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라이프 11화. 명함은 넣어둬
예전에 어느 책이었는지 방송이었는지, 장래희망이 명사가 아닌 동사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직업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꿈꿔야 한다는 의미였다. 문득 생각해보니 지금의 내가 그렇다.
한국에서는 누군가를 만나면 '기자'라는 명사 하나로 나를 정의했으나 이곳에서는 아니다. 나는 독일어를 공부하고, 그림을 그리며, 에세이를 쓰고 시를 짓는 사람이다. 늘 무언가를 느끼고 기록하고 창작한다.
자기 자신을 동사로 설명하는 일이 무척 쉬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스스로 정말 좋아하고 실제로도 행하고 있는지, 원하는 이상향일 뿐인지, 매일 하고는 있지만 행복과는 거리가 먼지 등 나 자신을 솔직하게 탐색해야 한다.
예컨대 나는 지난 5년간 기자였지만 스스로를 '시사에 밝고 발 빠르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책임감 하나로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했지만, 솔직히 나는 달팽이에 가까운 인간이기 때문이다. 등에 이고있던 껍질이 바스러진 탓일 수도 있겠다.
서른 넘어 무작정 독일로 떠나왔다고 해서 나를 '도전적이고 용기 있다'고 얘기할 수도 없다. 여전히 나는 크고작은 벽을 마주할 때 넘어서지 못하거나 눈앞의 쉬운 선택지에 안주하기도 한다. 나약함과 나태에 지는 순간 자신마저 속일 순 없다.
'요리하고 운동하는' 사람이라고 밝히기도 아직은 어렵다. 독일에 온 이후로 매일 요리를 하며 큰 행복감을 느끼는 건 사실이나, 이건 순전히 내 마음대로 만들어서 그렇다. 게다가 나 혼자 먹을 만큼만 하니까.
만약 정해진 레시피를 따라야 한다거나 다인분을 준비해야 한다면... 혹은 제대로 맛있게 잘 만들어야 한다면 글쎄다. 운동하는 내 모습도 이상향에 가깝다. 매일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빼먹는 날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포토그래퍼인가요?", "당신 아티스트죠?", "대학생이에요?" 아.. 아니요..! 하하... 퇴사하고 왔으니 초반에는 이곳에서 딱 맞아떨어지는 직함으로 스스로를 소개할 수 없어 괜스레 머쓱해지곤 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나는 느끼고 기록하고 창작하는 사람이에요. 온몸으로, 온마음으로 오롯이 받아낸 것들. 그것들을 양분 삼아 소우주를 만들 때 가장 나다워진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인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나를 삶에서 해방시켜 주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