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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창 응봉 최중원 Mar 12. 2020

 공간들에 대하여 : 낙성대 탐탐

서울, 베를린, 함부르크 공간들의 기억 

아래의 글은 2016년 2월에, 그 당시에 막 핫했던 글쓰기 플랫폼 미디엄에 적었던 글이다.

베를린과 함부르크의 애정하는 공간들에 대해서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몇 년 만에 미디엄에 로그인해서 다시 읽어보았는데, 내가 쓰는 글이 4년간 참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싶다. 

쓰지 않았지만 올릴 게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마치 작년 겨울에 입고 넣어두었던 코트 안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발견한 듯한 기분으로 글을 올리고 본다. 참고로 낙성대의 탐앤탐스 카페는 없어진 지 한참 되었다.




낙성대의 준아카데미 204호에서 산지 4년이 되었다. 좋아하는 동네를 떠나게 되어 아쉽다. 특히나 이사 갈 곳이 언덕을 따라 줄지어 서있는 아파트와 큰 도로밖에 없는 응봉동이라서 더 아쉽다. 카페, 맛집, 출력소, 횟집, 술집, 공원, 편의점, 마트…과제와 외주작업의 홍수에 흠뻑 젖은 채로 방황하며 헤매던 내 영혼이 잠시 머물 수 있게 허락한 곳들. 그 모든 공간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짧게 정리하는 글을 쓴다.


카페 : 탐탐


낙성대 탐앤탐스 (이하 탐탐)은 낙성대에서 첫 번째로 열린 24시간 카페다. 천고가 그리 높지 않았는데 복층 구조로 되어 있었고, 좌석도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답답한 느낌이다. 의자도 딱딱하고 인테리어는 다들 빤질빤질하다. 노래의 선곡도 영 별로다. 게다가 일층에는 흡연실이 있는데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열린 문으로 담배 냄새가 뿜어져 나온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노래방을 갈 때의 괴로운 기억이 생각날 정도였다. 하지만 밤을 새워서 과제나 작업을 해야 한다면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새벽 3,4시에도 항상 자리가 꽉 차 있었다. 츄리닝바람에 비니나 후디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저마다 노트북, 교재나 문제집을 펴놓고 멍한 눈으로 뭔가를 하고 있다. 몇몇은 꾸벅꾸벅 졸고, 몇몇은 엎드려 잔다. 물론 나도 몇 번 잔 적이 있다. 소향이도, 민선이도 탐탐에서 몇 번 밤을 새웠고, 아마 몇 번씩 엎드려 잤었을 것이다. 그러다 문득 깨어났을 때 뱃속 심연에서 공허의 소리가 울려 퍼지면, 아직 꿈속 같은 발걸음으로 카운터로 가서 페퍼로니 프렛젤을 주문한다. 나는 탐탐의 페퍼로니 프렛젤이 좋았다. 짭짤한 페퍼로니, 짭짤한 치즈, 짭짤한 빵. 나와 밤을 함께 지새워서 차게 식어버린 쓴 커피와 함께 먹으면 짠맛과 쓴맛이 입안에서 서로 경쟁이라도 하는지 프렛젤은 더욱 짜지고 커피는 더욱 써진다. 어딘가로 자꾸 떠나려고 하는 내 정신을 모니터 화면으로 고정시키는데 효과적인 메뉴였지만, 먹을 때마다 왠지 모르게 내 몸에게 미안해지는 느낌도 들었다.


우리의 탐탐에 (나는 정말 우리라고 부르고 싶다. 탐탐에서 밤을 지새운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동료애를 느꼈다) 미덕이 있다면, 그것은 위에서 언급한 것들을 포함한 여러 종류의 거슬리는 점들이 모여서 형성된 총체로서의 불편함이다. 두어 시간 머물다 갈 때는 무시할 수 있다. 하지만 밤을 새울 것을 작정하고 카페에 들어와, 앉아서 6–7시간 동안을 지내다 보면 이런저런 거슬림들이 나를 포위하고는 서서히 진군해 들어오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엔가 나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불편해져서, 최대한 빨리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포근한 이불에 몸을 돌돌 말고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길 소망하게 되는 것이다. 페이스북, 웹툰 등등 딴짓도 전혀 안 하고 엄청난 몰입도로 일을 하게 된다. 만약 탐탐이 담배냄새도 안 나고, 의자도 푹신하고, 노래의 선곡도 좋고,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여서 그곳에 있는 것이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도 엎드려서 잠도 더 자고 딴짓도 더 많이 하면서 퍼져 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더 늦게 집에 들어가서 잠도 별로 못 잤을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세상은 정말 복잡하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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