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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창 응봉 최중원 Jan 04. 2020

크리스마스에 일어난 일

크리스마스의 새벽에 영현스님은 소리에 놀라 깨어났다. 작은 요사채 안에는 다른  명의 스님이 함께 잠자리를 펴고 누워있었으나, 깨어난 것은 자신 뿐인  했다. 분명히 가까운 곳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쩌면 멧돼지일 수도 있다.  며칠간 내린 눈에 먹을 것이 전부 파묻혀 버린 바람에 주린 배를 채우러 절까지 내려왔을 수도 있다. 종종 있는 일이었다. 영현스님은 이불을 덮고 다시 자려고 했으나, 이번에는 선명하게 사람의 말소리를 들었다. 우리 말이 아니었다.
영현스님은 다른 스님을 깨울라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갈색 누비조끼를 걸처입고 바깥으로 나왔다. 적막한 절간에는 싸리눈이 내리고 있었다. 바람이 추웠다. 그는 버선을 신고 소리가 나는 대웅전 쪽이었다. 대웅전 문의 창호지 너머로 희미한 불빛이 왔다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영현스님은 침을 꼴깍 삼키고, 대웅전 한켠에 기대 세워져있었던 빗자루를 움켜쥐고 조용히 마루로 올랐다. 대웅전 안에서 누군가가 영어로 혼자말을 했다.
„ Bullshit, where did I put presents for monks?“
영현스님은 대학시절에 전화영어를 오래 했었기에 서툴지만 영어를 조금   있었다.  스님들에게  선물이라니, 안에 있는 손님은 산타클로스라도 되는 것이란 말일까?  그는 일단 크게 숨을 들이키고,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바로 말을 이었다.
거기 안에 누구시오?“
잠시의 침묵이 흐르고 안에서 대답이 들렸다.
„Ah.. sorry. I can’t speak Korean“ 굵고 성량이 , 마치 부업으로 테너라도 하고 있는 것만 같은 사람의 목소리였다.
„Who are you there?“ 하고 영현스님이 영어로 물었다.
„Thanks god, you can speak English, I’m, I’m Saint Nikolaus“
영현스님은 어안이 벙벙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의 늦은 밤에, 깊은 산골의 작은  대웅전에 외국인이 몰래 숨어들어왔는데,  외국인이 자신이 산타라고 말하고 있었다.
„ no kidding. What are you doing in there?“ 하고 영현은 빗자루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면서 물었다.
„ I was trying to find the gifts for you guys. All 3 of you.“
 절에는 모두 셋의 스님이 있었다.  
„ so you mean, you are real Santa? Then where is 루돌프?“
„ aren’t they not there? Jesus Christ, again!  They must have been gone, maybe to eat some berries
but look at the ground. It must be plenty of footprints there“
영현은 대웅사  경전의 바닥을 보았다. 정말 무엇인가의 흔적들이 어지럽게 잔뜩  있었다.  정말로 동물의 발자국이라면 이것은  두마리의 흔적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대웅전 안에 있는 남자는 정말 산타클로스가 맞단 말인가?

„Thanks for the Gift.. but… but…“ 영현스님은 잠시 고민했다. 자신의 짧은 어휘력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이어 나갈 수가 없었다. 그는 눈을  감고 한국으로 말을 이었다. „ 선물은 고맙소만은, 우리들은 출가한 . 세속의 것은 받지 않소. 마음만 고맙게 받겠으니 그만 돌아가시오.“
영현은 그렇게  하며 대웅전 마루를 살금살금 걸어서 건물의 다른쪽 면으로 향했다. 분명히 며칠 전에 서쪽 문의 창호지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봤었다.
„What…? I said I can not understand Korean“ 굵은 목소리에서 약간의 짜증이 묻어나왔다.
„We.. we monks do not need any kind of  ..of.. capitalism? please go now.“ 영현스님은 젊었을  마르크스의 경제학에 빠져 있었던 때가 있었다.
„Oh, okay. I get that.  you are communist. Aren’t you? From North Korea? „
어처구니 없는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영현스님은 작은 창호지 구멍에 자신의 눈을 조심스럽게 가져다 댔다. 어두운  안에  명의 사람의 윤곽이 보였다. 덩치가   그의 옆에는  덩치만한 크기의 자루가 하나 놓여져있었다. 자칭 산타클로스는 대웅전 안의 불상 쪽을 향한  쭈그리고 앉아서 무엇인가를 꼼지락거고 있었다. 아마도 그가 가져온 듯한 손전등이 하나 켜져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불이 그렇게 밝지 않아서 영현스님은 안에 있는 사람이 진정 산타 클로스인지 아니면 무엇인가를 노리고 숨어들어온 도둑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아니, 밝은 대낮이었다고 해도 아마 구분하기 어려웠으리라.

„ Okay. Almost done“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면서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Still there, Monk?“
„yes.“ 깜짝 놀란 영현 스님이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안의 남자는 느린 동작으로 바닥에 내려진 자루를 주섬주섬 챙기고는 어깨에 맸다. 그리고는 말했다.
„Your name is… Young-Hyun, is it right?“
어떻게  이름을?“ 다시 한번 놀란 영현 스님이 말했다.
„Come on, man. English please“  남자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영현은 다시 영어로 자신의 말을 옮겨 말했다.
„How did you know my name? „
„ because there is your name on this letter, with a short description.  thick eyebrows. Brown vest, extra-wide forehead and short“
„Who wrote that letter?“ 영현스님은 말을 내뱉고 나서 부끄러움에 휩싸였다. 출가한지 삼년이 넘었건만 아직도 예전의 신체적 콤플렉스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니.  
„Haha, one of your believer, a little and sweet one“ 안의 남자는 재밌다는  너털웃음을 터트린 다음 말했다.
„The girl, who’s parents converted to Christianity, missed you monks so much, so she wrote me a letter,  to ask a favor,  so Here I am „
 이야기를 듣는 순간, 영현 스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가 있었다.


영현스님. 거기서 뭐하시고 계셔요?“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말소리에 영현은 놀라 돌아보았다. 요사채의 같은 방에서 자고 있던 율도스님이었다. 그의 작은 눈이 놀라 휘둥그래져 있었다.
영현 스님은 검지를 자신의 입에 대어 , 하는 제스쳐를 취하고는 손짓으로 이리 오라고 청했다. 율도스님이 졸린 눈을 비비며 천천히 자신에게 다가왔다.

 안에 지금, 산타 클로스가 있어요.“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작게 영현 스님이 말했다.
?“  무슨 황당한 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마루 아래에   율도스님이 마루 위에  있는 영현스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대웅전을 바라보았다. 희미한 불빛에 비친 사람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정말, 덩치  외국인이,  자루를 들고 대웅전에 들어가 있다구요. 그리고 어떤 아이가 자신에게 편지를 썼다고, 그래서 여기로 왔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소리에요, 스님.  뉴스  보셨어요? 며칠 전에  산의 봉현사 대웅전이 털렸어요. 한밤중에 와서 금으로 만들어진 작은 불상들과 헌금함만 들고 사라졌다구요. „ 율도스님은 말을 마치고는 영현이 맥아리 없이 손에 쥐고 있던 빗자루를 보더니 뺏어서  손으로 움켜쥐었다. 파지하는 자세가  그럴듯 했다.
  속세에서 검도를  오래 했었습니다. 걱정 마세요.“  
 아니, 잠깐만요 율도스님!“

하지만 영현스님이 어떻게 하기도 전에, 율도스님은 마루위로 뛰어 올라와서는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성큼 대웅전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영현스님 역시 허겁지겁 따라 들어갔다. 하지만 대웅전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게 무슨……“
율도와 영현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서로의 얼굴만을 바라보았다.
아니, 스님. 스님도 보셨지 않나요. 분명히 사람이……“ 영현 스님은 말을 있지 못했다. 대웅전 안에는 중앙에 본존불인 석가모니의 상이,  우에 각각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상이 모셔져 있었는데, 금색으로 마감된   불상의 머리 위에 수북하게 머리카락이 자라 있었다.
나무아미타불깜짝 놀라 무릎을 꿇으며 율도스님이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영현스님은 불상쪽으로 다가갔다. 문수보살의 머리 위에는 곱슬곱슬한 금발의 머리카락이, 보현보살의 머리 위에는 역시 곱슬곱슬한 갈색의 머리카락이, 석가모니의 머리 위에는 상대적으로 곱슬기가 덜한 검은 머리카락이 자라 있었다. 모두가 방금 미용실이라도 다녀온  정리된 헤어 스타일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오 스님머리가부처님에게 머리가…“  뒤에서 율도스님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말했다.
진정하시지요. 스님“  영현스님은 문수보살의 머리 쪽으로 손을 뻗으며 말했다. „가발입니다

가발의 뒷면에는 제품의 취급사항이 적혀 있는 택도 달려있었다. 영어로 적혀있었다. Made in China 라는 문구도 선명했다.
어떤 놈이 이런 장난을….“ 율도스님은 화가 많이   했다. „얼른 행사채로 돌아가서 신고라도 합시다
영현스님은 어리둥절해하며 율도를 따라 행사채로 돌아갔다. 아까 대웅전에 있었던 사람은 정녕 산타 클로스가 아니란 말인가? 어느 시간이 남아도는 외국인이    한국의 구석진 곳에 있는 절에 와서, 부처를 이렇게 이상하게 모욕하는 일을 벌인단 말인가?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질  있었을까? 율도스님과 함께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대웅전  바닥에  있었던 동물들의 발자국 흔적을 제외하고는 그들은 아무 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소동에도 송안스님은 행사채의 이불속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송안스님을 깨우려던 영현과 율도스님은 송안 스님의 머리맡에, 가발 하나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이번엔 은빛에 단발 정도의 길이였다.  뿐만이 아니었다. 영현과 율도스님의 머리맡에도 다른 색에 다른 스타일의 가발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이게 대체…“
영현스님은 자신의 자리 이불 위에 작은 접힌 종이 하나가 놓여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종이를 주워들고는 펼쳤다.  서투른 글씨로 쓰여진 편지였다.
무슨 편지입니까. 뭐라고 쓰여져있어요?“ 율도스님이 편지의 내용을 읽으려고 기웃거렸다.
저희 머리카락이 실종됬다고, 추울텐데 머리카락을 선물해 달라네요. 가능하다면 부처님들에게도 말입니다하고 영현스님이 답했다.
?  무슨누가 선물을 준단 말입니까?“
산타 클로스가요.“
?“ 율도스님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편지 저도  봅시다.“
영현스님은 조용히 고개를 젓고 편지를 다시 고이 접어 누빔조끼의 주머니 속에 넣었다.
 편지는 저한테  것이니, 보여드리지는 못하겠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이게 지금 말이 됩니까? 산타클로스가 와서 우리에게 가발을 선물해주고 갔다구요? 아니 이건 우리 불교에 대한 모욕입니다. 어떤 놈팽이 같은 놈들이 이런 짓을…!“ 율도스님은 진정으로 화가   했다.
아니, 왜들 이러시오. 무슨 일입니까?“ 이제서야 일어난 송안스님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

영현 스님은 행사채에서 나와 신발을 신고 마당으로 걸어나왔다. 그리곤 주머니 속에 넣었던 편지를 다시 꺼냈다. 어스름히  편에서 해가 뜨고 있었다. 힘이 들었지만 글을 읽을  있을 만큼은 되었다. 당연히 영현 스님은  편지를  아이를   있었다. 이런 마음으로  자란다면 기독교든 불교든, 종교를 가지지 않든 무슨 상관이랴. 그리고 그는 편지를 다시 한번 천천히 읽었다.
산타클로스에게 부탁하는 내용 중에  스님의 외모에 대한 묘사가 있었다. 똑같은 옷을 입고 있으니 구분할  있는 것은 사실 외모밖에 없었기 때문이리라.
영현스님의 외모에 대한 묘사는 아까 대웅전의 남자가 영어로 말한 그대로였다. 송안 스님에 대한 것도 별반 특별할 것이 없었다. 문제는 율도스님의 외모에 대한 묘사였다. 제일 웃음이 나오는 대목이었다. 깍쟁이 같음.   제일 못생겼음. 율도스님의 성격이라면  이주 가량은 삐질 만한 일이었다.

아니 거참, 영현 스님. 편지 내용 나도  봅시다
하고 신발을 신고 율도스님이 걸어나왔다.
무슨일이냐고  번을 물어봐요, 답답해 죽겠네.  가발입니까?“
송안스님도 함께 걸어나왔다.

율도스님, 송안스님.“
하고 영현스님이 몸을 돌려 그들을 불렀다. 그리곤 합장을 하고 말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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