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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 Jul 08. 2019

호흡으로 돌아오면 다 괜찮았다

여행지에서의 명상

타이중의 호수를 보고 돌아가는 시외버스에서 왈이의 아침식땅 명상을 켰다.


수많은 말소리와 냄새, 외부의 자극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자극이 내 안에 들어와서 만들어낸 수많은 마음 때문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와서 다니면서 다양한 마음으로 가득 찼다. 가장 하고싶은 일이 무엇인지 살피고, 여러가지 선택을 비교하고, 기대하기도, 실망하기도 하고.. 하고 싶은 것, 마음의 '의도'에 집중했다.

많은 마음들이 그저 내 안에 존재했다. 결국 호흡만이 실제였다. 마음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하지만, 그 모든 마음에 굳이 반응할 필요는 없었다. 매일 말하던 자극과 반응 사이의 공간을 이제 생생하게 확보한 것 같았다.


영은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음에 와서 콕콕 닿았다.

'밖으로 향하는 시선을 돌려서 안으로'. 밖으로 가는 시선을 거두어 돌리니, 너무도 간단하게 내 안을 볼 수 있었다. 내면을 바라보기가 힘든 이유는 외면을 향하고 있는 시선을 거두지 않고, 거기에 추가해서 내면을 바라보려고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 좀 할만 한데, 하며 방심하던 순간, '방심하지 말고'라는 말이 나를 다잡았다.


마음으로 향한 시선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영은님의 가이드가 끝나자, 이런저런 마음과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마치 자유명상이 시작되길 기다렸다는 듯이. 대부분은 현재가 아니거나, 지나친 걱정들.

귀가 아파서 잠시 이어폰을 뺐다. 그 잠깐 사이에 뒤에 앉은 승객들의 대화 중 한 단어가 귀에 꽂혔다. 하필 왜 영어 화자들이 내 뒤에 앉은걸까?(모르는 언어를 쓰는 사람도 많았는데), 왜 그 단어를 말했을까?(내가 못알아듣는 단어도 많은데), 하고 탓하는 마음이 나타났다. 이런 마음이 존재한다는게 스스로도 진짜 어이가 없었다.

인터넷이 잘 연결되어 있는지, 혹시 내릴 곳을 지난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잠깐 눈을 떴다. 그 잠깐 사이에 버스의 밝은 불빛이 계속 시선을 분산시켰다. 명상하는 사이 오후에서 저녁으로, 산골에서 도시로 변해버린 바깥 풍경이 주의를 어지럽혔다.

하지만 그냥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면 괜찮았다. 다 지나갔다. 돌아가야 한다는 의도를 만들어서 주의를 이끌려 하지 않아도 돌아갈 수 있었다. 내 선택으로 충분히 돌아갈 수 있다.


호흡명상을 하면 원하는 호흡을 만들어내고픈 마음의 의도에 순식간에 이끌려 가버렸다. 하지만 오늘은 자연스러운 나의 호흡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삼십 분, 이렇게 긴 명상을 완주한 것도 처음이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을 경험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더해서, 내가 이 '공간'에 존재하는 것도, 살아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애쓰지 않아도, 노력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무엇보다 에어컨 바람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계속 똑같이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바람인줄만 알았는데, 바람의 흐름과 세기가 매 순간 바뀌고 있었다. 내 감각과 호흡도 매 순간 바뀌었다.


명상과 글쓰기를 마치고 시내에 도착해서 내릴 즈음,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왈이의아침식땅 을 검색하시면, 보다 건강한 마음으로 나다울 수 있도록 돕는 여러 콘텐츠를 들을 수 있습니다.  제가 들은 이 명상 가이드는 오프라인 공간인 왈이의 마음단련장에서 운영하는 "프리명상"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콘텐츠입니다. 오디오클립과 오프라인 프로그램 모두 꼭 경험해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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