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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 일년만에 갑자기.

독일라이프 25화. 알레르기 돌치레

by 모모


오랜만에 글을 쓴다. 얼마만에 책상 앞에 앉아 메모장을 여는지. 독일에 온 이후 그래도 나름 브런치를 꾸준히 써왔는데, 한달이 넘는 긴 공백기를 갖게 되고 말았다. 4월은 나의 베를린라이프 중 가장 즐거웠다. 동시에 가장 고통스러웠다. 5월을 맞이하고도 열흘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유효한 이야기다. 천국과 지옥, 둘 중 오늘은 『지옥편』을 기록하려고 한다.


생전 '알레르기'라고는 겪어본 적 없던 내가 극심한 알레르기에 시달렸다. 평생 음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고, 피부과도 한번 가본 적 없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이게 얼마나 큰 복이고 행운이었는지 아프기 전에는 몰랐다. 더욱 겸손하게,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세상의 것들을 헤아리고 살라는 뜻에서 이런 일이 찾아왔나 싶다.


겨울 언젠가부터 목덜미에 두개의 자국이 생겼다. 없어지겠거니- 하고 지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졌다. 봄이 온 이후였나, 색이 점차 진해지더니 급기야 간지럽기 시작했다. 그 부위만 피부결도 거칠고 이상해졌다. 동시에 구순구각염이 발생해 입술과 입가가 찢어졌다. 한국에서도 환절기만 되면 꽤 고생했어서 놀라진 않았지만, 이번엔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생살이 쫙쫙 찢기는 고통. 양치와 식사를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입술염증이 슬슬 호전되려고 하니 이번엔 또 갑자기 몸이 미친듯이 간지럽기 시작했다. 침구를 깨끗하게 관리하고 보습제를 열심히 발라도 소용없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간지러워 벅벅 긁은 탓에 온몸에 흉측한 피딱지와 상처가 생겼다. 그러더니 이제는 얼굴... 얼굴 피부 전체가 거북 등껍질처럼 딱딱하게 굳더니 소보로빵처럼 오돌토돌 거칠게 변했다. 두 눈은 땡땡-하게 부어서 뜨기조차 힘들었는데,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부기가 빠지질 않았다. 눈가 역시 바위처럼 굳었다.


얼굴은 붉다 못해 시뻘건 색이었고 열감으로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0.001초마다 바늘이나 송곳, 압정으로 얼굴 전체를 타탓타타탁타타탁 찌르는 통증. 매순간 너무 아프고 따가워서, 거울을 보면 차마 마주하기 괴로울 정도로 징그러운 존재가 있어서, 오늘은 좀 나았을까 기대했는데 더 악화된 피부를 만지면서, "죽고싶다"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차라리 누가 나 좀 당장 죽여줬으면 싶었다. 깨어있는 것 자체가 지옥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훨씬 좋아졌다.(라고 말하기가 무섭게 이젠 또 다른 증상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지만... 어쨌든) 4월부터 약국과 병원에 거금을 쏟아부었는데 그 때문인지,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낫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내 생각에는 먹는 약, 바르는 약, 넣는 약, 주사, 시간, 운이 모두 합쳐져 이제야 비로소 효과가 있는듯하다. 아직 완전히 괜찮아지진 않았지만 감사한 마음이다. 인생의 덧없음을 깨달았을지언정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배웠으니.


이달 말이면 베를린에 산지 딱 일년이 된다. 여태까지 아픈 곳 하나 없다가 곧 돌잔치 기념으로 제대로 병치레하네. 이래서 부모가 아기의 돌잔치를 해주는구나 싶다. 태어나 일년 동안 무사히 잘 살아냈으니. 참고로 의사 선생님 소견으로는 햇빛 알레르기와 꽃가루 알레르기로 의심된다. 그럼에도 나는 햇살을 사랑하고 이따금 피크닉을 즐길테지. 물론 이전과 다르게 두려운 마음도 들고 몹시 조심하겠지만, 사랑하고 즐기는 일을 멈추지 않을 거다.



KakaoTalk_20250508_025417640.jpg 베를린 살면서 처음으로 방문한 병원. 진료 대기하며 찰칵.
KakaoTalk_20250508_025417640_01.jpg 병원 분위기가 편안하고 예뻐서 자주 오고 싶었다. 그럼 절대 안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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