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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창 응봉 최중원 Jul 27. 2023

청키면가와 알레그리아 광화문

카페에 대해서 

이런저런 설명하기 번거로운 이유로 요즘 수요일은 쉬고 있다. 쉰다는 행동을 정의하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이 글을 쓰면서 느끼는데, 일단 이 글에서 쉬고 있다고 할 때는 실제로 무슨 행위를 하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달라. 


원래 오늘(7월 26일 수요일)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게임과 관련된 전시를 보러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났더니, 꼭 실제로 가서 봐야 하는 전시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어컨이 거실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매트리스는 넓지 않은 거실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는데, 그 위에 앉아서 폰으로 몇몇 블로거들의 전시 리뷰를 함께 읽었다. 음- 그렇군! 이런저런 게임이 있구나! 게임의 형식을 차용한 아방가르드 예술작품이 있구나! 꽤 많은 체험 콘텐츠들이 관리부실로 작동하지 않고 있구나! 다 봤다!


생각해 보면 송과 나는 이른바 고급문화를 향유하기 위해서 부러 먼 곳까지 가는 것을 별로 즐겨하지 않는 같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전시회나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을 (그중에서도 “현대”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는 경우라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더 즐기지 않는 것 같다. 특히나 이런 찌는듯한 더위에는 더더욱! 즐기지 않는 것 같다고 확신 없이 말하는 듯한 말투를 붙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현대의 교양인이라면 왠지 모르게 종종 이런저런 전시나 공연을 보러 가야만 할 것 같고, 특히나 그래픽 디자인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욱더 적극적으로 뽈뽈거리면서 이런저런 갤러리나 공연장에 얼굴을 들이밀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기 때문이다. 마음속에서는 아무리 뚜렷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공적인 발화일 수 있는 이 짧은 글쓰기에서는 상황을 무마할 수 있는 여지를 조금이나마 남겨두고 싶다.


전시를 보는 것 외에 오늘의 목적이 하나 더 있었다. 며칠 뒤면 10년 동안의 영업을 마치고 문을 닫는다는 무교동의 “청키면가”에 가는 것이었다. 우리가 독일에 가기 전 1년간 있었던 이태원 가구거리의 초입에도 청키면가가 있었는데, 우리는 그곳의 볼품없어 보이는 면과 새우향 진한 국물, 조금 모자라게 부어주는 볶음자장소스를 정말 좋아했다. 무교점이 본점이고, 이태원 외에 여의도에도 분점이 있었던 모양이지만, 두 분점은 문을 닫은 지 한참 되었고, 이제는 본점 역시 28일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게 된 모양이다. 하지만 청키면가가 문을 여는 열한 시 반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우리는 먼저 근처에 있는 카페, 알레그리아 광화문 케이스퀘어시티점으로 향했다.


높은 천고, 밝은 회색의 시멘트와 채도 낮은 나무로만 채워진, 허리 높이 위에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커피머신과 그 외 음료를 제조하는데 필요한 다른 기기들 뿐인 미니멀한 인테리어. 한쪽 벽면 전체를 채우며 나있는 통창 너머로는 약간의 관목들이, 그 너머로는 빌딩 그늘에 숨어서 걸어 다니는 직장인들이 보인다. 손님이라고는 민선과 내가 전부다. 직원도 두 명이니 의자가 어림잡아도 30개는 될 것 같은 이 넓은 공간에 겨우 4명뿐이다.


비어있는 의자며 테이블은 이 건물의 위층 사무실에서 업무용 의자에 앉아 카페인을 쪽쪽 빨아대며 엄습하는 피곤과 싸우는 사람들을 상기시킨다. 12시가 넘으면 이 카페는 식후 커피를 마시러 오는 직장인들로 꽉 찰 것이고, 지금의 고요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의 매출 덕분에 이 카페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일 테니 지금의 고요를 즐기는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토성의 고리”를 읽고, 송은 “타이포그라픽 디자인”을 읽는다. 토성의 고리는 말은 횡설수설하고 일어나는 사건들이 잘 이해되지 않는데 그럼에도 술술 읽힌다. (쑤전 쏜탁, 이딸리아…번역가는 된소리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임이 틀림없다. ) 주인공은 어딘가 낯선 곳에 자꾸 가는데, 무슨 목적으로, 무슨 계획으로 갔는지는 도통 말해주지 않고 대신 공간의 인상에 대하여, 얼마 전에 죽은 지인에 대하여 정말 자세한 묘사를 늘어놓는다. 이곳에 앉아 책을 읽다 보니 마치 여행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두가 위층에서 일할 때 우리는 아래층에서 책을 읽는다. 모두에겐 낯익은 곳이지만 우리에겐 낯선 곳이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뚝섬으로 돌아가면 우리도 다른 모두처럼 다시 일을 해야 한다.


11시 30분이 조금 넘어서 청키면가로 향했을 땐 이미 가게 앞에 열명도 넘는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10년 동안 이곳에서 장사를 했으니, 이 근처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한 두 번은 와 봤을 것이다. 줄 서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 식당이 이틀 뒤에 문을 닫는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조금 고민했지만 우산을 양산처럼 펼쳐 들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좁은 가게에서 사람들은 어깨를 맞대고 뜨끈한 요리를 먹어댔다. 우리가 좋아했던 짜장로미엔도, 공심채 볶음도 주문할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새우완탕면은 기억 그대로였고, 처음 먹어봤던 소고기 로미엔도 맛있었다. 


좋은 여행이었다. 이제는 돌아가서 일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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