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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창 응봉 최중원 Dec 21. 2019

먹다

1. 

회사를 나서면서 종수는 오늘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지 고민했다. 언제나 그에게 제일 어려운 고민이었다. 그는 식성이 그렇게 까다로운 편은 아니었고, 음식 값으로 큰돈을 지출하는 편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회사가 소문난 먹자골목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김밥집, 떡볶이집, 순댓국집, 돼지국밥집, 설렁탕집, 뼈해장국집, 콩나물국밥집, 회덮밥집, 불백집, 샌드위치집, 피자집, 파스타집, 돈까스집…종수는 언제나 그 어마어마한 양의 선택지 앞에서 길을 잃었다. 그들 중 몇몇 곳은 이른바 „전국구“ 로 소문난 집이었고, 주말이면 예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가게의 문 앞에 길게 늘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그 가게의 음식 사진들을 보면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하지만 오늘은 목요일이고, 며칠 전에 어떤 연예인이 TV에서 언급하는 바람에 난리가 난 굴국밥집을 제외하고는 어느 식당에 가더라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자리에 앉을 수 있을 것이었다. 


12월 초의 날씨는 춥고 바람도 많이 불었다. 코트의 깃을 여미면서 종수는 오늘은 돼지국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약간 꿉꿉한 냄새가 나는 하얗고 따끈한 국물에 새우젓과 청양고추를 좀 풀고, 푹 익은 돼지고기에 아삭한 깍두기를 얹어서 한 입. 그는 퇴근도 보통 때보다 사십 분 정도 늦게 한 터였다. 생각만으로도 자신의 위와 장이 꿈틀거리면서 돼지국밥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모퉁이를 꺾어서 바로 왼쪽에 있는 돼지국밥집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그는 자리가 하나도 없이 꽉 차 있는 식당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또 누군가가 티브이에서 이 식당을 언급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영자인가? 화사인가? 아니면 그 비슷하게 뚱뚱한 식성 좋은 개그맨들인가? 발길을 돌리기 전에 그는 마지막으로 한번 더 그리 넓지 않은 식당을 꼼꼼히 훑어보았고, 제일 안쪽, 주방과 이어진 통로 옆이라 좁고 불편한 2인 테이블 하나가 비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의자에는 옆자리의 손님들의 짐이 놓여있었고, 그 때문에 쉽게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었다. 종수는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해 그들의 짐을 치우게 하고는 그 자리에 앉아서 돼지국밥 한 그릇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주변의 사람들을 훑어보던 종수의 눈에, 문이 열리면서 한 명의 손님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맙소사. 옆 팀의 한 팀장이었다. 튀어나온 광대뼈, 신경질적으로 빛나는 눈빛. 사십 대 초반의 나이였건만 이마의 전선은  이미 큰 전투에서 패하기라도 한 듯 듬성듬성 비어있는 채로 정수리를 향해 후퇴하고 있었다. 한 팀장은 종수가 속한 팀의 서 팀장과 앙숙이었다. 그 둘의 관계는 회사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한 팀장은 사원으로 입사해서 팀장까지 쭉 이 회사에서 근무했다. 서 팀장은 반면 일 년 전에 경쟁사에서 바로 스카우트되어서 팀장이 되었다. 한 회사에서 쭉 커리어를 쌓은 사람과, 다른 회사에서 이직해온 사람 사이의 알력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 두 팀장들 사이의 관계에서는 그것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냉기가 흘렀다. 그러다 누군가가 우연히 페이스북 계정에 명시된 정보로 그 둘이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것을 발견했고, 모두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에 흥분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가설을 제시했다. 모두가 하나같이 흥미롭고 있을 것 같은 일들이었다. 종수 자신도 두어 가지 가설을 직접 세워 본 적이 있었다.  

    한 팀장의 눈이 빈자리가 거의 없이 꽉 찬 국밥집을 훑는다. 자신과 눈이 마주치기 전에 종수는 얼른 고개를 푹 숙이고는 젓가락으로 깍두기 조각을 하나 들어 괜스레 김치 국물을 털었다. 이 가게에서 빈 의자라고는 단 하나, 자신의 앞에 놓인 것뿐이다. 식당에서 모르는 사람과 겸상을 할 만큼 넉살이 좋은 사람이 아니니, 자신을 알아보지만 못한 다면 한팀장은 조용히 다른 식당으로 발길을 돌릴 것이었다. 그러나 다시 한번 고개를 들었을 때 종수는 한 팀장이 바로 앞에 서서 의자를 조용히 당기는 모습을 보아야 했다. 


„ 종수씨, 그렇게 고개를 숙인다고 내가 못 알아볼 거 같아요? “ 

새빨개진 얼굴로 종수가 급하게 대답했다.  

„ 아닙니다 팀장님! 팀장님 드실 깍두기에 뭐가 묻은 것 같아서요! “ 

언제나 종수는 입이 문제였다.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당황하면 아무 말이나 튀어나오는데, 거의 모든 경우에 그 변명들은 도움이 전혀 되지 않았다. 한 팀장은 자신의 코트를 벗어서 의자 위에 걸쳐 놓고는 종수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곤 주문을 받으러 온 직원에게 국밥 한 그릇을 시켰다. 그리고 주문을 받고 돌아가는 직원을 다시 불러 세워서는, 조금 더 고민하는 듯 머뭇거리다가 소주 한 병을 추가로 시켰다. 그리고는 또 말했다. „여기 깍두기에 뭐가 묻어있다는데, 새로 가져다주시죠. “ 


한 팀장은 종수와의 동석을 전혀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마치 테이블에 혼자 앉아있는 것처럼 핸드폰을 꺼내어 메일을 확인하고는, 카톡 메시지를 확인하고 그중 몇 개에는 답장도 보냈다. 하지만 종수에게는 지금의 상황이 전혀 자연스럽지 않았다. 그는 냅킨을 두 장 꺼내어 팀장과 자신의 앞에 깔고, 수저를 꺼내서 냅킨 위에 올리고, 은색의 스댕 컵에 물도 따라서 팀장에게 드렸다.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서 두어 번 진동이 울렸고, 아마도 단톡 방의 메시지 알림일 것이었지만 종수는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서 메시지를 확인해도 되는지 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종수씨는,“ 하고 핸드폰에 눈을 떼지 않은 상태로 한 팀장이 느닷없이 말을 꺼냈다. „여기 얼마나 오래 다녔죠? “ 

    „아, 음 그러니까, 올해가 4년 차입니다." 

    „4년 내내 같은 팀에 있었나요? “ 

    „첫 일 년 빼고는 계속 지금 팀에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경영지원팀에 있었고요. “   

빨간 앞치마를 입은 종업원이 소주 한 병과 소주잔 두 잔을 들고 왔다. 한 팀장은 종업원에게 무엇인가를 말하려 하는 듯했으나, 종수를 다시 한번 보고는 됐다는 듯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소주병의 뚜껑을 따곤 앞에 놓인 두 잔 모두에 가득 술을 따랐다. 그리곤 한 잔을 종수에게 건넸다.  

„ 한잔 하지“  술의 효과란 대단한 것이어서 알코올을 1mg도 섭취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팀장의 말은 벌써  짧아져 있었다. 올해 초부터 회사는 „수평적 문화“를 만든다며 직급에 상관없이 모두가 모두에게 존댓말을 하도록 강제했다. 하지만 종수에게는 선배들과 상사들에게 존댓말을 듣는 것이 더 어색한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 하며 종수는 잔을 받고, 한 팀장과 건배를 한 다음에 몸을 돌려서 소주를 한 번에 자신의 식도 안으로 털어 넣었다. 다음 잔은 반드시 자신이 따라드려야 한다고 되새기면서.  

    곧 두 그릇의 뜨끈한 돼지국밥이 테이블 위에 올랐다. 하지만 종수는 그 국밥의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가 없었다. 어색한 침묵이 테이블 위를 감돌았다. 나는 소리라고는 오직 숟가락 젓가락이 그릇과 부딪히는 소리, 후루룩 하고 뜨거운 국물을 들이켜는 소리뿐이었다. 종수는 그 와중에도 열심히 한 팀장의 잔이 빌 때마다 계속해서 소주를 따랐다. 자신의 잔이 빌 때에는 자신이 직접 따랐다.  한쪽 모서리에 설치된 티브이에서는 뉴스가 끝나고 보험 광고와 자동차 광고, 고양이용 프리미엄 간식 광고가 흘러나왔다. 종수는 태연한 척 자신의 몫의 국밥을 먹으면서 힐끔힐금 한 팀장을 올려다보았다. 한 팀장은 스댕 밥공기의 뚜껑에 다대기를 덜어놓고, 국밥을 수저로 뜰 때마다 다대기를 젓가락으로 조금씩 떠서 그 위에 올려 먹었다. 따라서 국밥의 국물은 그래서 하얗게 남아있었지만, 정작 그가 먹는 것은 꽤나 매운 국밥일 터였다. 그래서 그런지 실내가 그리 덥지 않았고, 코트까지 벗어서 넥타이를 맨 셔츠에 재킷 차림일 뿐이었는데도 한 팀장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한 팀장은 마치 기계처럼, 아무 생각 없이, 가끔 주변을 둘러보기도 했으나 주로는 자신의 숟가락과 젓가락이 향하는 곳만을 바라보면서 국밥을 먹고 반찬을 먹고 소주잔을 비웠다.  

    그런 불편한 상황에서도 종수는 국밥을 깨끗이 다 비웠다. 과연 이것이 진정 맛있는 음식의 힘일 것이었다. 한 팀장의 그릇 역시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 맛있게 잘 드셨나요, 팀장님 “ 종수가 드디어 무엇인가 말할 건더기가 생겼다는 것에 작은 안도감을 느끼며 물었다. 

    „ 여전히 맛이 있네, 이 집은 “ 하고 한 팀장이 답했다. 

카운터에 서서 한 팀장은 종수의 몫까지 계산을 했다. 그리고는 인사를 하고는, 추운 날씨에도 코트를 입지 않고 한 팔에 껴든 채로 휘적휘적 빠른 걸음걸이로 사라졌다. 종수는 옷깃을 여기며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방금 한 팀장이, 사주는 것은 이번 만이야,라고 말했던 게 맞는가?  



종수가 제대로 들은 것이었다. 한 팀장은 „ 사주는 것은 이번 만이야 “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 팀장은 자신의 말을 지켰다. 그다음부터 종수와 한 팀장은 각자의 음식값을 각자가 나누어 계산했다.  


종수가 업무를 마치고 어딘가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할 때마다 한 팀장이 들어와서 그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같이 밥을 먹었다. 처음에 종수는 단순히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한 팀장은 무슨 이유에선가 자신이 저녁을 먹으러 들어온 식당에 계속 따라 들어와선 자신과 같은 테이블에서 함께 저녁을 먹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순댓국, 초밥과 우동세트, 알밥, 라멘, 잔치국수, 뼈해장국, 재첩국을 먹었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소주도 한 병 시켰다. 그날그날에 맞는 가벼운 화젯거리를 이야기의 주제로 삼기는 했으나 종수와 한 팀장의 대화 핑퐁은 잘 오가지 않고 초보자들처럼 똑똑 끊겼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종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한 팀장이 왜 자꾸 자신과 함께 저녁을 먹으려 하는지를. 그것도 이렇게 은근한 방법으로 말이다.  무엇인가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으나, 그렇다면 왜 그것을 자신에게 말하지 않는 것일까. 한 팀장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단 하나, 자신과 저녁을 먹는 것뿐인 것 같았다.  


종수는 몇 번이고 한 팀장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왜 자꾸 자신과 함께 저녁을 먹으려 하는지. 자신이 그때 그때 내키는 대로 결정해서 들어가는 식당에 어떻게 알고 오는지. 서 팀장과 고등학교 때 관계가 어떠했는지는 이제 더 이상 종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종수는 도저히 한 팀장에게  그 질문들을 꺼내 던질 수가 없었다. 대리 2년 차에게 팀장은, 그것도 내 상사도 아닌 옆 팀의 팀장은, 그것도 자신의 팀장과 사이가 좋지 않은 팀장은 그만큼 부담스럽고 크고 먼 존재였다. 특히나 회사에서 까다롭기로 유명한 한 팀장이라면 더욱더.  


회사 동료들에게 조언을 구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을 것 같았다. 너무 이상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종수는 잘못 말했다가 소문이 날까 봐 걱정이 들기도 했다. 한 팀장과 자신이 매번 저녁을 같이 먹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는 이야기를 서 팀장이 들었다간, 분명히 모난 곳 없이 성격 좋은 서 팀장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을 이상하게 볼 것이 분명했다. 그리 크지 않은 회사이지만 정치판은 살벌했다. 쓸데없이 휘말리고 싶지는 않았다. 어느 날 회사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입사 동기 현철이 종수에게, 자신이 며칠 전 저녁 너와 한 팀장이 같이 떡볶이를 먹고 있는 모습을 봤다고, 둘이 원래부터 아는 사이었냐고 물어보는 것에 진땀을 흘리며 둘러댄 후, 종수는 이제는 결단을 내릴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날부터 종수는 저녁을 회사 근처에서 먹지 않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종수의 집은 회사에서 지하철과 버스로 40분 정도 떨어진 지역에 있었다. 조용한 주거 구역으로, 버스 정류장 앞에는 오래된 5층짜리 아파트들이 늘어서서 재개발 허가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종수는 아파트 단지 옆에 세워진 신축 원룸 오피스텔에 살았다. 집 주변에는 식당이 몇 개 있었지만 손님도 별로 없었고 맛도 시원치 않았다. 회사 근처에서 저녁을 먹는 일을 그만둔 첫날에 종수는 아파트 상가 지하의 식당에서 순댓국을 시키고 앉았다. 그의 마음은 두근두근 떨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식당 문을 드르륵 열고 예의 그 코트를 입은 광대가 뾰족한 한 팀장이 들어올 것 같았다. 순댓국 한 그릇을 다 비우는 30여 분간의 시간 동안 종수는 족히 100번은 넘게 미닫이 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한 팀장은 계산을 하고 나올 때까지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까지 따라왔다면 한 팀장은 정말 스토커 짓을 하는 것이었다. 아니, 여기까지 따라오지 않았다고 해도 이미 충분히 스토커에 다름없었다. 거진 한 달간 자신이 저녁을 먹으러 회사 근처 식당에 들어갈 때마다 매 번 한 팀장이 자신을 따라 들어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계산을 하고 식당을 나서 집으로 걸어가며 종수는 무엇인가에 대해 어색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 소주. 하고 종수는 혼잣말을 했다. 한 팀장은 언제나 식당에서 소주 한 병을 시켰고, 종수와 함께 나눠 마셨다. 저녁에 반주로 혼자서 소주 한 병은 너무 많았지만 반 병은 딱 적당했다. 게다가 소주값은 언제나 한 팀장이 계산했었다.  자연스럽게 소주 한 병에서 나오는 일곱 잔의 술 중 마지막 한 잔은 한 팀장의 몫이었지만 충분히 공정한 일이었다.  

    

옷을 대충 벗어던지고 소파에 드러누운 다음에 종수는 다시 한번 소주를 생각했다. 한 달 내내 저녁마다 반 병씩 소주를 마셨더니 이제는 소주가 없는 저녁식사가 너무 허전하게 느껴졌다. 아니, 어쩌면 이 허전함의 이유는 소주의 부재뿐만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한 달 내내 누군가와 한 테이블에 앉아서 저녁을 먹었더니 이제는 저녁을 혼자 먹는다는 것 자체도 어색한 것처럼 여겨졌다. 생각해보면 한 팀장은 저녁식사 상대로 꽤나 좋은 사람이었다. 말이 쓸데없이 많지도 않았고, 과도하게 경계 안쪽으로 훅 들어오는 느낌도 없었다. 생각보다 권위적이지도 않았다. 회사에서라면 지시하고 지시받는 관계였지만, 식당에서는 애초에 지시할 것도 지시받을 것도 없지 않은가. 처음 한 두 주 동안에야 엄청 얼어있었던 종수였지만 최근에는 그런 불편함도 완전히 사라지고 난 뒤였다.


하지만, 하고 종수는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 한 팀장님과 저녁을 먹을 수는 없다. 부자연스럽고 이상한 일이다. 설령 자신과 한 팀장에겐 그렇지 않은 일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람들은 분명히 이 일에 자신들이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 붙일 것이었다.  



그 뒤로 종수는 계속해서 집 근처에서 저녁을 사 먹었다. 서울에 있는 회사에 취직을 하고 나서 고향을 떠나 혼자 살기 시작한 지 근 오 년이 다 되었지만, 종수는 자신의 방에서 라면 말고 다른 요리를 해 먹어 본 적이 없었다. 요리하는 것이 귀찮기도 했고, 애초에 해본 적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집 근처에 식당은 고작해야 세 곳뿐이었고, 이주가 지나자 종수는 그 식당들의 메뉴들에 물리기 시작했다. 몇 번 퇴근하는 길에 지하철에서 내려서 다른 동네에서 저녁을 먹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번거로웠다. 퇴근하고 나서 잠에 들기 전까지 네다섯 시간만이 오로지 종수 자신의 시간이었다. 자신이 잘 모르는 동네에서 먹을만한 식당을 찾아 헤매는 시간이 그에게는 너무 아까웠다. 결국 종수는 다시 자신의 집 근처의 세 식당을 번갈아 가며 방문해서, 먹었던 메뉴를 먹고 또 먹어야 했다. 이미 자신은 그 세 식당의 단골이 되어 있었다. 두 어번 종수는 밥과 함께 소주 한 병을 시켰지만, 역시 혼자서 한 병을 다 마시는 것은 너무 많았다. 마시려면 마실 수야 있었지만, 그러고 나서 집에 들어가면 몽롱한 술기운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회사에서 종수는 종종 한 팀장을 만났다. 자신의 팀과 한 팀장이 이끄는 팀은 협업을 할 일이 많아서 종종 같이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색한 것은 자신뿐인 듯했다. 자신을 대하는 한 팀장의 태도는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리 가깝지도, 그리 멀지도 않은, 자주 마주칠 일이 있는 옆 팀의 상사. 일 할 때 한 팀장은 여전히 깐깐했고, 그의 광대뼈는 여전히 높게 솟아 있었다. 


한 번은 점심때 구내식당에서 한 팀장을 만난 적이 있었다. 서 팀장을 비롯해서 모든 팀원들이 한 테이블에 앉아서 그날의 점심으로 나온 비빔밥을 먹고 있었다. 뚝배기에 고추장을 뿌린 뒤 막 젓가락으로 밥을 비비려던 찰나, 종수는 저 편, 배식대에서 막 음식을 받고 이쪽으로 몸을 트는 한 팀장을 발견했다. 일행 없이 혼자 먹으러 내려온 모양이었다. 종수는 통로 쪽 자리에 앉아있었고, 불안하게도 그의 앞자리는 비어있었다. 때 마침 어딘가 고등학교에서 단체로 견학을 온 뒤에 점심을 먹으러 구내식당에 내려와 있었기 때문에 빈자리라고는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한 팀장처럼 배식받은 음식이 놓인 트레이를 들고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곧 종수와 한 팀장의 눈이 마주쳤다. 한 팀장은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겨 종수가 앉은 테이블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곤 예전과 마찬가지로 종수에게 묻지도 않은 채 맞은편 의자를 당겨 꺼내고 그 자리에 앉았다.  


서 팀장과 팀원들이 한 팀장에게 인사를 했다. 한 팀장도 함께 인사를 했다. 얼떨결에 당황한 목소리로 종수도 한팀장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팀장님 “  언제나 종수는 입이 문제였다. 거의 매일 보는 같은 회사의 옆 팀장에게 오랜만이라니. 맥락에 맞지 않는 인사에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잠깐 서로를 바라보았다. 종수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오랜만은 무슨, 싱겁게. 먹자구“ 

하고 한 팀장이 종수에게 눈길 한 번도 주지 않고 수저를 들었다. 사람들도 어깨를 으쓱 한 뒤에, 다시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비빔밥을 먹으면서 종수는 힐끔힐끔 맞은편에 앉은 한 팀장을 바라보았다. 한 팀장은 고추장을 한쪽에 뿌린 다음에, 비빔밥과 섞지 않고 밥을 한 숟갈 뜰 때마다 고추장을 조금씩 덜어서 먹었다. 여전히 특이한 결벽증적인 식습관이었다. 그의 뚝배기 속 비빔밥은 여전히 하얗게 남아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종수는 긴장됐던 자신의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은 것을 제외하고는  한 달 전에 그와 한 팀장이 매일 저녁을 같이 먹던 회사 옆 여러 식당들의 테이블과 다를 것이 거의 없었다.  


그날 저녁 업무를 마치고 종수는 회사를 나서며 고민했다. 어느 식당으로 가야 할 것인가.  

이왕이면 바람이 찬 지금 날씨에 어울리는 국물이 있는 요리를 파는 곳으로 가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뜨거운 국물이 있는 모든 요리에는 소주가 잘 어울릴 것이었다.  

순댓국집, 돼지국밥집, 설렁탕집, 뼈해장국집, 콩나물국밥집, 알탕집, 대구탕집… 

그래, 오늘은 대구탕 집으로 하자. 그리고 오늘이야말로, 왜 서 팀장님과 사이가 좋지 않은지,  

고등학교 때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말 자신의 가설대로 둘이 한 여학생을 놓고 사랑의 라이벌 관계였는지, 그 게 맞다면 결국 그 여학생은 누구를 선택했는지를 물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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