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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창 응봉 최중원 Nov 02. 2019

라면

1

오늘은 짧은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관우가 잔의 술이 식기 전에 적장의 목을 베어오겠다고 말하고 실제로 그리 한 것처럼 말입니다. 관우에게는 데운 술이 있다면 저에게는 라면이 있지요. 제가 지금 뜨거운 물을 컵라면에 부으면, 면이 익는데 까지는 고작 3분 정도 걸릴 겁니다. 제 이야기는 그 안에 끝나겠고요. 앗, 이런, 물을 미리 끓여두는 것을 깜빡했네요. 이런 산장에 전기 물끓이개가 있지는 않으니 조금 걸릴 겁니다. 버너로 물을 끓이는 것까지 포함해서 넉넉잡고 7분, 무척 배고프신 표정이지만, 그래도 그 정도는 버티실 수 있지요? 좋습니다. 


제가 산장지기를 막 시작했던 해, 그러니까 5년쯤 전일까요? 그때의 늦가을에, 갑자기 눈이 많이 내렸던 적이 있습니다.  10월 말이었는데, 이상기후 때문인지 기온도 영하로 내려가고, 그런데 기상청 예보가 또 엉터리로 나왔던 지라 사람들이 난리가 났었죠. 아무도 눈에 대비를 하지 않았거든요. 아래쪽에 있는 산장들은 대피한 사람들로 완전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제일 외진 곳에 있는 저희 산장에도 4명의 사람들이 눈을 피해 찾아왔습니다. 젊은 부부처럼 보이는 사람 두 명과, 그리고 홀로 산을 찾았던 두 명의 중년 남자였죠. 이들은 서쪽 사면을 통해서 정상을 오르는, 길이 험하지만 풍경도 그다지 빼어나지 않아서 인기가 제일 없는 루트를 도전했다가 갑작스러운 눈을 만나서 서둘러 이 산장까지 내려온 참이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만나서 함께 온 모양인 듯 모두가 한 번에 산장으로 들어왔지요.


밖에서 눈을 쓸고 있던 저는 서둘러 손님들을 맞이했습니다. 이곳 휴게실로 데리고 들어와서, 우선 따듯한 차 한잔씩을 주었죠. 내려오면서 어느 정도 말을 텄는지, 손님들은 우선 기상청에 대한 욕을 한 바가지로 하고 나서, 저에게 와이파이 비번을 알려달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산장에 와이파이가 웬 말입니까. 데이터도 잡히지 않고 유선 전화선도 놓여 있지 않은데 말이죠. 아, 지금은 유선 전화기는 한 대 놓여있습니다. 그때는 산장이 문을 연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았을 때였거든요. 이런 산간에는 전화선을 설치하는 것도 일이라서, 신청한다고 바로바로 되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저는 손님들에게, 눈이 내일 낮에는 그칠 모양이니 오늘 내려가는 것은 단념하시고 하룻밤 묵으시라고 말했습니다. 손님들은 불평을 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산장은 4인 도미토리 두 곳을 성별을 구분해서 운영하고 있었지만, 부부 분께 그중 한 곳을, 나머지 두 중년 남자에게 다른 한 곳을 배정해드렸습니다. 숙박비는 반만 받기로 했지요. 손님들은 짐을 풀고 잠깐 쉰 다음에 하나둘씩 휴게실로 나왔습니다. 배가 고프다며 라면 같은 거 먹을 수 있냐고 물어보시더군요. 그런데 그게, 원래 오늘 라면을 받았어야 했는데 눈이 오는 바람에 지고 올라오시던 김 씨 아저씨가 다시 돌아가버렸지 뭡니까. 그 대신 육포나 초코파이 같은 먹을거리와, 캔 맥주 등등은 충분히 있다고 말했습니다. 밥도 전기밥솥에 넉넉히 남아있었고, 냉장고에는 잘 익은 김치도 있다고요. 손님들은 밥과 김치를 허겁지겁 먹어치우더니, 육포 두봉과 맥주 각 한 캔씩 모두 네 캔을 사서는 휴게소 테이블에 둘러앉았습니다.


오늘 처음 보는 사람들의 대화인지라 처음에는 어색하고 자주 끊겼지만, 역시 술을 마시기 시작하니까 분위기가 좋아지더군요. 손님들은 저에게도 와서 같이 마시자고 했지만, 저는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그렇게 눈이 많이 오는 날에 적어도 한 명은 깨어 있어야 할 것 같았지요. 저는 주방에서 이런저런 잡일을 했지만, 그래도 손님들의 말소리는 다 들을 수 있었습니다. 대화의 주제는 나이, 고향, 사는 곳, 직업 등을 거쳐서 이제는 등산이라는 취미에 도달했습니다. 역시 그리고 등산하는 사람들 넷이 모였으니 모험담이 빠질 수가 없지요. 키가 작지만 몸이 다부진, 목포에서 올라온 아저씨는 백두산 천지에 오른 이야기를,  덩치가 크고 수염을 기른 부산 아저씨는 아프리카의 최고봉 K2에 오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서울에서 온 부부는 함께 스웨덴의 산 케브네카이세에 올랐던 이야기를 했지요. 사람들이 서로 자신들의 모험이 더 아슬아슬했다고 주장하고 싶어 했었기에 묘한 긴장감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2

물이 다 끓었네요. 제가 이미 네 개의 컵라면을 세팅해 두었습니다. 저는 조금 전에 저녁을 먹어서요. 

이제 용기에 물을 붓고, 뚜껑을 닫은 다음에 삼분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잘 익은 김치도 제가 꺼내놨지요. 이야기는 아직 조금 더 남았는데, 삼분 안에 끝내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산에서의 해는 금방 집니다. 겨우 여섯 시쯤 되었던 것 같은데 산장의 주변은 오직 어둠뿐이었죠. 하지만 조용히 창 밖을 보고 있으면 눈이 내리는 소리를, 눈이 쌓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저는 손님들이 사용한 집기를 씻고 건조대 위에 올린 다음에 느긋하게 서서 민트차를 마시고 있었죠. 불을 꺼놓고 주방 쪽에 난 창문을 통해서 밖을 바라보면서요. 손님 중 누군가가 담배라도 피우러 나갔는지,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작고 붉은 담뱃불이 어둠 속에서 생겨났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참 대단하지요. 덥든 춥든, 졸리든 배가 고프든 배가 부르든 기쁘든 슬프든 언제나 담배를 피지요. 그런데 갑자기 외마디 외침 소리와 함께 담뱃불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급히 뛰어가는 발걸음 소리가 나지 않겠어요.


저는 마시던 차를 내려놓고 문쪽으로 서둘러 걸어갔지요. 멧돼지를 보고 놀란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면서요.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먹을 거를 구하기가 어려워져서 종종 사람이 있는 곳까지 내려오곤 하거든요. 문이 벌컥 열리고, 목포 아저씨가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말이죠. 

„밖에, 밖에 뭔가가! “

„아마도 멧돼지를 보신 것 같습니다 “ 하고 제가 말했습니다. „많이 놀라셨나 봐요 “

„아니, 아니에요 사람이에요! “

„사람이요? “ 저는 놀랐습니다. 이 계절에 이 시간에 이 날씨에 밖에 사람이라니요. 조난이라도 당한 걸까요. 어쨌든 저는 외투를 걸치고 손전등을 챙겨서 서둘러 나갔습니다. 우선 부엌 앞의 아까 목포 아저씨가 담배를 피우던 곳으로 간 다음에, 그곳에 서서 손전등으로 사방을 비춰보았지요. 하지만 언뜻 보기에는 아무것도 없어 보이더군요.

„저 쪽이요. 저 쪽, 나무들 있는 방향“ 다시 나온 목포 아저씨가 어느 방향을 가리키면서 말했습니다.

„ 저기요! 거기 누구 있나요! “ 하고 저는 외치면서 아저씨가 가리킨 방향, 전나무숲이 시작되는 방향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발자국도 찾아볼 수 없었지요.


„이상하네. 분명히 봤어요. 나무 사이에, 덩치가 큰 사람이 한 명,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어요. “ 

응접실에서 제가 따라준 민트차를 마시면서 목포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뭐 그거 아닌가요. 설인이라던지 “ 하고 부산 아저씨가 사투리가 섞인 어조로 말했습니다. „덩치 크고, 털로 뒤덮이고, 두 발로 걷는다는 “

„장난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 정말로 있었다고요 “

„그런데, 밖이 이렇게 어두운데, 밤 눈이 좋으신 편인가 보네요. “ 하고 제가 물어봤습니다. 하늘은 눈구름으로 뒤덮여서 별도 달도 뜨지 않았거든요. 밖은 그야말로 코앞도 보기 힘든 칠흑이었습니다.

„아, 그게, 그쪽에 뭔가 약하지만 불빛이 있었어요 “ 하고 목포 아저씨가 대답했습니다.

„세상이 세상이니까, 요즘에는 설인도 스마트폰을 들고 다닐 수도 있죠. “ 하고 또 부산 아저씨가 장난스럽게 껴들었습니다.

„아니 진짜 이 양반이, 아 잠깐, 그런데 그러고 보니까 핸드폰 화면 불빛 같기도 했는데, 아니, 그게 맞았던 것 같아요. “ 

저는 제 핸드폰을 꺼냈습니다. 친구에게 문자가 몇 통 와있더군요. „ 그러니까 불빛이 이렇게 핸드폰 화면 같은 밝기에 크기였다는 말이죠? “ 하고 제가 핸드폰을 들어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 네, 맞아요. „ 하고 목포 아저씨가 대답했습니다.

„이상하네, 사람이 맞다면, 이 날씨에 밖에 있을 이유가 없는데. „ 하고 서울 남편이 말했습니다. "저희 산장도 분명히 보았을 거구, 그렇담 당연히 여기로 오시지 않을까요? 어쨌든 눈을 피해야 할 테니까요. 사람이 아니라 멧돼지나 뭐 삵이나 그런 거라면, 저희가 조용해진 다음에 더 가까이 와서 바깥의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하겠죠. „

„그러네. 사람이었다면 지금쯤 와서 문을 두드리고 있겠죠 “ 하고 서울 아내가 이어서 말했죠. 


„똑 똑 “ 

아, 잠시만요. 참 타이밍이 공교롭게 됐네요. 김 씨 아저씨일 겁니다. 라면이니 맥주니 하는 짐을 여기까지 운반해주시는 분이시죠. 아, 컵라면은 다 익었을 것이니 이제 드셔도 될 거예요. 저는 창고에 잠깐 가서 짐을 좀 풀고 오겠습니다.



3

라면은 맛있게 드셨나요? 면도 꼬들하게 잘 익었죠? 제가 사실 라면을 맛있게 요리하는 것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컵라면이든 끓이는 라면이든 중요한 것은 면을 적당히 익히는 것이죠. 시간만 잘 지키면 사실 매우 쉬운 일입니다. 라면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제가 또 끝이 없을 것이니까 그만 하도록 하고, 제가 나가 보니까 오늘도 눈이 꽤 많이 내리고 있더라고요. 금방 해가 질 것인데 내려가는 길이 위험할 듯해서 김 씨 아저씨도 오늘 밤은 여기서 묵고 가기로 했습니다. 조금 인상이 무섭고 말이 없는, 덩치가 아주 크신 분이신데,  갑자기 보면 놀라실까 봐 미리 말씀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아, 5년 전에 그 네 명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으시다고요? 목포 아저씨가 본 것이 무엇이었냐고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도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여기가 무슨 미국이나 캐나다도 아니고, 설인일 리는 없다는 것이죠. 차라리 등산하다 조난당해서 죽은 사람의 혼이라면 모를까요. 사실 여기 산장에서 조금만 더 오르면 있는 서쪽 사면이 경사가 험하고 엄청 큰 바위들로 되어 있어서, 클라이밍 하는 사람들에게는 성지 같은 곳이거든요. 이삼 년에 한 번씩은 사람들이 조난당해서 목숨을 잃고는 합니다. 몇 년 전엔가는 한 번에 네 명이 동사된 채로 발견되기도 했었죠. 아, 혼 이야기는 농담입니다. 겁을 주려는 것은 아니었어요.


그럼 다시 5년 전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려드리겠습니다. 네 명의 손님들은 응접실에서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제 방에서 청소도 좀 하고, 일기도 쓰고, 책도 좀 읽었죠. 새벽 한시쯤 되었을까요, 자기 전에 화장실을 가려고 제 방을 나왔는데 부엌에서 작게 도란도란 말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그리고 라면의 냄새도 나고요. 놀란 제가 부엌으로 가봤더니, 서울 부부가 후루룩 소리를 내면서 라면을 먹고 있는 게 아닙니까. 저를 본 그 두 명은 조금 놀란 듯했으나, 바로 그 둘 중 한 명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죠. 

„쉿, 조용히 오셔서 같이 좀 드실래요?"

„이 라면, 어디서? “ 하고 제가 물었습니다.

„여기 찬장 맨 위칸에 있던데요? “ 하고 부인이 말했습니다. 

„죄송해요, 저희가 물어보지도 않고. 분명히 아까 저녁에 잘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새벽이 되니까 배도 고프고 라면 생각이 간절하더라고요. 그런데 딱 라면 두 개를 발견해서. 왠지 봉투가 좀 뜯어져 있었지만, 괜찮아 보이더라고요. 하지만 하나는 남겨놓았습니다. 라면 값은 드릴게요. “ 하고 남편이 말했지요.

저는 냄비를 확인했습니다. 국물까지 남김없이 거의 다 비웠더군요. 


„엇, 와 이 얍삽한 서울 사람들 보게. „ 하고 갑자기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부산 아저씨가 부엌의 문 앞에 서 있더군요. „ 와, 몰래 숨어서 먹고 있었던 거야? “ 부산 아저씨의 뒤에서 목포 아저씨도 거들었습니다.

„ 아니, 아니에요. 밤이 늦어서, 자고 계신 줄 알았죠. “ 하고 서울 남편이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습니다.

„아니, 아니, 방금 전까지 모두가 그렇게 라면 먹고 싶다. 산장에서 먹는 라면이 제일 맛있는 라면이다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30분 뒤에 몰래 도둑놈들처럼 주방에 숨어 들어와서 자기들끼리 라면을 잡숴? “  흥분한 부산 아저씨는 이제 사투리로 말했습니다.

„아니 그런데 저 라면은 어디서 난 거야. 혹시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어요? “ 하고 목포 아저씨가 물었습니다.

„아니 아니에요. 여기 찬장에서 발견했어요. 하나 더 있어요 끓여 드세요! “ 하고 서울 부인이 당황해하며 말했습니다.

비난의 눈빛은 이젠 당연히 저를 향해 쏟아졌죠. 

„ 젊은 산장지기 친구도 그렇게 안 봤는데, 라면 있으면서 왜 없다고 했어요, 나 참. 고향이 어디야. 서울이야? 전라야? “ 하고 부산 아저씨가 저에게 따지듯 말했습니다.

„아니 시방 왜 여기서 전라도 이야기가 나오는가? “ 하고 목포 아저씨가, 역시 사투리로 갑자기 부산 아저씨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죠. 

결국 저는 이 두 아저씨들에게 마지막 남은 라면을 끓여드려야 했죠. 마음이 상한 두 아저씨는 몸을 돌리고 앉아서 말없이 반 개 분량의 라면을 각자 호로록거리면서 먹었습니다. 아, 저는 밤늦게 뭐를 먹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해서 먹지 않았죠. 꼭 속이 더부룩해지더라고요. 사실 이 라면 두 개도 내일 오전에 이 손님들의 해장을 위해서 남겨놓았던 것이었는데, 술 먹고 난 다음날 늦은 아침으로 먹는 라면이 또 진짜 맛있잖아요. 양이 적지만 찬 밥과 함께 내 드릴 생각이었는데, 뭐 일이라는 게 언제나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어찌 되었든 먹어야 하는 사람들이 먹었으니 된 거지요.


아, 죄송합니다. 하품이 나오실만하죠. 제 이야기가 조금 지루하지요. 무슨 일이 일어날 듯하면서도 일어나지도 않고. 설인이니 등산하다 죽은 사람들의 혼이니 하는 걸로 변죽만 울리고 말이에요. 아니에요, 정말 괜찮습니다. 들어가서 주무시고 내일 뵈어요.  나머지 세 분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제 이야기는 이제 슬슬 좀 재미있어지기 시작할 겁니다. 하지만 졸리시다면 언제든 편하게 하품을 한 번 하시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4

라면을 맛있게 먹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금세 졸리다며 하품을 하더군요. 그럴 만하죠. 낮동안 내내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산행을 했고, 게다가 눈이 많이 와서 발걸음은 더 무거웠을 겁니다. 그다음에 갑자기 따듯한 실내에 앉아서 밥이며 라면으로 배를 채우고, 게다가 술도 조금 마셨으니 잠이 쏟아지는 것이 당연하죠. 게다가 시간은 벌써 새벽 두 시를 향해 가고 있었으니까요. 냉랭했던 사람들 사이의 분위기도 다시 조금 부드러워지고, 사람들이 이제 자러 가야겠다며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똑똑하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 것은 바로 그때였죠.  


분주하게 잘 준비를 하던 손님들이 갑자기 모두 멈췄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았죠. 다시 한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그다음엔 모두의 눈이 저를 향해 고정됐습니다. 산장지기는 저였으니, 제가 문을 열어드려야 하는 게 당연하긴 했죠. 저는 현관으로 다가가서, 먼저 문에 뚫려있는 구멍을 향해 밖을 바라봤습니다. 현관에 설치된 센서등은 켜져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밖에는 아무도 없었죠. 저는 고개를 돌려서 휴게실에 서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모두가 약간의 두려움이 서린 얼굴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죠. 저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문의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열었습니다. 슬리퍼를 신은 맨발의 살같 위로 차가운 바깥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느껴졌죠.


문밖에는 어떤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조금 무서운 인상에,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죠.

„누구요? “ 하고 목포 아저씨가 물어보았습니다. 조금 졸린 목소리였죠.

“아직 깨어있네” 하고 김 씨 아저씨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문자로 말해준 시간에 맞춰서 딱 왔는데. 밖에서 기다리느라 얼어서 뒈지는 줄 알았지 뭐요”

“걱정할 거 없어요. 다들 곧 잠들 거예요. 라면을 알아서 끓여드셨거든요. 국물까지 싹싹” 하고 제가 대답했지요. 과연   휴게실 의자에 앉아있던 젊은 부부는 이미 책상에 엎드려 새근새근 자고 있더군요. 목포 아저씨와 부산 아저씨는 아직 깨어 있었지만 몸이 비틀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지금 이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을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죠. 


“이 사람...이 사람 누구야?” 목포 아저씨가 당황한 목소리로 물어봤습니다. 하지만 이미 혀가 꼬이고 있었죠.

“라면에…라면에 뭐를?” 부산 아저씨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아이고, 좀 아팠을 거예요. 깨어나 보면 멍도 들어있을 것이고요. 다시 깨어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심하게 비틀거리는 목포 아저씨를 부축해서 의자에 앉혔습니다. 술냄새가 아주 심하게 나서 눈살이 조금 찌푸려지더군요. 목포 아저씨는 무엇인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조금 움직였지만 더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습니다. 몰려오는 졸음과 싸우려는 듯 몇 번이고 눈을 부릅뜨고 머리를 흔들었지만, 쓸모없는 일이었지요. 



조용한 산장에는 사람들이 자면서 내는 새근새근 숨소리만 가득합니다.  술냄새도 나고요.  당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모두 잠들었네요.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죠. 특정한 약제에 조금 더 강한 저항력을 가진 사람들이. 하지만 그래도 금방 잠들게 될 겁니다. 졸음을 참으려 하지 마세요. 소용없는 일입니다. 네? 잘 안 들리는데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왜 이러냐고요? 글쎄요. 당연히 제가 이러는 이유가 있기야 하지요. 그저 심심해서, 아무 이유 없이 이런 일을 하기에는 너무 품이 많이 드는 일이지요. 듣고 싶으신가요? 알고 싶으신 표정이긴 하네요. 말하자면 긴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김 씨 아저씨가 와버렸군요. 당신은 이미 잠들었고요.


제가 조리한 컵라면을 맛있게 드셔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긴 이야기를 들어주셔서도 감사했고요. 술은 한참 전에 식었고 라면은 퉁퉁 불어버렸을 거지만요. 밖은 무척 춥고 아직도 눈이 내리네요. 김 씨 아저씨와 저는 내일 해가 뜨자마자 해야 할 일이 좀 많아요. 우선은 지금 여러분들을 밖에다 내어 놓고, 한숨 잔 다음에 어떤 순서로 일을 처리할지 생각을 해보아야겠어요. 걱정은 마세요. 처음에는 헤매기도 했고 이런저런 실수도 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손에 익었답니다. 일단 저는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라면을 끓여 먹으려고 합니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군요.


그럼 좋은 밤 보내세요. 아마도 조금 춥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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