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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창 응봉 최중원 Oct 26. 2019

계획

1


갓 내린 커피가 담긴 서버와 빈 잔을 손에 든 채로 Q는 창가 쪽으로 걸어왔다. 창가에는 하얀 철제 프레임에 상판은 유리로 된 책상과 하얀 플라스틱으로 된 의자가 놓여있었다. 활동비가 넉넉하지 않고 언제 물건을 처분하고 떠야 할지 모르는 q 같은 정보원에게 원목으로 된 가구는 언제나 과분했다. 그는 딱딱한 의자에 앉기 전에 창밖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건너편의 건물을, 더 정확히는 그 건물에 난 수많은 창문 중 하나를 바라보았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인데도 커튼이 드리워진 방 안쪽은 불이 켜져 있었다. 


Q는 자리에 앉아 커피를 따랐다. 마지막 남은 식빵 한쪽도 구웠다. 살구잼과 버터를 반씩 발랐다. Q가 늘 먹는 아침 메뉴였다. 바삭한 빵을 한입 베어 물으면서 Q는 건너편 건물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이제 곧 옆 창문의 불이 켜질 시간이었다. 3,2,1, 빙고. 불이 켜진다. Q가 감시하는 사람, 편의상 X라고 하자, 이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주방의 불을 켠 것이다. Q는 책상 위에 놓였던 쌍안경을 잡고 눈 앞에 들이댄다. 하지만 굳이 볼 필요가 있는 걸까 하고 Q는 생각했다. 지금까지 지켜본 바 X는 매우 규칙적인 사람이었다. 오늘도 Q가 지켜봤던 거의 100일에 가까운 날들처럼 똑같은 순서로 똑같은 메뉴의 아침을 준비할 것이었다.


남색 파자마를 입은 X는 주방에 선 상태로 크루아상과, 그에 곁들일 무염 버터를 준비한다. 커피는 프렌치 프레스로 내리고 반쯤 마셨을 때 우유를 조금 섞는다. 마지막엔 작은 사과 한 개를 먹는다. 표정에는 변화가 없지만, 급하지 않게,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아침을 먹는다. 주방 한편엔 작은 식탁이 있지만, Q는 한 번도 식탁에 앉아서 아침을 먹은 적이 없다. 그는 언제나 조리대의 창가 쪽 끝에 서서는 창 밖을 바라보며 아침을 먹었다. 그리곤 설거지를 하고, 그릇과 접시를 정리한 다음에 불을 끄고 다시 옆 방으로 돌아간다. 


2


X는 두 권의 소설을 낸 적이 있는 작가였다. 독재정권이 들어선 자신의 나라에서 30대 중반까지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기회를 잡아서 이 나라로 망명해왔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쓴 두 권의 소설은 평론가들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상업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것들을 적당히, 그리고 빨리 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X는 늘 이런저런 잡지들에서 글을 청탁받을 수 있었다. 시 외곽의 오래되고 낡은 건물의 14층에 위치한 좁은 방에 틀어박혀서 X는 매일 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아니, 그가 좁은 방에서 무엇을 하는지 사실 Q는 알 수 없다. X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커튼을 젖히고 Q에게 자신의 방을 보여준 적이 없다. 방의 조명은 언제나 켜져 있어서 Q는 X가 언제 자고 언제 일어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루에 두어 번 정도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어놓긴 했으나, Q는 커튼 너머에서 쑥 뻗어 나온 손이 창문을 열고 닫는 것만 볼 수 있을 뿐이었다. 


X가 자신의 집에서 나오는 것은 일주일에 딱 세 번이었다. 월요일에는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았고,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우체통까지 걸어가서 갈색의 서류봉투를 넣고 돌아왔다. 수신인은 언제나 서 너 곳의 출판사 중 하나였다. 그 서류봉투의 내용을 확인하는 것은 Q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였다. 그는 우체통을 열고 서류봉투를 꺼내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서 날이 잘 선 칼로 봉투를 뜯고 안의 내용물을 꺼냈다. 잉크젯 프린터로 출력된 3- 5페이지의 a4 종이를 우선 그는 먼저 읽어보고, 그다음에는 복사했다. 글의 주제는 늘 달랐지만, 늘 비슷하게 사소한 주제였다. 다음에는 원본을 새로운 서류봉투에 넣고, Q의 필적을 위조하여 발신인과 수신인의 정보를 적고, Q가 붙인 것과 똑같은 우표를 붙인 다음에 침을 발라 봉투를 봉했다. 마지막으로 우체통까지 다시 걸어가서 서류봉투를 넣었다. 


복사본을 살펴보면서 Q는 X의 능력에 언제나 감탄했다. 그의 글은 언제나 시의 적절한 내용을, 사람들이 카페에서 아무 생각 없이 뒤적이며 읽기에 적당한 톤으로, 과하지 않은 유머와 위트를 섞어서 전달하고 이었다. 그의 글에서 다뤄지는 분야도 다양했다. 정치, 역사, 과학, 철학, 시사, 예술, 스포츠는 물론 연예계의 신변잡기까지. Q는 몇 번 X의 글이 실리는 잡지를 사본 적이 있는데, X의 글 밑에는 언제나 글쓴이로 X의 이름 대신 „편집팀“ 이 적혀있었다. Q는 조금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Q는 그렇게 모은 복사본들을 한 달에 한 번씩 자신의 상급자에게 우편으로 보냈다. X가 자신의 글을 보낼 때 사용하는 우체통을 Q도 사용했다. Q는 자신이 어떤 이유로 X를 감시하게 된 것인지 알지 못했고, 사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X의 고향 나라가 연루된 정치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 짐작할 따름이었다. Q의 상급자는 처음에는 몇 번 직접 그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런저런 사항들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점점 전화가 걸려오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마지막 전화를 받은 지도 두 달이 넘어갔다.  X는 감시의 대상으로는 따분할 정도로 단순하고 규칙적인 사람이었고, Q는 그게 좋았다. X가 매주 주말마다 시내에서 열리는 온갖 파티에 참여하는 사교적인 사람이었다면 정말 골치 아팠을 것이었다.


3


해가 짧아지기 시작하고, 날이 쌀쌀해졌다. 라디에이터가 설치된 창가였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Q는 두꺼운 옷을 껴입어야 했다.  아침을 준비하러 주방으로 들어오는 X의 옷차림 역시 한결 따듯해졌다. 여전히 X는 아침으로 프렌치 프레스 커피와 크로와상, 무염버터와 사과를 준비했다. 역시 아무런 표정이 없는 얼굴로, 그러나 느긋하게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아침을 먹었다. 수염은 언제나 깨끗하게 면도된 상태였고, 머리도 직접 자르는지 길이가 거의 변하지 않았다. 


Q는 달력을 뒤적이며 날짜를 계산해 보았다. 오늘로서 자신이 X를 감시하기 시작한 지 160일이 되었다.  새로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X에게 글을 의뢰하는 잡지사가 하나 더 늘었고, 그래서 X가 보내는 글의 분량이 조금 늘어났다는 것이 Q가 포착한 유일한 변화였다.  


참을성이 많고 지루한 일도 잘 견딘다고 자부했던 Q였지만 이제는 슬슬 좀이 쑤시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창가에 앉아서 매번 똑같은 풍경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다. Q는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아무 변화가 없는 X의 커튼이 쳐진 방에서 시선을 돌려 X의 이웃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X의 왼쪽 이웃은 아이가 없는 중년의 부부였는데, X는 금방 아내가 바람을 피운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남편이 출근할 때까지 꼼짝도 않고 침대에 누워있던 부인은 일주일에 두어 번 꼴로 남편이 나가자마자 바로 일어나서 몸단장을 했다. 그리고는 집을 나섰다가 남편이 들어오기 전에 항상 먼저 들어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부인의 손에는 종종 꽃이, 가끔은 작은 선물이 들려있었다. 심지어 네댓 번가량은 남자가 부부의 집에 찾아온 적도 있었다. 부인은 그때마다 침실의 블라인드를 내렸으나, 오히려 그 행동 때문에 X는 부인의 불륜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검은 머리를 무스로 깔끔하게 쓸어 넘긴, 젊고 옷을 잘 차려입은 남자가 건물로 들어설 때마다 이 부부의 침실 블라인드가 쳐졌기 때문이었다.


X의 오른쪽 이웃은 젊은 커플이었다. 아마도 결혼은 하지 않고 동거를 하는 듯했다. 한 겨울에 갑자기 여자의 부모가 방문하는 바람에 남자가 속옷 바람으로 덜덜 떨면서 발코니 구석에 숨어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추측할 수 있었다. 그다음부터 대략 이 주간 주방에서 여자가 생강차를 끓이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Q는 불쌍한 남자가 침실에서 골골거리며 기침을 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이웃들에 비해 X는 너무도 변화가 없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도 그를 만나러 찾아오지 않았고, 그 역시 누군가를 만나러 나가지 않았다. 그의 가족들은 아직 그가 도망쳐온 나라에 있었고, 그는 소설을 두 권이나 냈지만 문학계에 친구는커녕 지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월요일에는 여전히 장을 보고,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우체통까지 왕복으로 오가는 짧은 산책을 했다. 160일째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은 아침을 먹었다. 그 사이 Q의 아침은 살구 쨈 토스트에서 계란 오믈렛, 뮤즐리와 시리얼, 머핀, 팬케이크, 브리오슈, 단백질 바 등등을 거쳐 다시 살구 쨈 토스트로 회귀했다.


Q는 두 어번 가량 자신의 상급자에게, X에 대한 감시가 무의미한 것 같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새로운 것이나 수상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누군가를 감시하는 임무는 언제까지 감시를 계속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로 시작하는 게 다반사였고, 그래서 이번 임무를 받을 때에도 Q는 어느 정도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임무가 160일이나 이어지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자신이 모으는 정보들이란 전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들이 아닌가.  그러나 Q의 상급자는 Q를 어르고 달랬다. 지금까지 Q가 해온 일들이 아주 성공적이었다고, X에 대한 많은 정보들을 모았다고, 비록 쓸모없어 보여도 중요한 자료들이라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달라고 상급자는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주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 

„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에 따르면, 그에게는 조만간 무슨 일이 일어날 걸세. 그는 그 일에 대해 반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야. 비록 그 반응이 아주 작은 강도로 나타날 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포착해야 한다네. 그리고 우리 모두 자네가 이 임무의 적임자라는 것을 알고 있지. 그리고 그 변화가 보인다면, 지체하지 말고 나에게 전화를 해야 한다네. 알겠지? 바로 말일세."


4

겨울이 왔다. 해는 하루에 겨우 여섯 시간 정도 고개를 내밀고, 어제 내린 채 녹지 않은 눈 위로 새로운 눈들이 쌓이고 있었다. Q는 패딩을 입고 창가에 앉아서 따듯한 민트차가 든 머그컵을 양 손으로 움켜쥔 채 건너편 건물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새벽이었고 길가에는 인적 하나 없었다.  3, 2, 1.  Q가 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빙고. 역시 정확한 타이밍에 부엌의 불이 켜지고 X가 등장했다. 남색 파자마를 입은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물을 끓이고, 프렌치 프레스에 커피를 붓고, 토스트기에 빵을 굽고, 무염버터와 크루아상을 준비했다. Q는 민트차를 홀짝이면서 쌍안경을 통해 그 모습을 지켜봤다. Q가 아침을 챙겨 먹지 않은지도 한 달은 되었다. 


간소한 아침상이 차려지고, 여느 때처럼 X는 창가 쪽 조리대의 끝에 서서 천천히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뭔가가 조금 달랐다. 모든 것들이 예전과 같았는데, 그럼에도 Q에게는 무엇인가 낯선 느낌이 들었다. Q는 약간의 당혹감을 느끼며 쌍안경의 배율을 올려서 조금 더 자세히 X를 살펴보았다. 예전과 다른 것은 X의 표정이었다. 아니, 그의 얼굴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무런 표정도 띄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표정의 뒤에 슬픔이 자리 잡고 있었다.  200일이 넘게 X가 매일 아침을 먹는 모습을 봐왔던 Q는 그것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아주 깊은 슬픔이었다.  X는 그러나 자신의 슬픔을 최선을 다해 숨기려 하기라도 하는 듯이 예전과 똑같은 순서와 속도로 버터를 발라 크루아상을 먹고, 반쯤 남은 커피에 데운 우유를 부었다. 


Q는 이 것이 바로 자신의 상급자가 말했던 „변화“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바로 자신의 상급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 변화를 보고해야 했다. 하지만 Q의 생각과 감정이 이리저리 맴돌았다. X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지금까지 매일을 똑같은 루틴으로 살던 그가 무엇 때문에 그토록 큰 슬픔을 가지게 된 것인가.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 슬픔을 최선을 다해 숨긴 것인가. 어쩌면 X는 자신이 감시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집에서조차 자신의 감정을 숨긴 것은 달리 설명될 수가 없었다. 하지만 Q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들키지 않고 누군가를 감시하고 미행하고, 정보를 캐는 것. 그것이 Q가 제일 잘하는 것이었다. 고작 글이나 쓰는 사람에게 들킬 만큼 Q는 허술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X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템포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고, 접시와 컵을 정리한 다음에 부엌의 불을 끄고 다시 자신의 방으로, 커튼이 쳐지고 불이 켜진 방으로 사라졌다. 이 세상에서 X의 슬픔을 본 사람은 오직 Q 뿐이었다. 그는 멍하게 불이 꺼진 주방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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