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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창 응봉 최중원 Oct 07. 2019


1

전쟁통에  엄마 아빠는 다섯 명의 자식 중 세 명을 잃었다. 쌍둥이였던 첫째와 둘째 오빠는 징집되어 싸움터에 나갔다가 차례대로 죽었다. 16살 때였다. 셋째였던 큰 언니는 피난을 갔을 때 돌았던 전염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13살 때였다. 넷째였던 오빠는 전쟁 때 너무 어렸던 덕에 징집을 피할 수 있어서 살았다. 다섯 번째 언니는 다니던 임시 학교에 아군의 비행기가 오폭을 하는 바람에 얼굴에 화상을 입고 한쪽 귀가 멀었다. 나는 평화협정이 맺어지던 해에 막둥이로 태어나서 전쟁을 직접 겪어보지는 않았으나, 5년간 계속되었던 전쟁은 마을과 도시, 밭과 숲은 물론 사람들의 마음까지 온전하게 남은 것 없이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자라면서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이 쉬이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장면들은 많이 보았다. 


우리 집은 도시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근교에 있었다. 숲과 들이 만나는 경계에, 다른 열 채 가량의 집들과 함께, 마을이라고 부르기에도 궁색한 모양새다. 그래도 빵집도, 슈퍼도, 주유소도, 카페도, 나름 없는 게 없는 곳이다. 그 모든 서비스를 한 장소에서 제공한다는 것만 빼면.  주유소에서는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손자가 번갈아가면서 일했다. 큰 간선도로가 마을의 바로 옆을 지나고 있어서, 기름을 넣으러 주유소에 들리는 장거리 운전자가 꽤 자주 있었다. 연휴 때가 되면 나는 온갖 종류의 차들이 늘어서 있는 것을 구경하러 주유소 앞에서 얼쩡거리곤 했었다. 흙먼지가 날리고 주인 없는 개들의 똥이 널린 우리 마을의 좁은 길 따위는 한 번도 달려본 적이 없는 것 같은 빛나는 차들에는 산뜻하고 구김 하나 없는 옷을 입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개새끼들” 이건 주유소 삼촌의 입버릇이었다. 

“전쟁 나니까 다 서쪽으로 도망갔던 사람들이 다 부자가 되어서 돌아왔네. 죽어라 그 고생하고 겨우 살아 돌아온 우리들은 여기서 이렇게 굽신거려야 하고. 누구 때문에 살아있는 건지도 모르는 것들이” 

주유소 삼촌은 이제 30이 좀 넘었다고 들었다. 쌍둥이 오빠와 함께 징집되어서 같은 부대에 배치되었고, 곧바로 죽은 두 오빠들과는 달리 어떻게 어떻게 살아남아서 전쟁이 끝나고 돌아왔다. 왼쪽 엄지손가락은 총알에 맞아 날아갔으나 그 정도면 아주 온전한 몸으로 돌아온 편이었다. 


주유소 삼촌은 자신이 전쟁터에서 겪었던 일들을 말하는 것을 즐겼다. 나와 넷째 오빠, 다섯째 언니, 혹은 동네의 다른 동생들을 앉혀놓고는 자신이 배치된 지 일주일도 안돼서 벌어졌던 큰 전투와 그 전투에서 자신의 동료들을 거의 잃고 홀홀 단신으로 한 달가량을 걸어서 결국엔 후방에 있던 부대와 합류한 이야기, 그다음 해에 있었던 겨울 대 공세에 참여해서 적의 전차 세 대를 수류탄으로 부순 이야기, 혹은 순찰을 나갔다 기지 안으로 몰래 침투했던 적 특수부대원들 한 무리와 마주쳐서 육탄전을 벌였던 일들 따위를 마치 일인극이라도 연기하 듯 이야기했다. 한 이야기에서 등장인물의 죽음은 보통 다섯 번이 넘게 등장했고, 그중 몇몇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너무 자세히 묘사되곤 했다. 다섯째 언니는 삼촌의 이야기를 별 다른 동요 없이 듣다가, 종종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나오면 질문을 던지곤 했다. 나와 넷째 오빠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항상 울었다. 



2

전쟁터에 나갔다 살아남은 것은 담임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국어를 가르치시는 선생님은 주유소의 삼촌보다는 나이가 좀 많았고, 삼촌과는 달리 전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40분 남짓한 숲길의 중간에 선생님의 집이 있었다. 나무로 지어진 단출한 집은 길 섶이 내려다 보이는 약간 높은 언덕 위에 서 있었다. 창문인지 구멍인지 잘 구분할 수 없는 틈들이 여러 방향을 향해 나 있었다. 선생님은 언제나 내가 그곳을 지나가는 시간에 맞춰서 나와 있었고, 우리는 함께 등교했다.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선생님도, 수류탄의 파편에 배인가 가슴인가를 다쳤다고 했다. 한쪽 폐가 손상되어서 선생님은 조금만 빨리 걸어도 숨이 찬다고, 하지만 나랑 걸으면 숨이 차지 않아 좋다고 했다. 


나는 여러 번 선생님을 골탕 먹일 생각으로 평소보다 삼십 분 빨리 혹은 삼십 분 늦게 선생님의 집에 도착하거나, 길을 빙 돌아서 반대 방향에서 선생님의 집으로 접근하거나, 아니면 아예 풀숲과 나무를 해치고 길이 아닌 방향에서 살금살금 숨어서 다가가 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문 앞에 도달하면 언제나 말끔한 차림의 선생님이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 나는 우연히 다른 어른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선생님이 초소에서 경계를 서던 날 밤에 기습이 있었는데 선생님이 깜빡 잠드는 바람에 자신의 부대가 몰살당했다. 그날 살아남은 사람은 선생님과, 그리고 함께 경계를 서던 다른 병사 한 명뿐이었다. 그 뒤로 선생님은 직접 자신의 눈으로 사방을 살피지 않으면 무엇인가가 자신의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불안에 휩싸여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온 뒤에도 선생님의 강박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선생님은 숲 속 야트막한 언덕 위에 직접 집을 짓고, 사방에 밖을 관찰할 수 있는 구멍을 뚫었다. 그래서 선생님은 내가 언제 어느 방향에서 오던지 늘 정확한 순간에 문 밖에서 나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자 나는 선생님이 교탁 앞에 서서 책을 펴들고 수업을 하다가도 자꾸 고개를 들어 창 밖을 살펴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침에 숲길을 통해 학교로 갈 때 선생님의 집이 가까워지면 이제 나는 저 틈 어딘가에서 선생님이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는 모른 척 하고 문 앞에 나와 나를 기다리는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예전처럼 계속 같이 학교까지 걸어갔다. 하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숲길 대신 조금 더 걸리더라도 돌아가는 들길을 따라 걸었다. 분명히 선생님이 아직 학교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제는 나무집에 나있는 저 작은 틈들 중 어딘가 너머에서 나를 보고 있는 눈이 자꾸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3

체육시간에 우리는 종종 군복의 무늬가 그려진 체육복을 입고 나무로 된 가짜 총을 들고는 그것을 이리저리 휘두르거나, 앞으로 찌르거나, 양손으로 총을 들어 상대방이 내려치는 총을 막는 등의 동작을 연습했다. 체육선생님은 언제나 이 연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쟁은 완전히 끝난 게 아니라 멈춘 것이라고, 전쟁은 언제든지, 예컨대 내일이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 훈련을 열심히 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목숨을 지키고, 부모를 지키고, 나라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우리는 잠깐 모두 진지해졌다. 그러나 우리 손에 나무 총이 쥐어지고 나면, 진지함은 오간대도 없이 사라졌다. 체육선생님이 한 눈을 조금이라도 팔면, 남자아이들은 마치 진짜 총이라도 가진 것 마냥  서로를 향해 사격을 해 댔다. 여기저기서 총알 소리가,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진짜 총알과 신음소리와는 다른, 웃음기가 섞여 있는 입으로 흉내 낸 소리들이었다. 


체육선생님은 우리들이 이 중요한 연습에 너무나도 장난스럽게 임한다며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체육선생님의 말을 사실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체육선생님이 자신의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은 모두 체육선생님이 어떤 이유 때문인가로 기준에 미달되어 전쟁에 나가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너무나 멀쩡하고 건장한 몸을 가졌기 때문에 아이들은 체육선생님의 신체 중 어디가 전투에 참여하는데 부적합했었는지를 상상하는 것을 즐겨하곤 했다.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던 가설은, 체육 선생님의 가랑이에 고추가 두 개, 불알이 네 개 달려있다는 설이었는데, 그 과도하게 많이 매달려있는 것들 때문에 잘 달리지 못해서 신체검사에서 떨어졌다는 해석이 이어졌다. 수업종이 울리고 나서 선생님이 학교 건물에서 우리가 모여있는 운동장까지 천천히 걸어오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역시 절대로 뛰지 않는다, 걸음걸이가 여전히 좀 이상한 것 같다며 수군거렸다. 체육선생님은 아마 우리의 가설에 대해서 알지 못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세희와 친해진 것은  온전히 체육 선생님의 덕이다. 나무 총으로 때리고 찌르고 막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두 명씩 짝을 맺을 필요가 있었다. 선생님은 체육 수업 첫날에 아무렇게나 서 있는 우리들을 보고 눈살을 한번 찌푸린 다음에, 아무렇게나 너와 너, 거기와 거기, 그 뒤에 큰 애 둘, 이런 식으로 조를 짰다. 내 옆에 서 있던 세희는 그렇게 나와 한 조가 되었다. 나와 세희는 둘 다 운동신경이 더럽게 없었다. 한 명이 막대기를 위에서 아래로 휘두르면, 타이밍에 맞춰서 다른 한 명이 양손에 든 막대기로 쳐내는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우리는 그 타이밍 조차 맞추지 못해서 서로의 막대기에 머리를 여러 번 맞았다. 그게 너무 웃겨서 우리는 운동장에서 뒹굴었다. 물론 그 모습을 본 체육 선생님은 화가 났고, 우리는 여러번 기합을 받아야 했다.


4

세희도 역시 학교가 위치한 큰 마을이 아닌 변두리의 작은 마을에 살았다. 학교를 중심으로 우리 집과 완전 반대 방향이었다.  둘 다 수업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서 때로는 집안일, 때로는 엄마나 아빠의 일을 도와야 했고, 때문에 우리는 오직 학교에서만 서로를 볼 수 있었다. 나는 한 번, 나는 그리기 숙제 때문에 크레파스가 필요해서 세희를 따라서 세희네 집까지 가본 적이 있다.  작은 오솔길을 걷고 차가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가 위로 지나가는 다리의 밑을 지난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양이나 소 너 다섯 마리가 전부인 넓은 들판을 가로지르고, 작은 날벌레들이 웅웅거리는, 웅덩이들이 종종 길을 방해하는 좁은 흙길을 따라 걷는다. 중간에 우리는 고철이 되어버린 전차도 지나갔다. 세희는 저 전차가 자신의 아지트라며, 전차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자기만 안다고, 나중에 나에게도 알려주겠다고 했다. 조금 더 걸어가다 되돌아봤을 때, 전차는 마트 앞에서 장을 보러 간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온순한 개처럼 납작 엎드려 있었다. 


마을 어귀에 위치하고 있는 초록색 지붕의 집이 세희가 살고 있는 곳이었다. 건물은 우리 집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깨끗했다. 그런데 그곳으로 다가갈수록 비린 피의 냄새가 풍겨왔다. 세희가 말하길, 키우던 소가 늙어서 오늘내일했었는데, 아마 그 소을 잡은 것 같다고 했다. 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가 보니 세 명의 사람들이 마당에 커다란 비닐을 깔고, 크지만 볼품없이 말라있는 소의 시체를 해체하고 있었다. 한 편에는 소의 피가 담겨있는 커다란 플라스틱 대야가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마른 피가 엉겨 붙은 가죽이 거칠게 말려 있었다. 양철로 된 대야 안에는 소의 내장들이 담겨 있었는데, 이미 파리 몇 마리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소를 해체하고 있던 사람들은 세희의 엄마, 아빠, 그리고 언니였다. 


내가 세희네 방에서 함께 숙제를 하는 동안에 밖에서는 계속 무언가를 써는 소리와 철퍽철퍽하고 살들이 대야에 담기는 소리가 들렸다. 소나 양, 돼지를 잡는 모습이야 여러 번 봤지만,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 그림을 그리는 숙제를 하니 왠지 기분이 묘했다. 나는 세희의 크레파스로 볼품없고 비쩍 마른, 그러나 살아있는 소를 그렸다. 그다음엔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볼 일이 없을 두 명의 오빠와 한 명의 언니를 그렸다. 본 적이 없으니 물론 온전히 내 멋대로 그렸다.  상상화를 그려가는 것이 숙제였으니 딱 알맞은 그림일 터였다.


피 냄새는 더 이상 나지 않았고,  곧이어 분주하던 바깥도 조용해졌다. 세희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고는 자랑스럽게 그림에 등장하는 것들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그리고는 내 그림을 보며 멀뚱히 서있는 세 사림들이 누구냐고 물어봤다. 나는 오빠들과 언니들이라고 대답했다. 터울이 열 살 정도 나는 언니 한 명만 있다는 세희는 내가 언니 오빠들이 많다는 것을 부러워했다. 나는 세희에게 굳이 이 세 명의 언니 오빠들이 왜 상상화에 등장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세희의 엄마가 갖 잡은 소의 고기라며 물컹한 무엇인가가 담긴 검은 비닐봉지를 나에게 주었다. 바스락거리는 검은 봉지를 손가락으로 누르면, 미지근하고 질퍽거리는 살덩이가 만져졌다. 돌아가던 중 숲길에서 만난 검은 고양이도 역시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말라 있었는데, 내가 비닐봉지를 풀고 선홍색의 고기 큰 것 한 점을 던져 주었더니 잽싸게 물고 풀숲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다시 올까 싶어 한 점을 더 꺼내 들고 그 자리에 앉아 한참을 기다렸지만 다시 오지 않았다. 잠시 고민해보다 나는 손에 든 고깃 조각을 한 입 작게 베어 물어보았다. 생각보다 맛이 있지는 않았다. 미지근한 비릿함이 입에 퍼졌다. 피의 맛이 났다. 


5

다섯 번째 언니는 전쟁 중에 아군의 비행기가 오폭을 하는 바람에 얼굴의 왼쪽 절반에 화상을 입었다. 왼쪽 귀는 잘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언니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어른들이 그랬다. 같은 반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세네 명뿐이었는데, 그중에 제일 가볍게 다친 게 다섯째 언니였다고 한다. 


다섯째 언니는 나와 나이 차이는 여덟 살이나 났다. 나는 언제나 언니가 무서웠고, 솔직히 말하면 그 이유는 어느 정도 언니의 얼굴을 반쯤 뒤덮은 화상 흉터 때문이었다. 언니는 고등학교를 마치고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그 대신 주로 집에서 엄마 아빠를 도와 텃밭을 일구고, 키우는 닭의 모이를 주고, 양의 젖을 짰다. 나를 귀여워하던 넷째 오빠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에 붙어서 어딘가 멀리 떨어진 큰 도시로 떠났고, 그래서 나는 학교를 다녀오면 늘 언니하고 둘이서 집에 있어야 했다. 언니는 정말 말이 없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표정이 한결같았다. 나에게도, 엄마나 아빠에게도,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거의 관심이 없어 보였다. 언니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오직 죽은 동물들의 시체였다. 


함께 장을 보거나 아니면 엄마 아빠의 심부름으로 촌장님 댁에 다녀오거나 하면, 오가는 길에 언제나 언니는 귀신같이 적어도 한 마리의 죽은 동물의 시체를 발견했다. 들판에서는 배를 위로하고 발라당 뒤집어진 채 말라있는 개구리, 꼬리가 잘린 작은 등줄쥐 따위를, 도시에서는 유리창에 부딪혀서 죽은 박새나 직박구리 같은 새들을, 숲에서는 덫에 걸려 죽은 멧토끼나 새끼 살쾡이의 시체를 곧잘 찾았다. 어떤 방법으로 풀숲이나 낙엽들 밑에 숨어있는 시체들을 그렇게 잘도 찾아내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물어봤지만 언니는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시체를 발견하면 언니는, 언제나 가던 길을 멈추고 가방에서 항상 들고 다니던 크고 검은 노트를 꺼냈다. 언제나 노트에는 잘 깎은 연필 한 자루가 껴져 있었다. 언니는 그 연필로 우선 시체가 발견된 곳을 적었다. 그리고는 다시 가방에서 또 언제나 들고 다니던 체크무니의 천으로 된 주머니를 꺼내서, 동물의 시체를 조심스럽게 그 주머니에 담았다. 시체는 어떨 때는 온전한 모양을 하고 있었고, 어떨 때에는 차마 눈을 뜨고 보기 어려울 만큼 어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언니는 전혀 개의치 않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그리고 시체를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사실 정말 궁금한 것은 그다음의 일이었다. 언니는 시체가 담긴 주머니를 들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는, 보통은 30분에서 1시간가량, 길게는 2시간가량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몇 번이고 방문에 귀를 대고 방에서 나는 작은 소리라도 들어보려 했으나, 정말 언제나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종이가 사각거리는 소리도, 언니가 내쉬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언니의 방 어딘가에 다른 공간으로 향하는 비밀 통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언니가 자기 방 문을 닫고는 바로 그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조용했다. 


이윽고 언니의 방의 문이 열리면, 나는 언니를 따라 집 뒤뜰로 가야 했다. 언니는 그곳에다 자신이 주운 모든 시체들을 묻었다. 구덩이를 파는 것은 언제나 나의 일이었고, 내가 삽으로 낑낑대며 작은 구멍을 확보하는 동안 언니는 집의 주변을 한 바퀴 돌아서 적당한 크기의 작은 돌을 찾아왔다. 그 돌들은 요컨대 동물의 비석인 샘이었다. 구덩이에 동물의 시체를 묻고, 판 흙을 사용하여 시체의 위를 덮었다. 봉분은 만들지 않았다. 언니는 찾아온 돌들을 세우지 않고 판판하게 뉘어 놓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무덤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모양새였다. 그러나 언니가 나와 함께 만든 무덤의 규모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작고 넓적한 돌들은 뒤뜰에 가지런히, 적어도 100개는 충분히 넘게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한번, 언니는 동물의 시체 말고 다른 것을 찾았던 적이 있었다. 함께 옆 마을에 위치한 우체국으로 편지를 부치러 가는 길에, 언니는 언제나 그렇듯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이곳저곳을 향해 고개를 둘리고, 인상을 쓰며 여기저기를 살피고,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 너 여기 가만히 있어라 “ 하고는 빠른 발걸음으로 둑을 내려가 이런저런 풀들이 우거진 수로 쪽으로 향했다. 나는 언니가 어느 때처럼 또 들쥐의 시체라도 발견했겠거니 하고, 제발 배가 터져 있지만은 않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다.


 „ 너 얼른 이리 내려와 봐라 “  하고 언니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지금까지 함께 다니면서 언니가 시체를 발견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언제나 언니는 나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의아해하며 조심스럽게 둑 아래로 내려가서, 언니가 몸을 쭈그리고 앉아 있는 곳 옆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큰 멧돼지의 시체가 있었다. 총을 맞은 것인지 한쪽 다리가 엉망이었고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그리고 멧돼지의 배 아래에는 세 마리의 작은 새끼들이 있었다. 세 마리 모두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젖을 떼지 못한, 아주 어린 새끼 멧돼지들이었다. 어미가 먼저 죽자, 새끼들도 젖을 먹지 못해 굶어 죽은 모양이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걱정부터 들었다. 다 자란 멧돼지는 어른 둘이 힘을 합쳐 들기에도 힘들 만큼 무겁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시체를 여기에 두고 올 언니가 아니다. 어떻게든 우리 둘이 힘을 합쳐서 이 멧돼지와 새끼들의 시체를 집까지 챙겨 가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언니가 품에 다른 한 마리의 새끼 멧돼지 시체를 안고 있었다. 

„ 아직 살아있어 “ 하고 언니가 나를 보며 말했다. 자세히 보니 그 작은 털북숭이의 덩어리는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미약한 힘으로 고개를 가누며, 가는 숨을 내쉬고 있었다. 눈도 채 뜨지 못하는 상태였다.

언니가 나에게 말했다. „ 우체국은 너 혼자 갔다 와. 나는 집으로 가야겠다. 집에 어제 짠 양젖이 좀 남아있을거야 “  

„하지만 언니, 저 죽은 것들은? “ 하고 내가 물었다. 

„내버려 둬. 우리가 묻어주나 여기에 나와 있으나 어차피 썩고 말 것인데 “ 언니의 대답은 의외여서 나는 좀 놀랐다. 


나와 언니는 다시 둑을 올라 길로 돌아온 다음에, 방향을 틀어 헤어졌다. 언니는 새끼 멧돼지를 품에 안고 집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나는 길 저편으로 작아지는 언니의 뒷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오늘 내가 우체국에 들렸다 집으로 돌아갔을 때 구덩이를 새로 팔 필요가 없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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