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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창 응봉 최중원 Jun 27. 2020

어깨

*

인공 어깨를 오른쪽에 단지 반년이 지났을 때 나는 처음으로 무엇인가가 맞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어깨가 미묘하게 나의 의지와 다르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정확하게 인지하기는 어려웠지만 분명 무엇인가 매끄럽지 않은 구석이 있었다. 왼쪽 어깨를 움직였을 때와 비교해보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나와 함께였던 왼쪽 어깨는, 지금까지 그랬듯이 단 하나의 오차나 마찰 없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 온전히 내 것이라는 감각이 있었다. 하지만 신참인 오른쪽 어깨는, 역시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는 하지만 어딘가 덜커덩거렸다.  머뭇거렸다. 머뭇거리는 어깨라니. 


그 불편함은 워낙 순간적인 것이어서, 일상생활을 하는데 지장은 없었다. 나는 오른쪽 팔을 여전히 잘 쓰고 다녔다. 출근길에 왼손으로 핸들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메일을 확인하고 메시지에 답문도 적어 날렸다. 회사에서는 늘 그렇듯 아침과 점심의 정해진 시간에  부장의 까다로운 취향에 맞춰서 커피와 프림, 설탕을 딱 맞는 비율로 섞어 대령했다. 퇴근해서는 컴퓨터 게임도 하고, 볼펜으로 메모지에 사 와야 하는 식료품들을 적었다. 일요일에는 공원에서 친구들과 농구도 했다. 첼시와 함께 산책을 갈 때면 부메랑도 던질 수 있었다. 심지어 부메랑은 예전보다 더 멀리, 원하는 곳으로 더 정확하게 날아갔다. 신이 난 내가 계속 멀리까지 던지는 부메랑을 계속 주워와야 했던 첼시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곯아떨어졌다.


하지만 연주실의 피아노 앞에 앉아서 무엇인가를 칠 때에 나는 그 머뭇거림을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내 오른손이 건반을 누르는 순간과 피아노에서 해당하는 음계의 소리가 나는 순간 사이에는 짧지만 분명히 인지가 가능한 틈이 벌어져 있었다. 마치 오래된 디지털 악기를 연주할 때처럼 버퍼링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피아노가 아니다. 왼손으로 연주하는 낮은음들은 정확히 내 손가락의 움직임에 맞춰 소리를 냈다. 오른손으로 연주하는 음들만이 조금씩 늦게 울렸다. 베토벤의 웅장한 노래들을 칠 때야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쇼팽이나 드뷔시의 섬세하고 기교 있는 곡들을 연주하자니 그 미세하게 어긋나는 타이밍들이 쌓이고 쌓여 도저히 듣지 못할 정도였다. 


주의 깊은 관찰을 통해서 나는, 내 오른손 손가락이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것과 피아노에서 해당하는 소리가 나는 것은 실제로는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틈은 내가 손가락을 움직이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과 해당하는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 사이에 있었다. 분명히 문제는 오른쪽 어깨였다. 뇌에서 이어진 신경은 어깨를 거쳐서 손가락 끝까지 도달한다. 무슨 이유에선지 신경이 오른쪽 어깨에서 시간을 지체하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오른쪽 인공 어깨를 이식하는 수술을 했던 병원에 연락을 해 보았다. 콜센터의 직원은 내 이야기를 이해하기 조금 힘들어하는 것 같았지만 곧 해당 부서로 전화를 돌려주었다. 해당부서의 직원은 일단 문제는 접수했다며, 하지만 그 정도의 지체 현상은 허용되는 범위 안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물었다.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으신 게 아닌가요, 선생님? “  나는 지장이 없다고 대답했다.

„혹 시라도 시차가 더 심해지신다면, 인공 어깨를 제작한 회사로 문의해보세요. 보증기간은 이년입니다.“

보증기한이라니, 세탁기나 노트북을 산 게 아니라구요, 하고 엄한 상대에게 투덜대면서 나는 회사의 콜 센터 전화번호를 받아 적었다.


**

다음 며칠간은 별 일 없이 지나갔다. 피아노만 치지 않으면 나는 내 오른 어깨의 문제를 느낄 일이 없었다.  다행히도 일이 바빠서 피아노를 칠 겨를도 없었다. 나는 중견 기업의 경영지원 부서에서 일하고 있었다. 일 년에 두 번, 회계감사 때문에 일이 몰리는 시즌이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새벽 세 네시에 퇴근하고는 잠깐 눈을 붙인 다음에 여덟 시에 다시 출근하는 생활이 일주일 넘게 이어졌다.  나의 오른손은 열심히 서류를 뒤적거리고 형광펜으로 숫자들 위를 덧칠하고 키보드 오른쪽의 넘버 패드로 여러 자리의 숫자들을 입력했다. 


혹시라도 내 오른 어깨가 문제를 일으킬 거라면 피아노 연주할 때가 아니라 지금 같은 순간에, 모두가 보는 앞에서 대판 크게 터트려버렸으면 좋겠다는 이상한 생각도 들었다. 예를 들자면 엑셀 시트에 입력하는 모든 숫자 끝에 영을 여섯 개 정도 더 붙여버린다던지, 엔터키를 세게 내리쳐서 노트북이 박살나 버린다던지, 뒤에 서서 어깨를 자꾸 툭툭 쳐대는 부장의 손을 거절의 의미로 살짝 쳐내다가 힘 조절을 잘못해서 손목을 꺾어버린다던지, 아무튼 뭐 그런 다이내믹한 문제를 말이다. 막돼먹은 사람들만 모여있는 지루하고 엉망인 회사에 마땅히 어울리는 그런 문제를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회계 감사를 위한 서류 제출을 모두 끝내고 나서 지하철 역에서 내려서 집까지 걸어오는 길에 나는 갑자기 새된 외침 소리를 들었다. 누군가가 소매치기를 당한 모양이었다.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에, 후드를 뒤집어쓴 어떤 덩치가 작은 남자가 내 앞으로 달려와 나를 스치고 반대편으로 뛰어갔다. 한 여자가 소리를 지르며 그를 쫒아 뛰어오고 있었다. 그때 바로 옆 과일과 게에서 밖에 진열해놓고 팔고 있는 사과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며칠 전에 첼시와 공원을 갔을 때 던졌던 부메랑이 놀랍도록 정확하고 멀리 날아갔던 것을 떠올렸다.  나는 사과 한 알을 집어 들고는 멀어지는 소매치기를 쳐다보았다. 그는 벌써 꽤 멀리까지 달아났고, 주변에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왠지 나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한 다리를 들고 와인드 업. 시선을 소매치기를 향해 고정한다. 가자 인공 어깨야! 나는 온 힘을 다해 사과를 던졌다. 


***

조사를 마치고 경찰서를 나왔을 때엔 이미 열두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거리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며 배달된 피자와 맥주를 즐기려던 나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몸은 축 쳐졌고 머리는 무거웠다. 이상하게도 왠지 오른팔만 힘이 넘쳤다. 막 휘두르고 뻗어대고 무엇이라도 움켜쥐고 던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이 것도 다 인공 어깨 때문인가? 내가 알기로는 이 어깨에 무슨 엔진이나 모터가 달려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언맨처럼 아크 원자로 같은 동력원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내 왼쪽 어깨와 마찬가지로, 온전히 내 근육과 내 신경에 반응해서 움직인다. 나의 명령에 약간이지만 느리게 반응하는 것이야 신경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친다 해도, 부메랑이나 사과를 이전보다 더 멀리, 그것도 아주 정확하게 던질 수 있게 된 것은 어떻게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등에 사과를 정통으로 맞은 소매치기는 바로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피멍이 선명했다고 경찰이 귀띔해줬다. 그리곤 어디 프로야구 선수라도 되냐고 물어봤다.  소매치기를 당했던 여자는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아 보였는데, 눈물 때문에 눈 화장이 다 번진 얼굴로 연신 나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자신의 명함을 주면서 어떻게든 보답을 하고 싶다고 연락을 주면 밥이라도 한 끼 사겠다고 말했다.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집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나는 그 여자의 명함을 다시 꺼내 보았다. 이름과 전화번호, 그리고 회사와 직책이 적혀있었다. 


집에 들어오자 첼시가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겼다. 나는 그 북실북실한 털 덩이를 몇 번 쓰다듬어 주고는 재킷만 대충 벗어 바닥에 던져 놓은 채 침대 위에 벌러덩 누웠다. 그리고는 내 옆자리에 올라와 누운 첼시에게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 

"첼시야, 내 오른 어깨가, 오른 팔이 좀 이상한 거 같은데. 왼쪽 하고 오른쪽 하고 뭐가 다른지 한 번 느껴볼래? 

첼시는 못 알아듣겠다는 듯이 눈을 멍하게 한번 깜빡였다.

„자 이게 왼팔!“ 하고 나는 왼손으로 첼시의 배를 간지럽혔다. 잠시 뒤에는  „자 이거는 오른팔!“ 하고 간지럽히던 팔을 바꿨다. 

첼시는 기분이 좋은 듯 혀를 내밀고 작게 헉헉거렸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내 어깨든 인공 어깨든 무엇이든, 자신의 배만 긁어줄 수 있다면 그걸로 좋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괜찮을까? 쇼팽이나 슈만, 드뷔시를 연주할 수 없는 어깨와 팔과 손을 가지고 사는 것이? 이 털 덩이 생명체를 제외하면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삶의 낙이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돈을 모아서 비록 제일 저렴한 모델이긴 하지만 스타인웨이 앤 선즈의 그랜드 피아노를 사고, 방 두 개짜리인 집의 방 하나를 통째로 방음재로 뚤러싸서 연주실로 개조까지 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 나는 베토벤의 운명이나 영웅 같은 쿵쾅거리고 화려하기만 한 곡들만 쳐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하고  쇼팽의 야상곡 중 하나를 틀었다. 마우리치노 폴리니의 연주다. 미끄러지듯이 진행되는 멜로디와 아름다운 화음의 반주에 격해졌던 마음이 천천히 진정되었다. 


나는 이번엔 양손으로 첼시를 간지럽혔다. "첼시, 아무래도 내일은 오른쪽 어깨를 만든 회사에 전화를 해봐야겠지?" 첼시는 배를 드러내고 누워서 헥헥거렸다. 그때 갑자기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부장이었다. 자료 제출도 다 마친 이 시간에 전화를?


„최대리, 아니 일을 어떻게 한거야!“ 

부장은 다짜고짜 소리부터 질러 댔다.

„ 네?“

„아니 숫자가 하나도 맞지 않잖아! 네가 정리한 서류들 말이야! 모든 숫자에 0이 여섯 개씩 더 붙어있는 채로 넘어가버렸다고!"

부장의 그 말에 나는 정신이 바짝 들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장난처럼 생각이야 했지만 그렇게 적지는 않았었다. 설마 내 오른 어깨가 자기 마음대로 0을 여섯 번씩 더 눌렀단 말인가?

„너 지금 나 엿 먹으라고 일부러 한 거지? 어? 내가 그렇게 우스워보이냐? “ 부장은 머리끝까지 화가 솟아 있는 듯했다.

„정말 아닙니다, 부장님! 뭔가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아무렴 제가 일부러 그렇게 했겠습니까! 믿어주십시오! “

말은 그렇게 했지만, 변명이 궁했다. 누가 봐도 실수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일부러 골탕 먹이려고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을 것이었다. 오른쪽 어깨에 대해서 말해볼까 하고 잠깐 고민해 봤으나, 믿을 것 같지 않았다. 

"내가 회계법인 담당자에게 읍소를 해서 어떻게든 시간을 벌었으니까 얼른 회사로 튀어와서 다 고쳐! 나도 지금 가고 있는 중이니까! “

„아, 네 네 죄송합니다! 저도 바로 가겠습니다!“

„… 쇼팽이야?“ 잠깐의 침묵 끝에 부장이 물었다.

„네?“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되물었다.

„지금 쇼팽 듣고 있냐고.“

전화기를 통해서 아까 틀어둔 곡이 들린 것 같았다.

„아, 네.. 쇼팽의 녹턴 11번…“

„쇼팽의 녹턴 11번 같은 소리 하고 앉아있네. 그런 여리여리하고 감상적인 노래나 들으니까 계집애 같다는 소리나 듣는 거야. 엉? 나에게 불만이 있으면 직접 와서 말을 하라고, 이렇게 창의적으로 엿 먹일 방법 고민할 시간에! 그런 배알이 없으니까 쇼팽이나 듣고 있지. 응? 뭐 있잖아! 빰빰빰빰! 빰빰빰빰! 뭐! 응? 운명! 영웅! 베토밴! 라흐마니노프! 남자답게 그런 거를 들으라고 좀!“

그리곤 부장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서둘러서 옷을 챙겨 입다가 나는 문득 반쯤 열려있는 문 사이 불 꺼진 연주실 안에 검은 그랜드 피아노가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양말까지 다 신은 상태로 나는 연주실에 들어와 피아노 앞에 앉았다.  바흐의 "푸가의 기법" 악보를 꺼내 보면대 위에 펼쳤다.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는 오른손을 들어 연주를 시작했다. 왼손의 반주도 금방 시작되었다. 열 마디가 채 지나기 전에 벌써 왼손과 오른손이 어긋나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반주와 멜로디가 천천히 서로의 간격을 벌려나가고 있었다. 인위적으로 간격을 좁혀놓아도 다시 금방 벌어졌다. 오른손과 오른팔, 오른 어깨는 하지만 그 딜레이를 제외하곤 내 의지에 충실히 따르고 있었으나, 기껏해야 30센티미터 안의 범위에서 작게 작게 움직이는 동작들에 답답해하고 있었다. 경찰서에서 막 나왔을 때처럼 다시 오른팔 전체에 힘이 느껴졌다. 타건하는 오른 손가락에 점점 더 큰 무게가 실렸고 바흐의 푸가는 이제 거의 베토벤의 교향곡처럼 바뀌어 있었다. 깜짝 놀란 첼시가 방안을 빙글빙글 돌며 사방을 향해 멍멍 짖어댔다.


나는 겨우 내 오른손의 움직임을 멈출 수 있었다. 부수어야 하는 것은 이 피아노가 아니다.  부수어야 하는 것은 다른 곳에 있다. 회사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나는 내 어깨를 스트레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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