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장수

by 효창 응봉 최중원

왕국의 어느 도시에 그림자 장수가 왔다.


그는 자신이 모은 그림자들과 함께였다.

수 백개의 그림자들이 그의 발밑에서 웅성거렸다.

그림자를 바꾼다고 사람까지 바뀌겠냐고 물어보신다면

쉽지 않은 일이라고 답하겠소 그러나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어차피 쉽지 않은 일

바꿀 수 있는 것이라도 바꾸는 것이 현명한 태도 아니겠소

돈은 안 받으니 다만 필요 없는 여러분들의 그림자들을 내어주시오


그림자 장수는 자신이 모은 수 백개의 그림자들을 펼쳤다

장마당이 바글거리며 어두워졌다.

키가 작은 사람은 키가 큰 그림자를 샀다.

코가 작은 사람은 코가 큰 그림자를 샀다.

발 한쪽을 잃은 사람은 두 다리가 멀쩡한 그림자를 샀다.

귀족의 아이는 종을 데리고 와 멋진 칼을 빼어든 기사의 그림자를 샀다.

함께 온 종은 망토를 두른 귀족의 그림자를 샀다.

때마침 지나가던 백작은 왕관을 쓴 왕의 그림자를 샀다.

소문을 듣고 온 주교는 성인의 그림자를 샀다.

모두가 하나같이 새로운 그림자에 만족하며

예전의 그림자를 떼어놓고 각자의 집으로 항했다.


주인을 잃고 헤매이는 검은 형태들을 그러모아

그림자 장수는 자신의 발 밑에 질끈 묶었다.

성인의 그림자를 산 주교가 다시 다가와 물었다.

성인께서는 어떤 그림자를 원하셔서 자신의 것을 팔은 것입니까.

신의 그림자를 원하셨다오.

신께서는 어떠한 그림자를 원하셔서 자신의 것을 팔은 것입니까.

그림자가 없기를 원하셨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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