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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창 응봉 최중원 Sep 17. 2019

함부르크 일기 2일차

함부르크 정착기 / 대학원 생활기 / 9월 16일

내가 머물고 있는 이 곳에 몇 명의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지하에는 방이 두개가 있고, 어제 들어오면서 다른 방 문틈 너머로 써 제이미 경과 비슷한 남자가 침대에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윗층에도 몇 명이 에어비엔비로 들어와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주인까지 모두 5명은 되지 않을까? 


"하우스 룰" 이 적힌 종이에는, 6시부터 8시까지가 화장실이 제일 붐비니, 그때 샤워를 짧게 짧게 해달라고 적혀있었다. 음... 나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다. 8시 30쯤 일어나서 뒹굴뒹굴하다 9시에 나와서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샤워를 즐겼다.


원래 계획은 돈 아낄 겸 숙소에 쭉 머무는 것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에서는 잠만 자고 최대한 빨리 기어나와야 한다. 그래서 10시쯤 짐을 챙겨서 나왔다. 21번 버스를 타고 4정거장을 가서, 베를린에서부터 알게된 융에 베이커리의 점포를 찾아간다. 원래 함부르크에서 시작한 체인이기에, 함부르크의 어느 동네를 다녀도 항상 볼 수 있다. 프랑쬐지셰스 브룃첸이랑 크래프티겐 커피를 시켜 아침을 먹는다. 융에 베이커리는 다 좋은데 인터넷이 안된다. 어느 지점을 가도 안된다.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오래 머물 수 없어서 다른 곳으로 나왔다.


21번 버스를 타고 4정거장을 더 가면 이번에는 꽤 큰 중심가가 나온다. 물론 그렇다고 함부르크의 시내나, 베를린의 슈테글리츠 같은 번화가를 생각하면 안된다. 오스터슈트라세 근처의 아포스텔키르쉐 옆, 카페 메이에 갔다. 구글 맵에서 cafe with Wifi 를 검색해서 나온 곳 중 하나인데 카페는 넓었고 좌석은 편안했으며, 사과토르트가 맛있었다. 이 곳에서 3시간 넘게 있으며 만화를 좀 그리고, 작업도 좀 하고, 책도 좀 읽고, 다시 학교 관련 정보를 찾았다. 다 좋은데 인터넷이 조금 많이 느렸다. 


이번엔 지하철을 타고 학교 근처에 있는 더블 커피로 향한다. 4시인데 이미 배는 고프고, 카페 옆에 버거킹이 보여서 와퍼 세트를 시켜 먹었다. 그리고는 더블 커피로 갔다. 하지만 와이파이는 없고 커피도 맛이 없다. 여기서는 책만 읽었다.


다섯시 30분쯤 카페를 일어나서 학교로 향했다. 면접을 본 건물은 다른 곳에 있었기에, 내가 다니게 될 건물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ㅁ자로 서있는 고풍스러운 3층의 벽돌로 된 학교 건물에 면하여, 새로 지은 하얗고 반듯하고 발코니 난간이 유리로 된 거주용 건물들이 서 있었다. 학교와는 낮은 초록색 울타리로 구분되어 있었고,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주택단지에서 학교로 쏟아져 내려왔는데, 그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학교 바깥에 움직이는 것이라곤 단 하나도 없어서 귀신의 학교라도 온 기분이었다. 


하지만 내 과 DMI 가 위치한 A동의 꼭대기층에 올라가서 마스터 아뜰리에 D02를 가 보니,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있었다. 그리고 이 마스터 아뜰리에는 무척이나 익숙한 모습이였다. 소파와 작업 테이블과, 널부러진 빈 술병등. 아무리 봐도 내가 다니던 학교의 49동 2층 과방이었다! 


사람들이 다 오고, 두 명의 교수들도 와서 이리저리 두서없는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교수들의 말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석사 3학기 중 첫 학기에 우리는 학생들이 다 같이 참여해야 하는 프로그램들을 짰다. 서로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고, 서로한테 배울 수 있고, 협동해서 일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 공통으로 하는 수업이 하나 있고, 선택해서 개별 작업을 하는 수업이 하나 있다. 그 두개를 모두 아우르는 주제는 Öffentlich werden 이다. 주제가 번역하기 좀 어렵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학사 수업에나 어울릴 법한 뉘앙스였다.


우리는 서로 짧게 소개를 했다. 나 외에 중국인이 2명, 이란인이 1명 있었고 나머지 20명은 전부 독일인이었다. 그 중 1/3이 HAW에서 바첼러를 마치고 바로 넘어오고, 그 나머지 중 몇몇은 뮌스터에서, 몇몇은 어디에서 바첼러를 하고 와서 이미 서로 좀 알고 있었다. 


교수와 학생들의 독일어를 알아듣는 것은 역시 어렵고, 나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아듣겠다는 욕심을 버렸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들리는 것만 들었다. 한 시간 반 가량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준비된 와인을 마시는 가벼운 자리가 이어졌다. (공식적으로는 독일의 대학에서는 알콜을 섭취하는 것이 금지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가본 모든 룬트강에서 빈 술병이 나뒹굴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중국인들은 중국인들끼리, HAW에서 올라온 학생들은 그들끼리, 뮌스터 사람들은 그들끼리 이야기 하고, 나는 프라이부어크에서 올라온 수염이 멋진 사람이랑 프라이부어크와 슈바츠발트, 쉬파렌, 서울, 한국어와 독일어, 함부르크에서 방 구하기의 어려움, 산과 바다중 어느 곳이 더 좋은지 등등의 다양한 스몰토크 주제로 이야기했다.


두명의 교수님 중 한명인 슈테판(남자, 편집디자인) 에게 내가 다가가서 요즘 내 최고의 걱정거리에 대해서 질문했다. 뭐냐면 9월 30일부터 10월 5일까지 일정상 인텐시브 워크샵이 잡혀있어서 주말을 포함해서 비워놓으라는 요청을 미리 받았는데, 내가 그 글을 읽기 전에 이미 베를린의 민선 집 이사가 10월 1일 아침으로 잡혀있었다는 것. 그래서 나는 9월 30, 10월 1일 이렇게 이틀을 워크샵을 빠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hmm, das ist nicht gut, das ist nicht gut, aber mal gucken"

라고 말하는  교수님의 표정이 좋지 않아서 고민이 된다.


핸드폰은 베터리가 나가서 꺼지고, 나는 집에 오는 길에 레베에서 간단히 장을 봤다. 우유, 시리얼, 바나나, 그리고 베를린에서 즐겨 마시던 루이보스 카라멜 차. 집에 들어와서 찬장을 뒤져보니, 베를린의 우리 집에도 있었던, 빨간 하트가 그려진 이케아 머그컵이 있다. 물을 끓이고, 들고 켈러로 내려와서 루이보스 카라멜 티백을 담근다.

익숙한 컵에 익숙한 향과 맛, 덕분에 조금 마음이 풀어진다.


이제 올라가서 씻고 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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