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2019.7.5

by 효창 응봉 최중원


1

스뎅으로 된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은 이 다섯은 모두 같은 과 학생들이다. 그중 셋은 10학번, 한 명은 11학번, 다른 한 명은 12학번이다. 언제나 사람들을 모으기 좋아하는 10학번 부과대 지현이 근처에 자취하는 사람들을 이 곳으로 불렀다. 요컨대 종강 기념 주민 파티였다. 지현의 연락을 받고 나온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술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 지현과도 다들 일정 정도 이상으로 친했다. 정확히 이 술자리에 누가 나오는지도 알지 못한 채로, 다들 슬리퍼나 조리에 반바지에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고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나왔다. 8월의 여름밤이었고, 낮의 햇볕에 데워진 온기가 아직 남아 후덥지근했다.


종수는 웃는 얼굴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꼬막을 발라먹고 있었지만 내심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 자리에 준우가 있는 줄 알았더라면 자신은 나오지 않았었을 것이었다. 종수는 10학번, 준우는 11학번이지만 둘의 나이는 같다. 준우가 재수를 해서 학교에 1년 늦게 들어온 것이다. 학기 초 몇 번의 과 행사에서 만난 뒤에 그들은 서로 말을 트는 것에 합의했다. 물론 그것은 아무 문제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준우가 12학번의 민아랑 사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둘은 서로가 사귀는 관계는 아니라고 여러 번 공식적으로 해명했지만, 그들의 말을 믿는 사람들은 과 내에 아무도 없었다. 그들의 친밀한 관계를 목격한 복수의 증언들이 있었다. 종수 자신도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과 엠티 둘째 날, 모두가 술에 뻗어있던 이른 아침 벤치에서… 종수는 그 광경을 다시 떠오르고 싶지 않아서 눈을 불끈 감았다. 그러나 지우려 하면 지울수록 머릿속의 그 둘은 더욱 선명해졌다. 자신은 그래도 남자답게 고백을 했었다. 민아가 자신과 연락을 자주 주고받을 때가 있었다. 자신은 조금 더 확실한 관계가 되기를 원했고, 그래서 여러 성의 있는 절차를 거쳐서 고백을 했고, 그리고 거절당했다. 그 뒤로는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는다. 민아가 준우와 부쩍 같이 다니게 된 것도 바로 그때쯤부터다. 종수는 준우의 번지르르한 얼굴을 바라본다. 가르마 펌으로 말아 넘겨 올린 헤어 스타일이 그의 길쭉한 얼굴형을 더 강조하고 있었다. 민아가 자신 대신 이 얼간이를 선택했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참으면서 종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종수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무는 것을 보고 승현이 말했다.

“ 엇 형, 그 담배 이츠죠? 우와 그거 피는 사람 처음 봐요!”

승현은 이 자리에서 제일 어린 친구였다. 12학번, 현역으로 들어왔다. 앳된 얼굴에, 밝은 갈색으로 염색하고 펌을 한 머리. 서글서글한 표정으로 누나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승현 너도 담배 피니?” 하고 지현이 놀란 눈으로 말했다.

“선배, 저 고1 때부터 폈어요” 하며 승현은 보란 듯이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낸다. 은색의 지포 라이터다. 그리고 그것으로 종수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며 물었다.

“ 이츠 저 펴본 적 한 번도 없는데, 어때요? 저는 보통 에센 피거든요”

종수가 한 모금 연기를 들이켠 뒤 대답을 하려는데, 먼저 준우가 대답했다.

“ 이츠를 요즘 누가 펴. 맛도 별로구… 너무 올드해 보이니까 승현이는 그냥 피지 마”

“뭐?” 하고 종수가 놀라서 되물었다. 이건 명백한 도발이었다.

“내가 올드해 보인다고?”

준우는 잠 짓 놀라는 표정으로 손을 휘저었다. “ 아냐 종수야, 네가 올드해 보인다는 게 아니라, 네가 피는 담배가 올드해 보인다는 거지”


종수는 준우의 저런 능청스러움이 정말 싫었다. 저런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는 말과 태도로 민아를 휘어잡다니, 가끔은 이 얼간이에게 휘어 잡힌 민아가 실망스럽게 여겨질 때도 있었다. 종수는 욕이 나오는 것을 애써 참으며 말했다. “야 이준우, 말 똑바로 해라. 네가 나 지금 돌려 까고 있는 거 다 알거든? 그리고 담배도 안 피는 놈이 무슨 담배 맛을 안다고 떠드냐?”

“아 그건 인정. “ 하고 준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나 담배 안 펴봐서 맛은 잘 몰라. 그런데 맛 별로고 올드해 보인다는 것은 나랑 친한, 담배를 엄청 많이 피워본 친구의 의견이야. 난 그걸 믿을 만하다고 여겨서 그냥 전달한 거고. 야 그런데 이게 무슨 리포트 쓰는 것도 아니고, 인용 표시 안 한 것 그렇게 큰 잘못이냐?” 지현이 갑작스러운 분위기의 변화에 당황해하면서 중재에 나섰다.

“얘들아 너희 갑자기 왜 그래? 어떤 담배를 피고 안 피고 그런 것은 취향이잖아. 나도 이츠 펴봤는데 그렇게 나쁘진 않더라.”

승현도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종수도 여기서 한판 싸움이라도 벌일 생각은 아니었다. 그런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다고 민아가 자신에게 오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 순간, 종수의 머릿속에, 준우에게 꼭 물어봐야 할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 야 이준우, 담배를 많이 핀다는 네 친구, 민아를 말하는 거냐?” 아니라는 대답이 나오길 바라면서 종수가 물었다. 썩 내키지 않는 대답을 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준우가 말했다. “ 굳이 누군지는 말 안 하려고 했지만, 물어보는데 거짓말할 필요도 없지. 이츠 피면 올드해 보인다고 말해준 사람, 민아 맞아”


2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그들은 소주 두 병과 파전 하나를 더 시켰다.


민아가 자신을 가리켜서 올드하다고 말한 것은 명백했다. 종수는 준우의 이야기를 다르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준우가 거짓말이라도 했다면 모를까. 충격 속에서 종수는 자신을 뒤돌아보았다. 자신이 피는 담배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듣는 음악, 자신의 헤어스타일, 음식 취향, 모든 것을 생각해보았다. 푸마 로고가 박힌 조리와, 유니클로의 스포츠웨어 반바지, 그리고 알 수 없는 브랜드의 무지 회색 반팔 티셔츠를 입은 지금 자신의 옷차림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자신의 취향이 민아에게는 너무 올드한 것일까? 어쩌면 오아시스를 제일 좋아한다고 말한 것이 탈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강다니엘이 누군지 모른다고 대답했던 것 때문이었을까? 민아는 무슨 담배를 폈던가. 만날 때마다 거의 매번 다른 담배를 들고 다녔던 것 같았다.


침묵을 깬 것은, 지금까지 조용히 술만 마시던 현석이었다.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말수가 적고 정적인 이 친구가 갑자기 소주 한잔을 털어놓고 준우에게 말을 걸었다. “ 준우, 너 민아랑 무슨 사이야?”

준우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 나랑 민아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 그냥 친한 친구?”

현석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 그렇다면, 내가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되겠다.”

“ 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굳이 알 필요가 없다면 알려주지 않아도 괜찮아” 하고 준우는 쿨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이제는 지현이 투덜거렸다. “ 너네 그런데 진짜 너무한다. 계속 이 자리에도 없는 민아 이야기밖에 안 하네?”

“이 자리에 없으니까 하는 게 아닐까?” 하고 현석이 대답했다.

아까부터 종수는 계속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올드한 취향에 대해 곱씹어 보고 있었고, 준우도 왠지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중이었다.


느닷없는 선배들의 기싸움에 어떻게 할 줄 몰라하고 있었던 승현이 지현에게 말했다. “그럼 이제 우리 선배 이야기라도 좀 할까요?”

지현의 큰 눈이 갑자기 동그래졌다. “ 그래 내 이야기 좀 해줘 봐, 우리 귀여운 후배님. 아니 그것보다, 너 선배들 사이에서 인기 많은 거 알고 있니? 알고 있지? 모르지는 않을 거야. 네가 갈 때마다 그렇게 꺅꺅대는데”

승현이 눈을 잠깐 찌푸렸다. “솔직히 그거 좀 별로예요. 그리고 사실 반쯤 놀리는 거잖아요.”

“어머, 왜, 이게 다 누나들이 너 귀여워서 그러는 거야”

“귀여운 거는 싫어요. 뭘 해도 맨날 귀엽다고만 하고”

지현이 승현의 머리를 매만지며 깔깔 웃었다. “ 어이쿠, 야, 이러니까 귀엽다는 소리를 듣는 거야”

“아씨, 저는 이제 그런 거 싫어요.” 하고 승현이 신경질적으로 지현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종수에게 몸을 돌렸다. “종수 선배, 그 이츠 한 대만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종수는 천천히 승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왜” 승현은 종수가 아닌 지현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저도 좀 올드해져 보려고요”


“이 새끼가, 너까지 나를 놀리냐?” 화가 머리 끝까지 뻗친 종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금방 한 대라도 때릴 기색이었다. 놀란 지현이 종수를 말리러 함께 일어났다. “ 야야, 종수, 그러지 마, 왜 그래 아직 어린애잖아” 뜬금없이 준우도 함께 일어났다. “아 진짜 미치겠네” 준우는 아까 전 현석이 하려다 만 이야기가 무엇인지 고민하느라 머리를 벅벅 긁어서 가르마를 세워 잘 넘겼던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다.

“ 현석아, 그냥 아까 그거, 말 좀 해줘라”

“그냥 친구사이라면서, 그렇다면 내가 이야기를 해 줄 이유가 없어”

“그렇다면, 우리가 무슨 사이여야 내가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거야?”

“음… 사귀는 사이? 아니면 적어도 서로가 마음이 있다던지, 썸을 타고 있다던지”


준우는 잠시 고민하면서 자신과 민아의 사이를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고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한 단어로 설명할 수는 없는 관계였다. 준우는 침을 한번 삼키고, 진지하고 진실한 마음을 담아서 말했다. “내가 민아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

“꺄아…” 하고 지현이 입을 막고 동그란 눈으로 준우를 바라보았다. 종수의 표정은 다시 한번 일그러졌다. 현석은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 그렇게 대답한다면, 내가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곤 가까이 오라는 뜻으로 손을 들어 까닥거렸다. 준우는 현석 옆으로 걸어가서 몸을 기울였다. 가까이 내려온 준우의 귀에 현석이 작게 속삭였다. 긴장과 궁금함 속에서 나머지 모두가 그 광경을 주시했다. 준우의 표정이 천천히 변했다. 긴장으로 팽팽하게 당겨졌던 그의 얼굴 근육들이 수축되고는, 잠시 뒤에는 다시 놀라움으로 팽창되었다. 놀라움은 다시 허탈함으로 바뀌었다.

“동원 선배라고…?” 나지막하게 준우가 되뇌었다.

“동원 선배? 09학번 동원 오빠?” 하고 중얼거린 사람은 지현이 었다. 지현의 큰 눈이 멍해졌다.

“동원오빠랑 민아?”

현석이 낭패라는 듯이 눈을 감고 이마를 감싸 쥐었다. “준우야… 이럴 거면 내가 너한테만 말한 이유가 없잖아…”

지현의 얼굴도 서서히 바뀌었다. 언제나 사람 좋은 웃음을 짓던 지현의 얼굴에 분노가 서려있었다.

“현석, 이건 나한테도 자세히 설명해줘야겠는걸?” 하고 지현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지현아, 미안한데 내가 또 그걸 너에게 말해야 할 이유가…”

“이유가 있어. 동원오빠, 나에게 저번 주에 고백했거든? 오늘도 낮에 함께 스파이더맨 보고 왔어”

모두가 숨을 크게 들이켰다.


현석이 한 숨을 쉬었다.

“이렇게 된 거 그냥 다 말할게. 너희도 알다시피, 나 동원 선배랑 전공실습수업 같은 조거든. 조별과제하느라 자주 만나기도 하고. 저번 주 일요일에 실기실에서 조별 모임이 있었는데, 나는 다른 할 것도 있고 해서 한 시간 정도 일찍 갔단 말이야. 그런데 실기실에 동원이 형이랑 민아가 같이 있더라고”

“같이 있는 게 다야? 그거야 아무 문제도 아니잖아. “ 하고 지현이 급하게 캐물었다.

“… 했대” 하고 준우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뭐를 했다고?”

“키스를 했대!”

“말도 안 돼…”하고 지현이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저번 주 일요일이면… 나한테 고백한 다다음날이잖아?… “


“선배들!" 하고 외치며 뒤늦게 벌떡 일어난 사람은 승현이었다. 그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으로 말을 이었다. “선배들! 대학교 원래 이런 곳이에요? 막 서로가 서로 속이고, 바람피우고, 양다리 걸치고, 아무 하고나 키스하고 그런 곳이에요?” 갑작스러운 승현의 반응에 모두가 놀랐다.

“승현아 왜 그래 진정해. 다들 그렇지는 않아” 하고 현석이 승현을 진정시켜보려는 시도로 말했다.

그러나 승현은 현석의 말을 듣지 않았다. 대신 승현은 지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대답해요 지현 선배, 아니 지현 누나. 대학교 이런 곳이에요? 동원 선배 고백을 받아줬어요? 그럼 저번 주부터 둘이 사귀는 거였어요? 영화관도 같이 가고, 영화 보면서 손도 같이 잡고, 또, 막, 키스도 했어요?”

“야 승현, 갑자기 왜 그래. 그러든 말든 넌 또 무슨 상관인데?” 지현이 황당해하며 물었다.

“제가 왜 여기에 왔을까요? 저 사실 노원에서 통학해요. 자취 안 하거든요? 여기서 선배들이랑 술 마시고 파하면, 다들 걸어서 오분 십분 안에 집에 들어갈 때 저는 택시를 타고 40분을 가거나, 아니면 돈이 없을 때에는 피시방에서 첫 차 시간을 기다려요. 몇 번이나 그랬죠. 제가 왜 그랬을까요?”

승현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이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지현을 바라보았다.

“ 뭐? 너 설마..? 나? 나를?”

“ 눈치도 참 없으시죠. 전 이제 학교를 다닐 이유가 없네요. 군대라도 가야 할까 봐요.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승현은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 가방을 낚아챈 다음에 몸을 돌려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가 붙잡을 새도 없이 미닫이 문을 드르륵 열고 뛰어나가던 승현은, 그러나 취기를 이기지 못하고 발을 헛디뎌 문지방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3

그들은 계산을 마치고 나와 실내포차 바깥의 화단 경계석에 앉았다. 새벽의 공기는 시원했고 오가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주인 할머니가 포차의 셔터를 내리다 그들을 보았다.

“에휴 지랄들 하지 말고 집에나 얼른 들어가! 다음에 오면 술 좀만 덜 마시고”

“네 그럴게요” 하고 현석 혼자 대답했다.


모두가 말없이 앉아있다가 하나둘씩 품에서 담배를 꺼냈다. 지현은 해피스타를, 종수는 이츠를 꺼내 물었다. 준우도 종수에게 이츠를 한 개비 달라고 부탁했다. 종수는 조금 고민했지만 하나를 건네주었다. 준우는 여전히 재수 없는 면상이었지만, 그래도 오늘은 제일 재수가 덜 없어 보였다. 서로가 서로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모두 말없이 담배를 폈다. 담배를 제대로 피워 본 적이 없는 준우는 계속 기침을 했다. 그렇게 시끄럽게 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승현은 특별히 다친 곳이 없었다. 그럼에도 승현은 한참 동안이나 울었다. 종수는 승현에게도 이츠를 한 개비 주었다. 눈물과 콧물로 엉망이 된 얼굴로 승현은 이츠를 물고는 불을 붙인 뒤에 한 모금을 빨았다.


“어떠냐, 올드한 맛이.” 하고 종수가 승현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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