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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창 응봉 최중원 Sep 17. 2019

함부르크 일기 1일차

함부르크 정착기 / 대학원 생활기 / 9월 15일

이어비엔비 집 문. "위험을 감수하고 들어와라. 여가는 내가 치킨다" 고 써 있다... 아 치킨 먹고 싶다

피곤하니까 간단히 적는다. 먼저 나의 상황부터.


민선은 UDK에서 아직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하는데, 나는 덜컥 함부르크 HAW에 붙어버렸다. 원래 생각은 내가 입학을 한 학기, 혹은 1년 늦추는 것이었는데, HAW에서는 그럴거면 처음부터 입시를 다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한 학기동안은 떨어져서 살기로 했다. 그나마 함부르크여서 다행이지, (플릭스버스로 3시간 반)

쾰른이나 프라이부엌이나 요런 곳에 갔다면 어땠을 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함부르크에서 집 구하기는 베를린보다 더 어렵다고 소문이 자자했고, 월세도 비쌌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노력하기를 포기하고 민들레민박에서 제일 싼 방을 구해 장기로 머물고, 민선이 졸업을 하면 그때 제대로 된 집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래저래 일이 있어서, 9월 15일부터 30일까지 보름간은 엄청 싼 에어비엔비에서 머물게 되었다. 그 에어비엔비의 침대에 앉아서 지금 일기를 쓰고 있다. 학교에서 꼬박 한시간 가까히 걸리는, 엄청 외곽의 집 지하방이다. 말 그대로 켈러다. 켈러였던 곳을 조금 손봐 사람을 들이는 것이다. 복도에는 30분마다 제습기가 켜지고, 내 얼굴 두개만한 창문에는 한낮에도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미국에서 온 니콜은 40대~50대 쯤 되어보이는 여자인데, 작은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우고, 마당에는 닭들도 키운다. 주방 바닥에 놓여진 고양이 사료 포대로 봐서는 집 어딘가에 고양이도 키우는 것 같다. 내가 결혼했다니까 내 나이를 물었다. 32살이라고 하니까 말을 한참 못 잇더니, 19살쯤 되는 줄 알았다고 한다. 


나는 9월 15일에 플릭스 버스를 타고 함부르크에 도착했는데, 일요일이여서 여는 곳은 거의 없었다. 아프로포 플릭스버스 : (3시간 30분의 플릭스 버스 좌석에서 나는, 나보다 몸무게가 4배는 더 나가는 초고도비만 아저씨의 허벅지와 팔에 반쯤 짓눌리면서 왔다. 그 아저씨는 자신의 아이패드를 자신의 배 위에 놓고 안정적으로 영화를 시쳥했다.)  짐을 풀고 나니 4시, 아침에 민선이 해준 죽을 먹고 난 뒤로 먹은게 없이 시간이 흘렀다. 주변에 연 레스토랑은 역시 케밥집뿐. 10분을 걸어서 케밥집에 갈 수 있다니, 베를린의 우리 집보다 더 시내느낌이잖아? 하고 생각하며 케밥집에 걸어갔다.


케밥집에서는 작은 충격의 순간들이 있었다. 먼저 직원들이 터키인이 아니다. 백인이다. 이 케밥집만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베를린에서는 터키인이 아닌 케밥집 직원을 거의 보지 못했다. 두 번째로, 되너 임 브롯이 아니라 되너타셰다. 하긴 제일 기본이 되는 작은 빵도 지역마다 다르게 말하는게 독일인데.


케밥은 역시 어디서나 맛있었다. 케밥을 먹으면서 프라이부어크와 호펜하임간의 분데스리가 경기를 봤다. 3:0으로 프라이부어크가 이기고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나로서는 이렇게 되면 호펜하임을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는 집으로 걸어와서, 벽에 기대고 침대에 앉아서 작업을 하고, 인터넷으로 딴짓도 좀 하고, 학교 홈페이지 들어가서 이런 저런 정보를 찾았다. 학교의 시스템이나 행정같은게 한국의 대학교와는 너무 달라서, 읽고 또 읽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긴장을 하게 된다. 벌써 피곤해진다. 독일에 온 뒤로 처음으로, 요 얼마 전부터 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물을 몇 번 떠 마시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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