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렇게 어려운 일을 하고 있었다니.
성북구 우리집에서 내가 장을 보기위해 가던 곳은 편의점, 집 앞의 식자재 마트, 한성대입구 역의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한성대입구 역의 우리생협, Lays감자칩을 사기 위한 동대문 홈플러스, 그리고 가끔의 이마트, 일 년에 한 번 정도의 코스트코, 그리고 심심할 때마다 한 번 씩의 쿠팡이 있었다.
과자, 그 중에서도 봉지과자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나에게 편의점 2+1 과자는 일상에서 꽤 큰 기쁨이었다. 격주 정도의 단위로 행사를 진행하는 과자가 바뀌니 틈 날 때마다 가서 과자를 3개 또는 6개씩 주워왔다. 행사의 주기가 내가 특정 과자를 먹고 싶은 주기와 잘 맞아떨어진다고 믿으며(실제로 그렇게 느꼈다) 편의점의 은총을 한껏 누렸다. 두부, 야채 등의 자주 먹는 재료는 생협이 적당한 가격에 좋은 물건을 작은 양으로 팔아서 주로 생협에서 샀다. 고기는 아무래도 생협에서 사기엔 비싼 느낌이어서 한성대입구역의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에서 샀고, 우유는 집 앞 식자재마트에서 4,500원에 900ml 매일 우유 2개 세트를 팔아서 주로 거기서 샀다. 나머지는 필수적인 장보기라기보다는 재미로, 주말에 시간을 보내는 나들이 정도로 차를 끌고 조금 더 멀고 큰 마트를 가곤 했었다. 쿠팡은 아무래도 칫솔, 수세미 같은 생필품이 마트와 비교도 안 되게 싸다보니 그런 물건들이 필요할 때 한번씩 이용했다.
서울에서의 장보기도 요즘의 보통 30대라기엔 아날로그적인 측면이 많았다, 고 생각한다. 같은 음식은 여러번 먹지 못하고(카레도 딱 한 번 먹을만큼만 끓인다), 먹는 일과 먹는 것을 준비하는 과정(장보기, 요리 포함)에서 재미를 느끼는 편이라 한꺼번에 많이씩 혹은 얼마 이상 시켜야 하는 인터넷 장보기 대신 조금씩 자주 직접 가서 보고 사는 것을 선호했다.
간장이나 올리브유 같이 무게가 무거운 용품이 떨어졌을 때 언제든 손을 뻗을 수 있는 인터넷 쇼핑몰이 있고 몰고 갈 수 있는 차가 있었던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이었는지는 홍콩에 와서 깨닫게 되었다.
홍콩에서 내가 주로(그렇다, 이게 다가 아니다) 장을 보는 곳은 야채시장, 홍콩 체인의 슈퍼 네 곳, 일본 체인의 슈퍼 한 곳, 영국 슈퍼 한 곳, 한인 슈퍼 한 곳이다. 이 중에서 선택적으로 가고싶은 곳을 가는 것이 아니라 각 각의 슈퍼에서 구매하는 품목이 나뉘어있기 때문에 모든 슈퍼를 주에 1회 이상 씩 드나들고 있다. 찬찬히 각 슈퍼에서 무엇을 사는지 살펴보자.
먼저 야채시장. 이 곳은 말하자면 한국의 재래식 시장 같은 곳인데 중국산 야채를 가장 신선한 상태로 매우 싸게 판다. 홍콩에는 아마도 동네마다 작게라도 재래식 시장(wet market이라고 부른다)이 하나씩은 있는 것 같다. 이전 동네에서도, 얼마전 새로 이사한 이번 동네에서도 야채는 왠만하면 이런 시장에서 사는데, 슈퍼마켓에서 같은 포장지의 야채를 훨씬 덜 싱싱한 상태로 적게는 1.2배에서 크게는 2배정도까지 차이나는 값에 팔기 때문이다. 한국과 홍콩의 환율은 1:1.5정도인데 홍콩에 사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냥 한국돈 100원과 홍콩 1달러(환율 상 150원)를 똑같이 생각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홍콩의 생활 물가가 한국보다 1.5배 이상 비싸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야채시장은 대개는 한국보다도 싸서 항상 손 한 가득 사와서는 이렇게 중국산 야채를 많이 먹어도 되는건가, 잠시, 아주 잠시만 고민하고 다음번에 또 자연스레 시장으로 향하게 된다. 나는 어제도 야채시장에 가서 양배추, 가지, 애호박, 양파, 마늘, 방울토마토, 버섯 등 우리집 일주일 치의 야채를 만 이천원 정도의 가격에 양 손 가득 사왔다.
다음은 홍콩 체인의 슈퍼들이다. 이름으로 불러보자면 Welcome, fusion, market place, jason’s (이하 웰컴, 퓨전, 마켓플레이스, 제이슨스)들이다. 사실 퓨젼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같은 계열의 슈퍼마켓이다.(세 곳 모두 meadows-한국의 nobrand나 peacock같은-에서 나온 PB상품을 취급하는 것으로 같은 계열이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세 곳에는 겹치는 상품 만큼 겹치지 않는 상품도 많이 있다. 나는 가끔씩 야채시장에서 사지 못한 야채와 생수, 달걀은 집앞의 웰컴에서, 질 좋은 스페인산 냉동 돼지고기는 마켓플레이스에서, 만두나 크로와상, 특이한 아이스크림 등 특별하고 재미있는 식품류는 제이슨스에서 산다. 퓨전은 사실 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한국 식품이 매우 잘 구비되어있어서 특히 좋아하는 슈퍼였는데 이번 동네의 퓨전은 규모는 더 큰데 마음에 드는 상품은 왠지 덜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다른 슈퍼들에 비해 요거트 종류를 다양하게 취급하고 있어서 일주일에 한 번은 요거트를 사기 위해 반드시 들른다. 요즘에는 호주의 Tasmania라는 곳에서 만든 그릭 요거트 1kg들이가 입에 꼭 맞아서 아침을 기다리는 일이 즐거울 정도다.
홍콩은 신선 식품, 가공 식품 할 것 없이 대부분 수입품이 많다. 특히 과자, 파스타 면, 파스타 소스 등 건조되고 유통기한이 상대적으로 긴 가공 식품 등을 주로 취급하는 슈퍼가 두 곳, 이름으로는 759와 360이 있다. 왜 두 곳 다 이름이 숫자로 이루어져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759는 200달러 이상 쇼핑을 하면 멤버십카드를 만들 수 있는데 아마도 홍콩 사람 중에 이 슈퍼의 멤버십이 없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느낄 정도로 항상 슈퍼에 사람이 많고 결제를 하는 사람은 대개 카드를 가지고 있다. 물론 우리도. 이곳의 특이한 점은 멤버십 카드를 내면 매대에 써있는 가격의 20~30프로를 할인해준다는 점이다. 매대에는 할인 후의 가격은 적혀있지 않아서 항상 대충 20%정도를 감하고 이정도 하겠구나, 라고 생각한다. 엄청나게 다양한 일본산 봉지과자를 10달러 안팎의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으며 한국산 감자탕, 쫄면(라면 형태의)도 자주 사는 품목 중에 하나다. 360은 759와 비슷한데 특별한 멤버십이 필요하지 않고 품목이 적긴 하지만 759에는 없는 과자를 팔기도 하고 가끔씩 후르츠링을 아주 싸게 팔며 nabati, 일본의 꼬깔콘 등 매력적인 상품들이 있기 때문에 역시 빼놓을 수는 없겠다.
다음은 일본의 이마트 격이라고 추측하는 AEON몰(이하 이온몰)이다. 처음 이온몰에 갔을때는 홍콩의 작은 규모의 슈퍼들(한국으로 치면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이마트 에브리데이 정도의 규모다)만 보다가 갑자기 이마트 같은 곳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 굉장히 다양한 일본의 물품을 팔고 있으며 한국 두부, 김치 등 한국 식품군도 다른 마트에 비해 훨씬 다양하고 자주 바뀐다. 왠지 세련된 분위기가 가격에 더해져서 다른 곳보다 비쌀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가격을 비교해보니 어느쪽이냐 하면 저렴한 편에 속한다. 퓨전이나 웰컴에서는 50달러가 넘는 닭가슴살을 여기선 42~44달러에 팔고, 퓨전에선 19달러에 파는 한국 두부를 이온에서라면 9.9달러에 살 수 있다. 김치(가끔씩 백김치와 묵은지, 깍두기가 돌아가며 들어오고 가격도 다른 곳에 비해 5달러 정도는 싸다), 두부, 달걀, 닭가슴살, 닭발(한국에서도 먹던 냉동닭발! 처음엔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계산해보니 한국과 동일한 가격이었다. 5,990원과 39.9달러), 한국산 새송이 버섯, Baby arugula 등 좋아하는 식재료를 꽤 다양하게 고를 수 있어서 어쩌면 가장 좋아하는 슈퍼일 수도 있겠다. 가끔씩 할인할 때 사먹는 monteur 디저트(일본 편의점에 파는 식의 디저트류)도 큰 매력이다.
처음 가보곤 이온 만큼이나 놀랐던 곳이 홍콩의 영국 슈퍼 marks & spencer(이하 막스앤스팬서)다. 주로 바깥에서 보이는 매장에는 옷들이 진열되어 있어서 홍콩에서는 역시 안 상하는 옷만 파나보다 하고 지나치곤 했었다. 그러다 어느날 매장 깊숙한 곳에 들어가서 슈퍼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느꼈던 놀라움이란…! 막스앤스펜서는 영국의 고급 슈퍼 체인인데 취급하는 제품이 아마도 전부 다 막스앤스펜서 이름을 단 자체 유통 상품인 것 같다. 그리고 홍콩의 물가가 어찌나 비싸게 상향평준화 되어 있는지 고급스러운 막스앤 스펜서나 일반 슈퍼체인의 물가가 별로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몇몇은 더 싸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우리집은 막스앤 스펜서에서 와인(편집샵 느낌으로 종류가 너무 많지 않고 실패 확률이 매우 낮다), 가끔 원두, 햄버그, 그릭 요거트, 샐러드용 소스 등을 산다. 엄밀히 말하면 막스앤스펜서는 꼭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가는 마트는 아니고 한 달에 한 두번씩 기분좋게 하는 것들을 사는 곳이다. 특히 홍콩에서 유통되는 많은 소고기에서 고기냄새를 느끼는 나에게 막스앤 스펜서의 햄버그는 꽤 고마운 친구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급격하게 세를 펼치고 있는 듯한 한국식품점 한인홍을 빼놓을 수 없다. 코로나로 인해 문을 닫는 가게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근 반년 새에 한인홍은 매장을 3개, 4개, 자꾸 자꾸 늘려간다. 지난번 살던 곳에도 세달 전 쯤 새로운 매장이 열었고 이번에 이사온 곳에도 매장이 열 준비를 하고 있다(어디있는지 이미 다 봐두었다)! 한인홍은 핫도그, 제육볶음, 돼지갈비, 갈비탕, 낙지볶음, 명란젓, 잡곡, 콩국수, 냉면, 간장게장, 간장새우 등 그냥 모든 제품이 다 감동이다. 생각보다 가격도 비싸지 않고 이런게 있는줄 알았으면 한국에서도 사먹었을 것 같은 준수한 맛과 퀄리티의 제품이 가득하다. 정말이지 한국의 대형 마트에서 파는 간편식들이랑은 비교가 되지 않는 퀄리티다. 명랑 핫도그가 그리웠을 때 한인홍의 모짜렐라 핫도그가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를 주었는지, 칠갑농산의 콩국수는 자꾸 먹다보니 진주집 콩국수 만큼이나 맛있는 것도 같고, 낙지볶음은 또 어찌나 낙지가 싱싱하고 실하며, 명란젓은 하나도 안 터지고 예쁜게 맛도 좋은지, 하나 하나 처음 먹었던 순간을 모두 나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홍콩은 한국이랑 가까워서 그런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질 좋은 한국산 음식을 (홍콩 물가 대비)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즐길 수 있다. 나는 그야말로 한인홍에 무한 감사와 애정의 마음을 갖고 있다.
정말로 이렇게나 긴 글이 될 줄은 몰랐다. 레몬이나 버터류를 사는 집 앞의 프랑스 슈퍼 라던지 가끔씩 시내에서 구경하듯 쇼핑하는 City super 등은 다 뺐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최근에 듣기로는 홍콩의 마켓컬리를 꿈꾸는 유명한 가게들의 순대국, 대창, 김치찜을 파는 온라인 쇼핑몰도 새로 오픈했다고 한다니까 곧 내 장보기 슈퍼 목록은 더 길어질 예정이다.
이렇게 매일같이 착실하고 고되게 장을 봐다가 집에서 열심히 한식과 샐러드를 해 먹는다. 식단으로 치자면 거의 한국에 있을 때와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처음에는 고기 냄새가 난다고 느껴서 고기를 잘 못 먹었던 때도 있었고 슈퍼마다 없거나 부족한 것들이 많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이제는 어떤 고기를 사면 되는지(의외로 냉장 고기보다 스페인산 냉동 고기가 냄새도 나지 않고 제대로 맛있다)도 알고 어디서 무얼 파는지도 대충은 알고 있어서 날로 날로 더 맛있는 것들을 해먹고 산다. 가족과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잘 먹으면 환경이, 혹은 마음이 척박한 곳에서도 건강하게 웃으면서 잘 살 수 있을테니까.
ps. 글을 마치고 깜짝 놀랐다.
서울에서 내 장보기는 꽤 간단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적어보니 복잡했고, 홍콩에서 내 장보기는 적당히 고되고 복잡했던 것 같은데, 상상 이상으로 복잡하다. 엥겔지수가 먹기 위해 사용하는 에너지의 양까지 포함한다면 나도 꽤나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