 배울 때에는 무엇보다 동사에 시제가 있다는 것이 첫 번째 난관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이 글에서 몇 번 성공적으로 동사의 과거와 미래 시제를 사용한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바이다.)


문득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나와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 조금 불쌍하게 여겨진다. 만회해야 할 과거와 성공해야 할 미래 사이에 낀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 잘게 쪼개진 스케쥴러의 칸칸의 하루, 그 하루 속 24개로 또 나누어진 시간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 양치를 하는 데 매번 3분을 쓰고 그럼에도 치과의사에게 매번 돈을 많이 가져다줘야 하는데, 게다가 의사에게 탄산음료 때문에 충치가 생긴다는 인과관계를 들어서 콜라를 끊고자 노력을 하지만 그 노력이 채 1주일을 가지 못하는 사람. 어쩌다 산책을 나갈 때에도 정해진 시간만큼만, 잘 닦여진 길 위만 걷다 오는 사람. 놀랍게도 나는 아까 이 사람에게 하악 소리를 낸 것은 좀 너무 했다는 생각을 한다. 후회를 하는 고양이라니, 나 역시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고양이답게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불쌍한 이 사람의 마음을 풀어주고 싶어 졌고, 그렇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무엇보다 이 사람은 나에게 밥과 츄르와 물, 그리고 깨끗한 화장실 모래를 제공해 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고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것을 아주 잘한다. 사실 사람은 아주 단순해서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귀여운 외모, 보드라운 털과 사람보다 조금 따듯한 체온, 그리고 약간의 성의 표시로 꾹꾹이를 하거나 골골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 정도다. 나는 몸을 일으켜서 침실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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