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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창 응봉 최중원 Oct 07. 2019

일주일 인텐시브 워크샵 기록

HAW Hamburg 생활기

일주일 동안 이번에 마스터를 시작한 친구들 모두가 모여서 잡지를 만드는 워크샵이 끝났다. 정확히 말하면 아마 아직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지금 모든 조들이 다 출력해서 모아보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중인데, 나는 플릭스 버스를 타고 베를린으로 내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조별로 과제하는 것을 싫어했는데, 여기서 하니까 정말 더 싫다. 어느 정도 서로의 능력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끼리 일을 진행하는 학교 밖에서의 협업과 달리, 학교 안에서의 그룹 과제는 정말 폭탄돌리기에 가깝다. 사실 제일 큰 문제는 나의 모자란 독일어 실력이다. 나의 생각을 100퍼센트 제대로 전달할 수가 없고, 그런데 시간은 없고, 그러니까 그냥 한 두번 의견을 말하고 설득해보려고 노력한 다음에, 상대방이 그걸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포기하게 된다. 물론 더 큰 문제는 처음부터 이 조별 과제 자체에 큰 흥미나 의욕이 없었다는 것이고. 주제를 정하는 데에도, 조를 나누는 데에도 나는 관여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나는 하지만 주어진 시간 안에서, 일정 정도의 노력을 초과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한 퀄러티의 작업을 만들자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한 것이다. 


워크샵에 대한 기록과 그 순간순간들에 내가 생각한 것들을 잊지 않게 여기에 기록한다.


전체 잡지의 주제는 Reibungsfläche Hamburg. 한국어로 번역하면 마찰의 면들, 함부르크 정도 될 수 있겠다. 이 마찰은 사회적 계급 사이에서 나타는 눈에 선명히 드러나는 갈등일 수도 있지만 조금 더 미묘하고 숨겨져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모두 24명의 석사 학생들은 저마다 3-4명씩 조를 나누었다. 모두 7개의 조가 나왔고, 조를 나누는 날에 나는 민선의 이사 때문에 베를린에 있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중국인 후아와 러시아인 안톤과 한 조가 되었다.


안톤은 이미 이 학교에서 바첼러를 졸업헀다. 일주일에 2일을 디자인회사에서 일한다. 덕분에 항상 할게 많고, 그래서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고 싶어한다. 아주 좋다. 모름지기 디자이너라면 생산성을 끌어 올리는 거에 신경을 써야 한다. 안그러면 일찍 죽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친구의 미적 취향이 나와 좀 다르다는 것에 있다. 자료로 조사해온 예시들은 때깔나고 힙한 디자인의 잡지 내지들이었는데, 안톤은 우리와 작업을 하면서 계속 디자인이 너무 지루하다. 더 재밌고 다양하고 특별해야 한다고 했다. 이 친구가 잘못하고 있는 점 세가지. 우선 첫 번째로,  디자이너라면 어떤것이 취향의 문제이고 어떤 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인지를 잘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안톤은 그렇지 못하다. 두 번째로, 이 친구는 내용보다 디자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어느 정도는 이해되는 바이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디자인을 공부하러 왔지 컨텐츠 기획을 배우러 온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래도 디자인과 그 내용 사이엔 명백한 선후관계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이 순서를 지켜야 한다는 나의 생각은 명백히 밝히건데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세 번째는 두번째랑 이어지는 항목인데, 이 친구는 디자인이 좋아보여야 한다는 집착이 좀 커서,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억지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의 컨셉에 굳이 긴 학문적인 텍스트는 필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 모두 독일어가 모국어인 화자도 아니고, 해당 분야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어쨌든 의미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입장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그는 두권의 책에서 내용을 발췌했다며 엄청 긴 글을 써 왔다. 잡지니까 어느 분량 이상의 글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준비해 온 것이다. 물론 나는 읽어보지도 않았다. 필요하지 않은 글 독일어로 읽을만큼 내 에너지가 넘처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안톤은 우리 셋 중 독일어를 제일 잘했고, 따라서 교수인 스테판과 커뮤니케이션도 대부분 그가 담당했다. 우리와 조율되지 않은 자신의 의견을 교수에게 먼저 말하고는, 그 다음에는 교수님과 말한 거 못들었니? 하고는 그대로 진행하려고 한다. 그리고는 보통 먼저 집으로 가고, 해오기로 했던 것도 종종 하지 않았다. 결국은 내가 독일어에 능통하지 않은게 문제이다.


후아는 킬에서 이미 학사를 마치고 왔다. 독일에서 이미 학사를 마쳤다면 독일어를 훨씬 더 잘 해야 하는게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나보다 독일어를 못하고, 무엇보다 발음이 명확하지 않다. 킬에서는 미디어 디자인을 공부했었고, 그러다 보니 그래픽이나 편집 작업에 대한 경험은 많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잡지를 만드는 일을, 그것도 잘 안되는 독일어로 의사소통 하면서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많이 위축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딱한 건 딱한거고 못하는 것은 못하는 것이다. 어차피 안톤도 후아도 이 글을 볼 일이 없을테니 생각하는 그대로 적는다고 해도 문제될 것은 없다. 후아는 일단 디자인적 감각이 조금 부족하다. 이는 후아의 학사 작업을 봤을 때 이미 느꼈던 바이다. 또 이 친구는 글을 못 쓴다. 독일어를 못 쓴다는 게 아니다. 이 사람은 분명히 중국어로도 흥미있는 글을 쓰지 못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 프로젝트의 주제에 대해 잠깐 설명을 할 필요가 있다. 필드 리서치에서 우리는 각자가 조사했던 것을 발표했다. 후아는 스트리트 아트에 대해서 발표했는데, Derbysieger 라는 스티커의 더비가 중세 기사들의 창싸움이라고 설명했다. 1. 더비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에 조금 놀랐고, 2. 인터넷으로 찾아봈지만 제대로 뜻을  찾지 못했다는 것에 놀랐다. 하지만 교수 스테판은 이 오해가 아주 재밌다며, 외국인, 혹은 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함부르크에 와서 심볼이나 그래픽을 보고 오해를 한다면 그거 자체가 마찰일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조는 방향을 틀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스티커, 그래피티, 심볼을 모으고, 그것을 후아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후아가 적은 해석들은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노잼이었다. 결국 모든 „재해석“들은 내가 다시 적어야 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게 너무 쉬운 일이다. 심지어 작업하면서 재미까지 느낄 정도다. 그래서 우리는 후아에게, 내가 기존에 맡아 하고 있었던 콜라주 작업을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놀랍게도 그 것도 잘 하지 못했다. 스마일 아이콘의 형태에 맞게 작은 이미지들 여러개를 채워넣는 작업조차도. 물론 여기서 후아에게 너무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가혹할 것이다. 안톤도, 그리고 다른 독일인도 나와 같은 조로 작업을 한다면 분명 답답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독일어의 부족과 그로 인해 비효율적이고 덜 정확하게 커뮤니케이션하게 되는 것이 너무나 뼈아프다.  


일주일 동안 정말 정말 이 워크샵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하루에 다섯 여섯시간만 자고, 아침 여섯시에 나와서 저녁 10시쯤 집에 들어갔다. 중간에 껴 있었던 공휴일은 물론 주말 역시 다 투자했다. 나의 솔직한 감상으로는 이런 짧은 워크샵으로 나온 어설픈 결과물이 학생들 각자가 좀 경험치를 쌓았다는 것 이외에는 다른 의미가 없다. 


이쯤이면 아마 전체 작업 리뷰는 끝났을 것이다. 리뷰 시작전, 내가 마스터 라움에서 도망나오기 전에 교수님이 내가 쓴 „재해석“을 보고 즐겁게 웃는 것을 봤다. 솔직히 이번 작업에서 나에게 애착이 가는 것은 오로지 내가 새로 쓴  „재해석“뿐이다.  내가 독일어로 쓴 그 짧은 해석의 글들이 다른 독일인 들에게도 재미있게 읽힐 수 있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의 보람은 있었다고 말 할 수 있겠다. 나 없이 마무리를 해야 하는 후아와 안톤에게는, 이렇게 말하면 미안하지만, 미안하지 않다. 안톤은 이 프로젝트에 지금까지 시간을 너무 투자하지 않았고, 후아는 시간은 투자했지만 제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조별 작업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솔직히 나는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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