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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창 응봉 최중원 Sep 18. 2019

함부르크 3일차

함부르크 정착기 / 대학원 생활기 / 9월 17일 

조금 무서운 꿈을 꿨다. 가위눌린 것 같기도 하다. 자다 깨 보니 무엇인가가 내 위에 올라와서 나를 누르고 있었다. 온몸을 꼼짝달싹 할 수 없었다. 꽤나 무서웠지만 순간이었고 또 금방 잠들었다.  하지만 그 다음에 완전히 일어날 때까지 여러 번 깼고, 그 때마다 누가 있는지 주변을 확인해야 했다. 옆방의 써 제이미는 여섯시쯤부터 일어나서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했다.

 

아홉시 반쯤 일어나 민선이 마스터 프로젝트 관련해서 교수님을 보러 갔는데 나름 괜찮았었다고 적은 메세지를 보았다. 세수를 하고, 차를 끓여서 어제 레베에서 사온 참치 샌드위치와 함께 먹으며 만화를 그려서 올렸다. 느긋하게 나와서 5번 버스를 타고 Balz und Balz 카페에 향했다.


카페는 작고 힙했다. 로컬의 길쭉 힙스터들이 가득했다. 나는 12시부터 3시반까지 머물며 카푸치노 두잔을 마시고 크로아상을 하나 먹었다. 책을 읽고, 작업을 했다.


4시부터는 대학원 선배들이 자신들의 작업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런데 가봤더니 개별 작업이 아니라 자신들이 첫학기때 모여서 공동으로 무엇을 했는지를 사진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대략 말을 들어보니 이 학교 좀 정신이 없고 왔다갔다 하는 것 같다. 뒤셀도르프 갈 껄 그랬나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다.


이 학교에서 바첼러를 마치고 올라온 학생들이 우리를 데리고 다니며 시설을 보여주고 멘자와 카페를 보여주고 이리저리 설명을 해줬다. 동판화 석판화, 활자 실습실, 컴퓨터실, 출력실, 디지털드로잉실 등등이 잘 갖춰져있었다.

그리고 다시 과방으로 올라왔더니 먹을거와 마실게 차려져있었다.


먹을 걸 떠서 앉아서 먹으며 주변에 앉은 독일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시도해보았다. 문법은 많이 틀려도 내가 하려는 말을 전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서로 자기들끼리 이야기할때는 나는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된다. 민선에게 이미 이야기를 여러번 들었지만 막상 경험해보니 정말 바보가 된 기분이다.


이런 실력과 이런 마음가짐으로 나는 함부르크 인싸가 될 수 있을것인가? 아마 안될 거라고 생각하며 나는 조금 일찍 자리를 떠서 함부르크의 ZOB로 향한다. 내일과 모레는 수업이 없어서 오늘 저녁에 베를린으로 갔다 모레 저녁에 다시 함부르크로 올라가기로 했다. 3시간 30분 정도면 그래도 이렇게 다닐 만 하다.


버스 안에서는 팟캐스트를 듣거나 사랑을 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주제로 글을 썼다. 오랫동안 안 썼더니 잘 써지지 않는다. 결국엔 야심을 버리고 힘을 빼고 쓰기로 했다. 어차피 글쓰기 모임에는 당분간 나가지 못한다.


버스에 내려서 익숙한 베를린 풍경을 보니, 익숙하게 후질그레한 에스반 열차에 타고 나니, 2년만에 베를린이 거의 내 고향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민선이는 연락이 없는 것으로 보아 침대에서 작업을 하다 불을 다 켜놓고 쓰러져 자고 있는 것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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