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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8 국민학교때 짝사랑 했던 녀석

진달래시에 얽힌 슬픈 이야기시에 얽힌 슬픈 이야기

by 다올


국민학교 6학년 때 좋아하던 남자아이가 있다. 녀석은 인기가 많았다. 우리 반 여자 중에 그 녀석을 좋아하는 얘들이 최소 열 명 이상 되었다. 조금 까무잡잡하고 똘똘하게 생긴 그 녀석은 얼굴에 보조개도 하나 있었다. 공부도 잘했다. 녀석을 좋아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혼자 짝사랑을 했다. 그 녀석은 지금 다른 반이었던 동창과 결혼 해서 아들 둘을 낳고 살고 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는 서로 다른 학교로 배정을 받았다. 나는 공학 학교로 그 녀석은 남자 중학교로 갔다. 등하교 때 가끔 녀석의 얼굴을 볼 수 있으면 하고 바랐지만 웬일인지 그런 일을 일어나지 않았다. 다. 사십 년도 더 되니 일이라 어렴풋이라도 어떤 내용을 썼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너를 좋아했다고 썼는지 그냥 이런저런 말하며 안부만 물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그즈음 이선희의 “J에게”라는 노래가 인기였다. 녀석의 이름 이니셜은 “HJH"이다. “J에게“는 마치 녀석에게 내 마음을 고백하는 노래 같았다. 늘 그 노랫가락을 흥얼거렸다. 그 뒤에 발표된 ‘알고 싶어요’는 더 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가사였다. 이선희의 두 곡은 나의 애창곡이 되었다.


달 밝은 밤에 그대는 누구를 생각하세요.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 꾸시나요.

깊은 밤에 홀로 깨어 눈물 흘린 적 없나요?

때로는 일기장에 내 얘기도 쓰시나요.

나를 만나 행복했나요. 나의 사랑을 믿나요.

그대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게 궁금해요.

하루 중에서 내 생각 얼마큼 많이 하나요

내가 정말 그대의 마음에 드시나요.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귀여운가요.

바쁠 때 전화해도 내 목소리 반갑나요.

내가 많이 어여쁜가요 진정 날 사랑하나요.

난 정말 알고 싶어요. 얘기를 해 주세요


그러다 우연히 그 녀석의 집 주소를 알게 되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편지 한 통을 썼다. 뜻밖에 그에게서 답장을 받았다. 당시로는 큰 용기를 내서 썼는데 답장까지 받으니 내 가슴이 얼마나 콩닥콩닥했는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설렌다. 설렘도 잠시, 나는 답장을 읽고 절망했다.

이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올라가니 서로 공부 열심히 하자 뭐 이런 내용의 답장이었다. 그리고 녀석은 답장에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란 시를 적어 보냈다.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서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시의 의미가 무엇이든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내 눈에는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보내드리오리다.’ 와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라는 글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역겹다는 건가? 나를 밟고 가겠다는 건가?

며칠 내내 그 문장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싫다는 것을 이렇게 시로 대신 표현한 걸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사실 소월의 진달래꽃은 이별 시라기 보다는 죽어도 님을 보내지 못하겠다는 뜻의 사랑 시가. 당시에 어렸던 나는 그냥 단어 그대로의 의미만 받아들였다. 물론 녀석이 나와 헤어지기 싫다는 의미로 그시를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정식으로 사귄 적도 없는 사이였으니까. 나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더 이상 이선희의 노래를 부르며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그 뒤로 무슨 이유인지 녀석과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지금은 없어진 충무로의 대한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 제목은 ’용서 받지 못한 자‘(1992년)였다. 서부영화였다. 주인공 남자가 과거를 청산하고 살다가 다시 총을 잡고 사람을 죽이는 내용이었다. 사실 영화 내용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함께 나란히 앉아서 영화를 본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떨렸다. 그렇게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헤어졌다. 그 후로 오랫동안 또 그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이십 년도 훨씬 지나서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그의 얼굴을 보았다. 어릴 적 모습 그대로였다. 세월을 비켜 가지 못한 녀석의 머리숱은 가벼워 보였다. 십 대 이십 대 시절보다 배도 조금 나오고 모 은행 부장이라는 직함에 딱 어울리는 그런 모습이었다. 동창과 결혼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동창회에서 딱 한 번 얼굴을 봤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왠지 동창회 날의 나는 사십 대 중년의 여자가 아닌 열세 살 소녀의 마음이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녀석의 보조개라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두 아이의 아빠로 한 여자의 남편으로 성실하게 잘 살고 있겠지. 친구야, 언젠가 또 시 얼굴 불 날 있겠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렴. 나도 잘 지내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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