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창 응봉 최중원 Sep 30. 2019

함부르크 일기

9월 25일 ~29일

정신없는 며칠이었다. 대학원은 시작했고, 당연한 거지만 학생들과 교수들은 모두 독일어를 너무 잘하고, 그리고 토론이나 의견 교환을 시도 때도 없이 해서 모든 것이 예상했던 시간보다 더 걸린다. 함부르크의 에어비엔비는 여전히 지하 감옥같아서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베를린으로 도망을 가야 했다. JD와 하은이 베를린에서 함부르크로 이사가기 위해 헤르츠에서 큰 벤을 빌렸는데, 그 김에 우리 짐도 가져다 준다고 해서 그 짐도 따로 챙겨놨다. (내가 10월 1일부터 옮길 함부르크의 민들레 민박 옆방이 JD와 하은의 집이다). 


금요일 오전에는 사람들이 저번 금요일 시위에서 관찰한 결과를 벽에 붙여놓고 간단한 프레젠테이션을 했는데,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의 반도 말 하지 못했다. 그래도 이젠 별로 타격이 없다. 오후 수업은 째고 하은과 JD가 짐 내리는 것을 도와주러 민들레 민박으로 갔다. 무엇인가 착오가 있었는지 그들의 방에 이미 민박손님이 들어와 있어서, 짐을 모두 아랫층 창고에 내려놓아야 했다. 내 짐은 박스 두개, 베낭 세개, 기타 하나.  그리고 노민이었나 하는 이름의 몽골 친구의 짐도 있었다.  이 친구는 조금 후에 도착했는데 정말 한국사람과 구분할 수 없었다. 


차를 반납하고 밥을 먹으려 보니 건너편에 포르투갈 식당이 있어서 그곳에 들어갔다. 셋이서 차를 빌리고 기름값을 내는 데 300유로가 들었다길래 밥은 내가 사기로 헀다. 역시 포르투갈 음식은 맛있었다. 몽골 친구는 인생 처음으로 연어가 아닌 해산물을 먹어봤는데 맛있다고 놀랐다. 예약해두었던 플릭스 버스를 탈 시간이 되지 않아서 취소하고, 다다음 버스를 새로 예약했다. 몽골 친구와 같이 버스를 타고 베를린으로 내려왔다. 전공이 독일어여서 독일어를 정말 물흐르듯이 잘했다. 부전공이 한국어여서, 한국어로도 대화했는데, 내 독일어 실력보다 이 친구의 한국어 실력이 더 좋은 것 같아서 자괴감이 느껴졌다.


토요일에는 저번에 권감독님이 주신 영상 작업을 열심히 해야 했다. 민선이 도서관 카페 알바 끝날 때 쯤 항상 그랬듯이 카페로 가서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고, 민선이 새로 이사할 링스레벤에 위치한 제이클래식의 숙소로 가봤다. 정남쪽 끝인 지금 우리 집에서 남동쪽 끝인 링스레벤. 직선거리론 멀지 않지만 대중교통을 타고 가려면 위로 올라가다가 다시 내려가야 해서 한시간이 넘게 걸린다. 동네의 분위기는 같은 듯 다른 듯. 하지만 열쇠함에 있어야 할 열쇠가 없어서 우리는 방 안을 들어가 보지 못했다. 그대신 동네 구경을 하고, 제일 가까운 레바논 식당에서 엄청 맛있고 싼 버거 세트를 먹어보고, 무려 우리 둘이 함께는 처음으로 (그래봤자 나도 이번이 세번째)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비싸지만 너무나 편한 것. 자본의 개가 되어 택시를 맘껏 타고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일기는 그래서 일요일, 플릭스 버스를 타고 함부르크로 다시 올라가는 저녁에 쓴다. 오늘 일요일에는 오전부터 열심히 민선과 함께 짐싸기 및 정리를 했다. 싸도 싸도 끝이 없고 버려도 버려도 끝이 없다. 겨우 2년 산 건데 뭐가 이렇게 많은 건지. 그래도 정말 많이 정리했다. 침대방의 문제가 있는 전등은 결국 기술자를 부르기로 했다. 페이스북에서 구한 기술자는 너무 친절해서 어떻게 고치면 되는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지만 자신이 없어서 그냥 와서 해달라고 했다.


내일은 에어비엔비 숙소에서 체크아웃 하고, 11시에 수업이 시작하고 다섯시 몇분에는 다시 베를린으로 내려가는 플릭스 버스를 탄다.  이래저래 고단한 요즘이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을 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