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한 문장
100-57배선숙
원 문장
흔히들 말한다.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건 작은 사랑인지도 모른다.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큰 사랑이 아닐까.
언어의 온도-이기주
나의 문장
오랫동안 날마다 힘들었다. 늘 새벽에 취해서 들어오는 아이들 아빠.
나에게 물리적인 폭력은 없었다. 욕을 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날마다 싸웠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죽을 결심을 헀다. 9층 베란다 난간을 넘어갔다. 죽음을 택했지만 베란다 난간을 넘어갔을 땐 무서웠다. 나는 이렇게 죽으면 끝이지만 남겨진 세 아이는 어떻게 살아갈까 결국 나는 다시 베란다를 넘었고 죽지 못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갈등은 계속되었다. 결국 이혼을 했다. 그때 좀 더 이기적으로 생각하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조금 더 냉정하고 모질었어야 했는데 십 년을 넘게 살고도 나는 돈 한 푼 받지 않고 집을 떠났다. 이혼만 해준다면 그깟 위자료쯤이야 안 받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시아버지가 사주신 내 명의로 된 아파트를 담보로 한 애들 아빠의 대출금도 내가 갚겠다고 했다. 왜 그랬냐고? 단순했다. 내 이름으로 된 대출이었으니까. 돈 한 푼 없이 1억이 넘는 대출금을 갚겠다고 하고 나는 자유가 되었다. 오랫동안 그 돈을 갚느라 고생했다. 그때만 해도 투잡 하는 사람은 있어도 쓰리잡을 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나는 쓰리잡을 하며 하루하루 벌어 빚을 갚아나갔다.
이혼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이었다. 매일 울다시피 했다. 보고 싶고 미안했다.
깨끗한 이부자리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아이들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차라리 내가 그때 모든 빚을 애들 아빠에게 넘기고 집에 남아 아이들을 키웠다면 아이들은 조금 덜 힘들어도 됐을까 하는 후회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십 년 전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만남을 갖기로 하고 한당도 채 안 되어 큰 사고가 났고 결국 남편은 한쪽 시력을 잃었다. '장애를 가진 남편'은 나의 숙명인가 보다. 애들 아빠는 뇌성마비 장애자였고 지금 남편은 시각장애자이다.
둘 다 상처가 있는 사람이었다. 이혼은 전적으로 한쪽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율의 차이가 있을 뿐 서로에게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남편과 나에게 이혼 이유가 된 것 중 가장 큰 것이 '술'이었다. 애들 아빠도 남편의 전처도 '술'이 과한 사람들이었다. 끊는 것까진 바라지 않아도 자중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함께 살게 되면서 한 약속아 하나 있다.
상대방이 싫다는 것은 되도록 하지 않기
였다. 남편이 내건 조건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나도 그렇게 술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그 조건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싸우거나 부딪힐 일이 줄어든다. 대체로 싸움은 상대가 하지 말라는 것, 싫어하는 것을 할 때 일어난다.
애들 아빠랑 살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고통과 하기 싫은 것을 하는 고통 중 어느 것이 더 힘들까?
나의 결론은 하기 싫은 것을 하는 것을 하는 것이 더 힘들다였다.
이것은 자기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좋아하는 것을 해주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사랑이다. 종종 너무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무조건 하기보다는 남편은 이일을 하는 것을 좋아할까? 하고 한 번 더 생각한다. 그래도 꼭 하고 싶다면 대화를 하고 설득을 해본다. 그런데도 끝까지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하면 대부분은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주 싸울 일이 생기지 않는다.
가끔은 남편의 반대에 부딪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될 때
'이것에 내가 원하는 삶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한 번의 상처를 입은 사람 둘이 모여 사는 것이기에 우린 서로 조심하려 한다. 남편도 물론 되도록이면 내가 싫다는 것은 하지 않으려 한다.
부부, 연인 관계뿐 아니라 부모 자식 간에 또 친구 간에도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면 우리의 모든 관계는 지금보다 좀 더 반짝거리게 되지 않을까? 때로는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상대에게 정확하게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면 좋겠지만 그걸 바라지 말고 상대에게 정확하게 말을 하자. 내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상대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자. 그래서 되도록 자신도 상대가 싫다는 것을 하지 말자. 모든 인간관계는 늘 노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더더욱 말이다.
가끔 의견이 안맞아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지만 그런대로 우리부부는 잘지내고 있다. 서로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