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아 불편했다. 물은 비어있는 아랫집 뒤꼍의 우물에 수중모터를 넣어서 사용했다. 섬이라 그런지 우물물도 약간의 소금기가 있었다. 설거지해 놓은 칼이나 식기들에 녹이 슬었다. 빨래도 깨끗하게 되지 않았다.
그나마 물을 좀 많이 쓴 날은 우물 바닥이 드러나 더 이상 물을 쓸 수도 없었다. 수도 견적이 300만 원 정도 나왔는데 설치할 형편이 되지 않았다. 전기도 이사 온 후 두 달 정도 후에 설치를 해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최적화된 사람인 걸까? 섬에 이사 왔다고 친구들한테 연락했을 때 웬 섬인고 했던 친구들의 반응이 바뀌는 데는 1분도 안 걸렸다.
"너니까 가능하지."
“너니까 가능하지.”
한겨울 눈 덮인 한라산 등반 후 백록담에서_나는 늘 씩씩한 사람으로 기억되었다.
전설의 고향에도 나오지 않을 법한 집에서의 생활은 이렇게 하루하루 지나갔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 지붕부터 고쳐야 했다. 용마루가 날아가 안 그러면 장마통에 빗물이 뚝뚝 떨어지게 생겼다.
집값보다 지붕을 얹는 돈이 더 들었다. 무엇을 하든 육지보다 비쌌다. 모든 물자를 육지에서 배를 타고 가져와야 했기에 30% 정도 비쌌다. 당장 돈이 없었다. 결국 어머니께 신세를 졌다.
양철지붕을 씌우자 집이 훤해 보였다. 그해 여름 제일 뜨겁던 이틀 동안 달아오른 양철 위에서 공사를 한 인부들도, 수발을 한 어머니도 애를 먹었다. 나는 돈을 벌러 일을 나갔기 때문에 고생은 어머니께서 혼자 짊어지셔야 했다.
물색 모르는 딸 부부가 다 쓰러져가는 집을 산 덕에 어머니는 말년에 호사 아닌 호사를 누렸다.
집수리 중인 어머니의 뒷모습. 지금도 마무리를 다해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하신다.
여름이라도 비가 많이 온 날은 습해서 불을 넣어야 했다. 공사장에서 얻어온 나무와 근처에서 가져온 나무로 아궁이에 불을 땠다.가끔은 아궁이 숯에 고구마도 구워 먹었다.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불멍도 했다.
군고구마를 까먹느라 손과 얼굴이 숯검댕이가 되었다. 마치 어린 시절 외할머니 댁에 놀러 온 기분이었다.
솥을 걸어 불을 지폈던 아궁이 모습, 물을 데워서 요긴하게 사용했다.
활활 불이 타오르면 방바닥이 뜨끈해졌다. 뜨끈한 뜨끈한 방바닥에 허리를 지지면 찌부덩하던 하루의 고단함이 날아가는 듯했다. 그런데 불을 때는 것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방바닥과 벽이 만나는 곳에 틈이 있어서 연기가 새었다. 다행히연탄가스가 아니라 목숨이 위태롭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궁이에 불을 지핀 날이면 새어나 온 연기로 옷마다 연기 냄새가 배었다.
시골 출신이라면 잘 아는 바로 그 냄새. (난 서울출신이다. ㅋㅋ그러나 너무 잘 알고 있는 그 냄새)
연기
머리카락에서도 불냄새가 진동을 했다. 음식에서 나야 할불맛의 냄새.
불냄새가시골 마을에서는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도시에라도 나가려면 그 옷에 베인 냄새가 몹시 신경 쓰였다. 사실 이곳 섬마을에도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집은 없었다. 우리 집이 유일했다. 전기도 수도도 없이 나무를 때는 나에게 오죽하면 친구들이“나는자연인이다”에 출연 신청을 해보라고 했을까.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나의 섬생활은 이렇게 하루하루 야생의 삶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배드민턴
비가 오는 날 못지않게 불볕더위도 견뎌 내기 힘이 들 정도였다. 땀으로 범벅되기 쉬웠지만 물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때문에 밤에 일부러라도 학교 체육관에 가서 배드민턴을 쳤다. 운동도 할 수 있었고 마치고 나면 샤워를 하고 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운동을 못 가는 날에도 저녁엔 씻어야 했다.
안 그러면 끈적거림도 문제였지만모기대환장 파티가 열릴 테니 말이다.
모기환장 대파티
라켓과 셔틀콕
집에서 샤워를 하는 날이면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되었다.
양동이에서 바가지로 물을 부으며 상상한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인데 잠시 지구에 목욕하러 온 것이라고 말이다. 시골 마을의 밤은 일찍 찾아온다.
9시가 지나면 동네 불은 거의 꺼진다. 베니어합판 하나를 벽에 기대어 놓고 샤워를 했다. 반쯤 가려진 합판 뒤의 내 모습은 보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보이는 상황이다.
인공조명이 거의 없는 시골의 칠흑 같은 밤하늘엔 무수한 별들이 빛났다. 잠시 고개를 들어 쏟아지는 별들을 본다.
‘나는 어느 별에서 두레박을 타고 왔을까?’
‘세상에서 나처럼 큰 목욕탕을 가진 사람은 없을 거야.’
검은색보다 더 검은 나의 목욕탕 천정에 올망졸망 여름 별들이 반짝거린다. 작은 별빛 사이로 견우성과 직녀성이 서로 대화라도 하듯 시간 차를 두고 빛을 내고 있다. 곧 오작교에서 만나자고 이야기라도 하는 걸까?
별이 쏟아지는 여름 밤하늘
“앗, 따거!”
나의 낭만은 여기까지다.
생전 보지도 못한 하얀 모기, 줄무늬 모기가 내 피를 빨아먹겠다고 대롱을 꽂는다. 순간 나는 정신이 번쩍 든다. 아니 화가 난다. 너무 따갑고 가렵다.
50 평생에 모기 때문에 화가 나 보기는 이곳에 와서 처음이었다.
서둘러 비누칠을 하고 물을 붓는다. 비누칠을 하면 모기가 덜 문다. 아마 비누 냄새 때문인 듯하다.
어두운 시골 마을. 고요한 밤에 바가지로 퍼붓는 물소리가 폭포 소리처럼 들린다.
물바가지 소리 사이사이로 저녁 식사를 망쳐 화가 난 듯 짜증스럽게 모기가 앵앵 거린다.
밤하늘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별빛이 내려앉는다.
물기를 닦고 옷을 입는 순간 나는 다시 선녀에서 시골 섬아줌마가 되어 버린다.
사진 속 집을 반 허물고 지붕을 해체해서 앞쪽에 합판을 세우고 샤워를 했다. 뚫린 지붕 덕에 별이 쏟아지는 천정을 가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