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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올 Jan 11. 2024

황석영 <낯익은 풍경> 이어 쓰기

명문장 샤워하기로 상상력 발휘하기 ㅡ글쓰기 연습

 저는 글쓰기 연습으로 명문장 샤워하기를 합니다.

기존의 작가의 책에서 한 문단을 가져다 저의 상상력으로 글을 이어 써봅니다.

이 작업을 할 땐 제가 마치 소설가가 된 기분이 들고 재미있습니다.

원작가에게 죄송하지만 저 나름대로 이야기를 꾸며봅니다.

오늘은 황석영 작가의 익숙한 풍경의 한 문단을 가져다 이어 써봤습니다.



  강 건너 들판 끝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눈을 돌렸다가 다시 바라보면 놀라울 정도로 둥글고 커다란 해가 어느 틈에 아래로 툭 떨어져 있었다. 트럭은 도시 외곽을 지나 강변도로를 달리고 있었는데, 다리가 보이는 곳에서부터 멎었다가 다시 나아가기를 되풀이하더니 앞에서부터 밀리기 시작했다.



-이어 써봅니다-


  평화방송 라디오를 켰다. 기다렸단 듯이 라디오에서 삼종기도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6시다. 서울의 퇴근 시간은 늘 그랬다. 10분 정도의 차이로도 밀리지 않고 갈 수도, 대책 없이 길 위에 정차되기도 했다. 오늘은 평상시보다 30분 정도 늦게 퇴근했다. 주차장이 되어버린 강변도로 위에서 잠시 운전대에서 손을 떼고 성호경을 긋는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

성령으로 잉태하셨나이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 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주님의 종이 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


  느긋하게 삼종기도를 따라 해 본다. 너무 앞서나가지도 그렇다고 늦지도 않은 목소리로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기도 소리에 맞춰서 나직하게 기도를 한다. 천주교 신자들은 하루 중에서 해야 할 기도들이 여러 가지가 있다. 어린 시절에는 잠자기 전 꼭 기도를 했다. 무릎을 꿇고 눈을 꼭 감고 기도를 했다. 이젠 기억나지도 않는 기도들.

그래서일까? 이렇게 뜻하지 않게 기도 시간을 맞닥뜨리면 기꺼이 했다. 감사하는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소위 나일론 신자가 된 후론 운전 중에 하는 기도가 기도 시간의 전부이다.


기도합시다.

하느님, 천사의 아룀으로

성자께서 사람이 되심을 알았으니

선자의 수난과 십자가로

부활이 영광에 이르는 은총은

저희에게 내려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짧은 삼종기도는 금방 끝났다. 길지 않은 가을 해는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다. 대신

나 여기로 갔다.”

하고 알려주기라도 하듯 노을이 붉다. 아니 '붉다' 라는 한 단어로 표현한다는 것이 미안했다.

붉기도 분홍빛이기도 사이사이 하얀 구름도 그리고 미련 남은 푸른 하늘이 보랏빛으로 보이기도 했다.     

오늘 사무실에서 저 노을 같은 얼굴들들 봤다. 붉으락 푸르락 다 다른 얼굴색을 하고 있었다.

영업팀장을 맡은 K의 실수로 사무실이 한바탕 난리였다. 공장에 발주를 잘 못 넣어서 회사에 큰 손해가 가게 되었다. 영업 부장이 한바탕 사무실에서 소리를 질렀다. 부장의 얼굴과 사무실 직원들의 얼굴빛이 저녁노을빛 같았다.

'! 가을 하늘 저녁노을이 사무실 사람들 얼굴 같다고 생각하다니, 나도 이젠 감성이라고는 다 사라진 도시 사람이 되었군.'



  지방의 소도시에서 서울에 온 지 2년이 되간다. 집에서 해주는 밥 먹고 있을 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힘들다. 모든 것을 내가 다 알아서 해야 했다. 특히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자꾸 오르기만 하는 서울의 집값이다.

보증금 때문에 대출한 것과 월세로 나가는 돈이 딱 140만 원이다. 퇴근 후 돌아가는 집은 집이라기보단 그냥 방이라고 해야 맞다. 올해 이사 한 7평짜리 원룸은 작은 싱크대와 빌트인으로 있는 세탁기 그리고 냉장고, 침대가 제일 큰 살림들이다.

 전에 살던 곳보다 좁아서 물건들을 많이 정리해야 했다. 그때 내가 얼마나 필요 없는 물건들을 많이 가지고 살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다시는 필요 없는 물건들을 사지 않겠노라고.


  서울 와서 처음 얻은 집은 반지하 방이었다. 보증금이 싸고 방 크기에 비해 월세 부담도 적었다.

좁지만 부엌과 방 사이에 문이 있어 분리가 되었다. 방은 제법 넓어서 1/3 가량쯤은 책상과 작은 옷장을

벽 삼아 자는 곳과 옷장을 분리할 수 있었다.


  지난여름 서울에 비가 엄청 내렸을 때 근처의 반지하 원룸들이 수해를 입었다.

그날도 퇴근이 늦었는데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걱정을 많이 했었다. 이미 옆 원룸 건물은 물을 퍼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 문을 열었다. 스위치를 켜고 방문을 열었는데 다행히 빗물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얼마나 감사하던지. 다음날 출근길에 원룸촌 골목엔 젖은 살림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축 늘어진 침대 매트, 불어 터진 값싼 MDF가 구들, 젖은 베개, 책 등 종류도 다양했다.

골목길에 던져진 물건들 위로 얼굴도 모르는 이웃들의 얼굴이 겹쳤다.

아무 일 없는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들 지경이었다.


   주인이 한 건물에 살았다. 60 중반의 그녀는 참견을 많이 했다. 나한테만 그러는 것인지 다른 입주자들에게도 그러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그녀가 현관의 CCTV를 늘 보고 있는 것이다. 내기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인 의심이다. 집주인이 얼토당토않은 말을 하지만 않았다면 1년을 다 채우고 나왔을 것이다.

집주인은 언제인가부터 수시로 벨을 눌렀다. 그러고는 이런저런 트집을 잡았다.

"총각, 총각 집에 친구들이 너무 자주 드나드는 것 같은데. 관리비를 더 내야겠어."

이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최근에 근처 옆 동네로 이사 온 대학 동기가 세 번 다녀갔다. 그렇다고 관리비를 더 내라고? 친구다 다녀간 걸 안다는 건 그녀가 cctv를 보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 인다. 이건 엄연한 사생활 침해 아닌가?

녀석이 자고 간 것도 아니고 저녁 퇴근 후에 잠시 와서 이야기 좀 하고 간 게 전부이다. 그 녀석이 원룸에서 씻고 간 것도 아니고 잠을 자고 간 것도 아닌데 관리비를 5만 원을 더 내라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같이 사는 고양이한테도 관리비를 청구했다. 고양이를 키우는지 몰랐는데 고양이를 키우고 있으니 매달 3만 원씩 더 내라고 한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이후로 집주인은 툭하면 현관문을 두들겨댔다.


  결국 나는 이사를 결정했다. 이사 나올 때도 도배비로 50만 원을 보증금에서 뺐다. 1년도 안 살고 집에선 잠밖에 안 잤다. 밥도 거의 밖에서 먹었다. 그런데도 도배비를 달라고 한다. 처음엔 도배비를 150만 원을 주라고 했다. 방 한 칸 도배하는데 150만 원이라니, 그러나 그건 약과에 불과했다.

1년을 못 채웠다고 월세 5달 치를 또 제했다. 공실로 놔두고 온 것도 아니고 새 입주자에게 연결까지 해주었는데도 막무가내였다. 방을 내놓았을 때도 퇴근 전인데 회사로 전화해서 방 보러 왔으니 빨리 오라고 수시로 전화를 해댔다. 머리가 아팠다. 짜증이 났다. 돈이 아까웠다. 하지만 여기서 계속 살다가는 정신병자가 될 것 같았다.


  그렇게  350만 원을 빼앗기고 나왔다. 반지하에서 탈출한 나는 지금 13층에 산다. 제일 꼭대기 층이다.

이버엔 주인집이 바로 옆이다. 황금빛 대문을 한 주인집. 지금까지는 별일 없이 살고 있다.

13층짜리 오피스텔의 주인이 부럽다. 룸이 60여 개는 되는데 다달이 나오는 월세가 얼마인가? 한 달에 주거비로 들어가는 돈이 월급의 절반 가까이 된다. 작은 원룸 하나도 몇 역씩 한다.

아, 나는 이 서울이란 곳에서 내 집이란 걸 갖게 될까? 갑자기 목이 탄다. 돈이 아깝다는 내면적 이유를  건강에 해롭다는 외면적 명목으로 포장해 술도 안마신다. 목이탄다. 오늘따라 맥주가 당긴다. 원룸 창너머로 노래방 불빛이 춤을 춘다.




오늘은 이렇게 이어서 조금은 길게 써보았습니다.

원룸 이야기는 서울에서 살고 있는 딸의 이야기를 주인공이 남자(트럭을 몰고 퇴근하는 중이라는 본문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라 총각으로 바꿔서 써보았습니다.


딸아이가 그러더군요.

"엄마, 서울에 사는 애들 소원이 뭔지 알아?"

"뭔데?"

"서울에서 안 쫓겨나는 거야."

딸아이의 말을 들으니 씁쓸하고 안쓰러웠습니다.


한 달에 월세와 대출금으로 140만 원이 꼬박꼬박 나가는데 아직도 서울 시민으로

버티고 있는 딸이 짠하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하더군요.

능력이 안 되는 부모라 겨우 암막 커튼 하나 주문해 주었습니다.

보일러도 안 틀고 사는 딸은 겨울에 가스비가 만 오천 원 나왔다고 합니다.

가스비 보내줄 테니 춥지 않게 지내라며 5만 원을 보냈더니

"엄마 보일러 트니까 따뜻하고 좋아."라며 고맙다고 카톡을 보내왔네요.

하루 내 일하고 들어와 침대 온수 매트 하나로 썰렁하게 밤을 보냈을 딸에게 미안했어요.


지난 달부턴 방세 내고 적금 붓고 하면 돈이 없다며 주말에 알바를 시작했습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딸이 안쓰러워 쉬지도 못하고 일해서 힘들어서 어떡하냐고 했더니 주말 아르바이트(테이크아웃 카페)가 너무 재미있다고 하네요.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쉬는 날 없이 짜증도 나고 화도 날 만한데 씩씩하게 견뎌주는 딸이 기특합니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 딸에게 올해는 좋은 일이 아주 많이 생기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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