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음료

by 전화기

아침에 일어나면 물을 한 잔 크게 받는다. 가진 것 중에 가장 큰 컵에 가득 받은 물을 반은 밤 사이의 갈증에 나머지는 아침 물 한 잔이 보약이라는 신성한 말에 기대어 가능하면 마지막까지 마신다. 그러고 나서야 드디어 커피를 마실 자격을 획득하는 것이다.

어디선가 읽었다. 눈을 뜨자마자 커피를 마시면 몸이 스스로를 깨우는 기능을 마비시키기 때문에 가능하면 일어나서 두 시간쯤 지난 후에 카페인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두 시간이라니. 두 시간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인 것 같아서 오늘치의 보약을 먹고 나면 자연스럽게 다음은 커피다.

원래 나의 커피 친구는 캡슐 커피 머신이었다. 한 개에 육백 원 남짓 하는 캡슐과 깨끗한 물을 넣기만 하면 예열 시간도 거의 없이 크레마와 향이 가득한 커피를 만들어 내는 꽤 대단한 친구다. 가장 기본형의 기계임에도 크레마가 어찌나 잘 추출되는지 아직도 마실 때마다 룽고지만 라테 같은 외관에 감탄한다. 이제는 그중에서도 향과 맛이 가장 마음에 드는 캡슐의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어서 바깥에서 커피를 사 먹는 일이 힘들어졌다. 더 비싸고 더 맛없는 커피를 받아 드는 일이 많으니까.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애정 하는 커피 머신 대신 하얀 자기 재질의 드리퍼를 이용해 커피를 핸드 드립 하여 마시고 있다.

드립 커피와의 인연의 제일 처음은 제주도의 민박집이었다.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 민박집에서 족히 15년은 더 일을 했을 것 같은 가정용 드립 커피 메이커로 내린 커피를 한 잔 마셨다. 그해 여름은 우유를 탄 커피에 특히 잘 어울리는 진한 캐러멜향이 나는 스페셜티 커피에 한창 빠져 있을 때인데도 날카롭지 않으면서 분명한 향을 가진 커피를 아주 맛있게 마셨다. 민박집 사장님에게 어디 원두냐고 물었더니 부엌으로 데리고 가서는 예의 그 유통업체의 PB 상품에 쓰이는 커다란 노란색의 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에 태풍 솔릭이 지나가던 후쿠오카에서 진짜 핸드 드립 커피를 만났다. 원래대로라면 버스를 타고 움직여야 했을 거리였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내 손에 들린 것은 고작 양산 겸용 우산이어서 나는 거의 온몸으로 비를 머금고 있었다. 그 날 따라 이상한 길을 안내한 구글 맵 덕분에 버스 세 정거장을 걸어서 카페에 도착했다. 카페는 일 층과 이 층으로 나뉘어서 일 층에서는 원두를 팔고 이 층에서는 주인이 직접 핸드 드립을 해주는 카페로 운영되고 있었다. 떠나기 전 읽었던 잡지에 따르면 원래는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카페였는데 지금은 아저씨가 돌아가시고 아주머니가 남아서 커피를 내리고 있다고 했다. 다만 직원인지 아르바이트생인지 함께 일 하는 사람이 내가 머무는 동안 본 사람만 해도 세 명이나 되어서 안심이 되었다. 아주머니가 커피를 내려주는 바 뒤로는 좋은 표정으로 웃고 있는 아저씨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들어가는 커피의 그램에 따라 나뉜 커피 메뉴 중에서 15그램짜리 한 잔과 30 그램 짜리 한 잔을 시켰다. 두 잔 모두 생각했던 것보다 진했다. 인상 깊었던 것은 역시 30그램짜리 였는데 진하기로는 에스프레소만큼 진하면서 에스프레소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신선한 과일류의 향이 강하게 응축되어 있는 것이 내가 처음으로 진한 커피의 매력을 제대로 느낀 경험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로는 계속 드립 커피였다. 매일 아침 드리퍼에 종이 필터를 접어서 넣고 뜨거운 물로 필터, 드리퍼와 컵을 한번 데운 후에 커피를 내린다. 두어 번 별 맛없는 커피를 마신 후에는 인터넷으로 내리는 법을 찾아보았다. 처음에 약간의 물을 커피가루 전체에 묻혀서 뜸을 들이는 것과 뜸 들인 후 처음 내릴 때에 산미가 추출된다는 것을 배운 후로는 그 두 과정에 더 집중해서 커피를 내리고 있다. 핸드 드립으로 내리는 커피는 어딘가 산뜻한 맛이 있어서 마시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다. 다만 들은 바에 따르면 오히려 핸드 드립의 경우 추출 시간이 길어서 카페인이 더 많이 추출된다고 한다. 나로서는 어느 쪽이건 좋다, 맛만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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