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고 싶은 나의 이야기 1.

진짜 인생의 시작 2002년 3월 25일

by Berlinerin

만 스무 살이 막 되었던 2002년 3월 25일 독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일본을 다녀온 것 말고는 비행기도 타본 적 없고 외국을 나가본 적도 없었다. 프랑크푸르트까지 가는 루프트 한자 만석 이코노미석에서 12시간 내내 외투도 벗지 않고 입국 서류와 악보가 들어있는 배낭을 꼭 안고 있었다. 기내식에 나왔던 난생처음 본 베이비벨이 뭔지 몰라 빨간색 왁스를 벗기지도 않고 베어 물었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냄새가 난다.


밤이 돼서야 베를린에 도착했다. 건너 건너 알게 된 유학생 언니가 공항에 픽업을 나왔고 누가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날은 비어있던 한 기숙사 방에서 혼자 그날 밤을 보냈다. 너무 배가 고팠다. 다행히 주머니에 비행기에서 부활절이라고 줬던 초콜릿이 있었다. 밖은 너무나도 조용하고 어두웠다.


베를린에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람은 그 오빠뿐이었다. 7개월 전 채팅으로 만났던. 그 당시 그는 제대를 앞둔 카투사였다. 독어독문학과 출신이고 하이델베르크에 교환학생을 다녀왔던 터라 독일에 대해 잘 알 것 같았고 채팅할 때 보니 클래식 음악도 좋아하는 것 같아서 만났던 것뿐이었다. 처음 만난 날 잠깐 얘기하고 시계를 봤더니 3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두 번째 만났던 날 9.11 테러가 나서 그는 서둘러 부대로 복귀했었다. 그렇게 2001년 9월 아무런 분홍색 감정 없이 몇 번 만나서 독일 얘기, 음악 얘기를 나눴고 10월이 되자 그는 미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으로 소포가 왔다. 깨알 같은 글씨로 a4용지를 가득 채운 몇 장의 손편지와 카네기 홀 연주회 팸플릿, 줄리어드 스쿨 학교 책자, 사진들이 저장되어 있는 플로피 디스크들. 편지 내용은 보았던 연주회 감상문에 가까웠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소포가 왔다. 시카고에서도 오고 보스턴에서도 오고... 그에게 정해진 주소가 없던 상태라 난 이메일로 답신했다. 그리고 12월이 되자 베를린에서 소포가 왔다. 역시나 빽빽하게 쓰인 연주회 감상문 같은 손편지와 베를린 음대 책자 그리고 음반들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편지에도 분홍생 감정은 없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캐릭터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냥 친절하고 매너 좋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크리스마스 때 잠깐 한국에 들어올 거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연말이라 가족들을 보러 오나보다라고 생각했다. 며칠 후 전화가 왔다. 서울인데 크리스마스이브에 만나자고. 그런 특별한 날 나를 만나자는 게 좀 의아했지만 그러자고 했다. 그동안 소포들 보내줬던 것이 고마워서 십자수 놓은 별모양 작은 쿠션을 선물로 준비해서 나갔다. 그는 나를 차에 태워 남산의 분위기 좋은 멕시코 식당으로 데려갔고 목도리 선물을 주었다. 그러더니 그다음 날도 만나자고 했다. 잠깐 한국에 온 것이라고 했는데 이틀 연속으로 날 보자고 하는 게 또 의아했지만 또 그러자고 했다. 그날은 명동 영화관에서 몬스터 주식회사를 보았다. 진중한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화 보는 내내 웃는 소리가 너무 이상해서 딴사람 같았다. 영화가 끝나고 차로 가자며 길을 건너 영락교회로 들어가는데 순간 크리스마스날 나에게 전도하려는 줄 알고 식겁했다. 그는 그저 차를 거기 세워놨던 것뿐이었다. 그리고 남산타워 공원에 갔다. 야경을 보고 있는데 내 등뒤로 뭔가 손이 분주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끝까지 분주하기만 했지 내 어깨에 손이 닿지는 않았다. 처음으로 아.. 혹시?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는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갔다.


2002년 새해가 밝고 난 유학 준비로 바빴다. 그도 연락이 조금 뜸해졌다. 그래도 내가 베를린에 3월 말에 갈 거라고는 알려주었다. 하지만 정확한 날짜도, 베를린 어디로 가는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왠지 그 사람에게 내가 시행착오 겪는 바보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학교도 합격하고 자리 잡으면 그때 연락해야지 굳게 마음먹고 출국날까지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 우중충한 알 수 없는 이의 기숙사 방에서 초콜릿을 까먹으며 창밖을 보는데 갑자기 서러움이 몰려왔다. 서울에서는 있을 수 없는 고요함과 어두움에 숨이 막혔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았다. 다시 집에 가고 싶었다. 엄마한테 전화하고 싶었지만 모르는 사람 집 전화기로 무작정 국제전화를 걸 수는 없었다. 그러다 그 사람 생각이 났다. 아.. 그 사람 지금 여기 베를린에 있지...

그 고시원 방만한 곳에서 하루 잠만 자는데 65유로나 내라고 했다. 난 65유로나 냈으니 시내전화 한 통 정도는 써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학교 합격하고 자리 잡을 때까지 연락 절대 안 하려고 했던 나의 결심은 독일에 도착한 지 몇 시간 만에 깨져버렸다. 수첩을 열어 전화번호를 찾고 전화기를 들어 번호를 눌렀다. 밤 10시 반이 넘은 시간이라 실례라는 걸 알았지만 난 전화를 걸어야만 했다.

그가 "할로?"하고 전화를 받았다. 난 잠시 망설이다가 내 이름을 얘기하고 방금 베를린에 도착했다고 했다. 그가 조금 놀랐는지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가더니 지금 만날까라고 물었다. 너무 피곤하고 밖에 나갈 엄두도 나지 않아서 그다음 날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숨도 못 잘 것 같았는데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지 바로 전화해도 된다는 그의 말에 숨이 트이며 긴장이 풀리고 순시 간에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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