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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9 아직은 겨울이고 싶은가? 입춘에 눈이 펑펑

눈 내린 겨울의 추억

by 다올

24 절기 중 첫 절기인 입춘이다.

겨울은 아직 봄에게 자리를 내주기 싫은 걸까? 햇살이 쨍한데도 흰 눈이 흩날린다.


오후가 되자 하늘도 회색빛으로 변하고 오리털같이 큰 눈이 펑펑 내린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시야가 아득해진다. 바람 는 공간으로 눈이 내린다ㆍ 가벼이 떨어지는 눈은 나뭇가지에 상록수 잎에 조용히 쌓인다. 차곡차곡 쌓인다. 가지마다 하얀 꽃이 피어난다.


공터에 소복소복 쌓이는 눈을 보니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러브스토리 영화가 생각났다. 모두가 기억하는 그 장면. 소복이 쌓인 하얀 눈 위로 그대로 눕는 장면.



그 장면을 두어 번 흉내 낸 적이 있다. 국민학교 6학년 겨울방학 때 눈이 엄청 내렸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폭설이다. 그때는 오류동에 살던 때다. 사택아파트 뒷산에서 여자 주인공처럼 눈 위에 누운 적이 있다. 풀썩 떨어지며 날아 오른 눈이 얼굴 위를 덮었다.

'앗, 차가!'


두 번째는 고등학생 때였다. 내곡동에 살았는데 집 옆에 고추밭에 눈이 엄청 쌓였었다. 그땐 혼자 눕지 않았다. 국민학교ㆍ중학교를 같이 다니고 한 동네서 같이 살았던 친구도 함께 눈 위에 누웠다.

발자국 하나 없이 소복이 쌓인 눈 위에서 우리 둘은 팔을 위아래로 허우적허우적거렸다. 그때 동네 친구들이 여럿 왔는데 왜 나랑 그 녀석이랑 둘만 눈 위에 누웠는지는 모르겠다. 추워서 그랬나?


녀석은 그날을 기억할까?


눈이 내리면 마냥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눈싸움ㆍ눈사람 만들기ㆍ눈썰매 타기 등 그때는 쌓인 눈 하나만으로도 놀거리가 많았다. 행복했다. 털장갑에 눈이 묻어 장갑이 젖어도 좋았다. 운동화에 눈이 들어가 양말이 축축해져도 좋았다.

다시는 못 올 그 시절.


이젠 눈이 오면 운전걱정부터 앞선다. 나도 어쩔 수 없이 평범한 어른이 된 것이다. 겨울놀이보다 낭만보다 현실적인 문제가 먼저 걱정되는 어른.


오후 내내 내린 눈 때문에 섬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섬에 들어가려면 바다 위에 놓인 7Km 이상 되는 천사대교를 건너야 하는데 혹여 다리 위가 얼었을까 싶어 목포에 숙소를 잡았다. 재작년 성탄절에도 목포 나왔다가 못 들어간 적이 있다.

안전을 제일로 생각하는 나이가 되었다. 모텔 창문 너머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지나간다. 눈길에 사고라도 난 걸까. 내일 친구 가게에서 일을 도와주기로 해서 일찍 들어가야 하는데 길이 미끄럽지 않기를 바라며 잠을 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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