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졸업
자랑일수도 있으나, 도리어 자격지심이 되었던 나의 지난 허물을 벗어서 쌓아두기 위한 글
입학, 경영학과로의 전과, 그리고 졸업, 했다 드디어. 성적우수상과 함께.
1. 신입생 때 동아리에서 멘토였던 언니는 재능이 있으면서 공부에 대한 열정도 넘치고 노력도 열심히 하는 그야말로 엄친딸이었다. 그 언니는 당당하게 총장 명의의 상을 받고 나보다 먼저 졸업했다. 영어로 수업을 듣고, 끊임없이 생각해서 토론하고 에세이를 써야하는 미국 정글같은 곳에서 살아남은 그 언니가 정말 멋졌다. 내가 본 그 언니는 정말 열심히 고민하고 노력했고, 과정과 결과가 모두 월등히 멋지다고 인정받은 것 같았다.
미국 정글을 떠나 새롭게 선택한 자본주의의 정글인 경영학과에서, 나도 잘 살아남고 싶었다.
2. 진작에 수료하고, 반년 동안 학생자치단체장 활동을 잘 마친다는 핑계를 갖고 학교를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한 후, 이미 1년 전에 졸업했다. 정말 졸업’식’만 남아있었다. 어차피 모르는 사람들과 찍을 졸업사진, 동아리를 제외하면 아는 사람 별로 없는 졸업식은 가봐야 학교와 경영대에 대한 서운함만 더할 것 같았다. 조금 특별한 고등학교를 나온 덕분에 이미 서로 울면서 아쉬워하면서 미래를 축복하고 단상에서 전원이 직접 졸업장을 받는 멋진 졸업식을 경험했기에 학사모를 쓰는 졸업식에 대한 미련도 없었다.
3. 그런데 성적우수상을 준다며 학교에 오라고, 졸업식 바로 전날 전화가 왔다. 반복되는 현실에 치여 그저 시간이 가기만 바라보다가, 다시 오지 않을 스물여섯의 나의 시간을 낭비하는것 같아서 무기력해지는 요즘의 나였다. 그런 나한테 '너 이런 사람이었잖아-' 하고 일깨우는 전화 같았다. 에너지라고 느껴지는 것이 내 안에 조금 생겼다.
4. 학번의 일곱번째 자리가 1인데 성적우수상 받은 사람은 나밖에 없을거다. 경영학과는 학번에서 학과를 뜻하는 일곱번째 자리가 0이다. 그 외의 숫자는 타과에서 전과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학번은 마치 빨간 도장 같았다. 내가 경영학과로 입학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마크, 그래서 교수님들도, 같이 팀플하는 학우들도 항상 물어봤다. 그럼 당당하게 말했다, ‘국제학과에서 왔어요’.
‘우리학교에 국제학과가 있어?’, ‘아 그거 캠퍼스 아니야?’, ‘그럼 여기서 공부하기 안힘들어? 학점 받기 힘들텐데~’까지 반응은 다양했다. 그래서 항상 덧붙여 말했다. ‘국제학이 싫거나 캠퍼스를 옮기고 싶었던게 아니라 경영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전과했고, 1년에 두명 뽑아요.’ 그러면 사람들은 그제서야 나에 대한 선입견을 없앴다. 오히려, 하고싶은게 있고 공부 잘하는 대단한 애라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5. 소위 말하는 ‘큰 꿈’을 품고 전과했다. 꿈이 크다는 기준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분명히 큰 꿈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세상 전체를 바라봤고, 세상에 기여하고 싶은 역할이 분명하고, 열정과 포부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긴 하다, 현실을 좀 더 많이 보고 나니 의심이 많아졌지만.)
하지만 경영학과에 오고 나니, 주입식 교육이 시작되었다. 모든 것을 달달 외워서 시험을 보고 심지어 80% 정도의 시험은 객관식이었다. 주관식이나 논술형도 있지만, 개론서에 나와있는 근거나 수업시간에 배운 사례가 아니라 온전한 내 생각을 쓰는 시험은 없었다.
나는 영리와 비영리를 연결하는 사람, 어떤 것이든 혁신적인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여기 온건데, 그 어떤 사람도 '스펙'이 아닌 '성장', '효율성'이 아닌 '혁신', '경제적 가치'가 아닌 '다양한 가치', 보여주기식 사회공헌이 아니라 진정한 사회공헌과 사회혁신을 이야기하지 않는 현실에 답답했다.
6. 졸업장의 ‘경영학, 경영학사’ 두 단어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이들이 노력하는가. 수많은 학우들이 복수전공자 선발에 여러번 도전한다. 어느정도 성적이 되어야 경쟁을 통과할 수 있어서 선발되기도 힘들지만 선발되어도 졸업하기가 힘들다. 4년 내에 졸업하기에는 들어야 할 과목이 너무 많다.
전과 역시 수많은 학우들이 도전하고 일부만이 성공을 맛본다. 4년 전 블로그에 전과했을 당시의 심정을 짧게 남겨놨는데, 그걸 보고 많은 사람들이 질문 댓글을 남겨서 아예 질문을 받는다고 공표하고 매년 5~6명의 질문과 고민을 듣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경영학사만을 바라보는 것은 너무나도 허무하다.
7. 그래서 이것도 저것도 자꾸자꾸 찾아서 했던것 같다. 최근 읽은 책 <일상기술연구소>의 내용에 빗대어 보자면 '일 벌리기' 기술 만렙이 되었다. 좋게 말하자면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어서, 그래서 마음에서 스물스물 올라오는 후회를 잠재우고 싶어서. 물론, 완전히 잠재우는 데는 실패했기 때문에 애증의 경영대가 되었고, 이런 내용의 졸업 소회를 남기고 있다.
8. 덕분에 정말 안해본거 못해본거 없이, 다 해보고 졸업한다.
하고싶은거 하면서 성장해 온 말랑말랑한 사고를 잊지 말자. 현명하게 생각하고, 정확히 표현하고, 말하는 그대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