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책.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모신 하미드 중편 소설

by 전화기
주저하는 근본주의자.jpg 출처. 네이버 책

최근 연희동에 자리잡은 밤의 서점에 다녀왔습니다.


연희동은 대학 시절 129-11(카페 이름입니다)에 한창 빠져 있을 때 종종 가던 동네에요.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 쪽 공간에는 벽에 쏘여진 빔으로 영화 영상이 흐르고 있고, 왼 쪽 공간의 4개의 일인용 테이블과 창가 테이블에는 보통 과제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어요.

저는 그 공간이 주는 느낌이 좋아서 오직 그 공간에 있기 위해 때로는 커피를 시키고, 또 가끔은 브런치 메뉴를 시켜서 볕이 좋은 오후부터 어두워진 저녁까지 앉아 있었습니다.

거기 앉아서 무엇을 했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네요.


그러다가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남자친구와 함께 아주 오랜만에 129-11을 함께 갔습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과거의 내가 좋아했던 공간에 함께 가고 싶었거든요.


아주 더운 날이어서 흑임자 빙수를 시켰습니다.

그 날은 처음으로 카페의 오른 쪽 공간에 자리를 잡고 앉은 날이기도 합니다.

분명 전에 혼자 먹었을 때 비록 빙수 전문점처럼 얼음이 부드럽고 완성도 있는 빙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성이 들어간 느낌이 전해지는 빙수였었는데, 오랜만에 자랑하고 싶은 사람을 데리고 와서 함께 먹은 빙수는 얼음도 군데 군데 뭉쳐있고 대충 만든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어요.

물론, 그럼에도 함께여서, 그리고 날이 아주 아주 더웠기에, 아주 맛있게 마지막까지 잘 먹었습니다.


연희동 이야기를 꺼낸 것은 제가 밤의 서점에서 만난 책 때문입니다.

어두운 골목에 반짝일만큼 예쁘게 자리잡은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첫 번째 선반에서 민음사 판본의 자기만의 방을 발견했어요.

여기서 중요한 건 자기만의 방이 아닌 ‘민음사’입니다.


아직 남아있는 부모님 댁의 제 방에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0권이 묵직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20대 초반, 홈쇼핑을 보다가 채널을 돌리지 못하고 침만 흘리고 있는 저를 보고 엄마가 사주셨었거든요.

그리고 후에 나온 모던 클래식 시리즈도 비록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좋아하는 시리즈구요.

그 이후로는 다른 시리즈가 나오고 있는 줄은 몰랐는데, 쏜살문고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시리즈의 책들을 출판하고 있었더라고요.

한권 한권 표지들이 어찌나 감각적인지 크게 확대해서 방에 붙여놓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밤의 서점에는 네 권 정도의 쏜살문고 시리즈 책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모두 200장도 되지 않을 만큼 짧아서 당장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들게하는 책들이었어요.


이쯤되면 제가 빌려읽은 다음 책이 쏜살문고 시리즈 책이어야만 할 것 같지요?

하지만 그저 도서관 서가를 서성이며 다음 읽을 책을 고르는 저는 아직 등빛 도서관에서 쏜살문고 책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모던 클래식 시리즈의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를 발견했지요.


실례합니다만, 도와드릴까요? 아, 저 때문에 놀라신 모양이군요. 내 수염 보고 놀라지 마세요. 나는 미국을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주저하는 근본주의자의 도입부를 옮겨 적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주인공은 책 첫머리부터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찬게즈가 미국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아무리 눈치없는 사람이라도 알아차릴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찬게즈는 파키스탄 출신의 청년입니다.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에 진학을 하게 되면서 그의 삶의 터전은 파키스탄에서 미국으로 옮겨왔습니다. 우수한 대학 성적과 곧고 정직한 성품 덕분에 모든 학생들이 탐내는 일자리를 얻어 졸업 후에도 미국에서의 삶을 이어갑니다.


그의 직업은 회사들의 가치를 평가하는 일입니다. 대개 그 회사의 가치를 평가해서 다른 자본에게 회사를 넘기기 위한 작업이기에 엄밀히 말하면 위기에 처한 회사들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그의 업무입니다. 그 일을 하는 댓가로 그는 프린스턴 대학 졸업생 중에서도 손에 꼽힐만큼 많은 연봉을 약속받습니다.


미국에서 찬게즈의 인생에 중요한 한 사람을 만납니다. 에리카 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입니다. 에리카는 펜트하우스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뉴욕 상류층의 일원입니다. 찬게즈는 한눈에 고상한 아름다움을 가진 에리카에게 반하고, 에리카도 조용하고 예의바른, 또래의 남자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찬게즈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알아요?”
나는 그녀에게 뭐냐고 물었어요.
“여기 혼자 있고 싶어요. 이 섬 중 하나에 방을 하나 세내어 글만 쓰고 싶어요.”
나는 그녀에게 그러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어요.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어요.
“나는 혼자 있는 건 잘 못해요. 하지만 당신은.”
그녀는 이렇게 말하다가 고개를 기울이고 팔을 포갰어요.
“당신은 괜찮을 것 같아요.”

(p.21)


에리카는 찬게즈를 그녀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안내합니다. 그녀의 집에 초대해서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 미술관의 오프닝 파티에 그를 대동하기도 합니다. 찬게즈의 표현에 따르면 ‘인사이더의 세계’이자 ‘다른 방법으로는 찬게즈가 접근하지 못했을 도시의 세련된 중심부’로 에리카가 그의 손을 잡고 데려간 것이지요.


직장과 에리카, 완벽한 것 같은 찬게즈의 삶에 균형이 깨어지는 시기가 찾아옵니다. 독자를 주인공에게 이입하게 만든 후에 주인공의 삶을 무너뜨리는 것이 작가들의 특기기도 하니까요.


찬게즈의 삶을 혼돈으로 끌고 들어간 사건은 모든 혼돈의 시작이 그렇듯이 별 것 아닌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 사건이 별 것 아니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저 찬게즈가 받아들이기에 그 사건이 찬게즈의 삶을 한꺼번에 망치로 부스러트린, 그런 결정적인 한 방의 사건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는 말입니다. 젠가에서 한 조각을 살짝 건드려서 전체 탑이 한번 움찔 한 정도, 딱 그 정도의 흔들림이었지요.


“텔레비전을 켰을 때 처음에는 영화가 나오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계속 보니까, 영화가 아니고
뉴스더라고요.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쌍둥이 건물이 하나둘 무너지더군요. 그때, 나는 미소를
지었어요. 그래요, 혐오스럽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의 첫 반응은 놀랍게도 즐거움이었어요.”

(pp.66-67)


미국의 명문 대학에서 최우등 장학생으로 졸업하고, 미국의 다른 어떤 학생들보다도 높은 연봉을 받으며 미국의 회사에서 일하고, 미국 여자를 사랑하고 있었던 찬게즈는 누군가가 미국을 무너뜨리는 현장을 목격하면서 즐거움을 느꼈다고 얘기합니다.

놀라움도, 슬픔도 아닌 즐거움이 그의 첫 반응이었다고요.


그런 그의 반응을 알아채기라도 했다는 듯이 이제까지 그가 속해있었던 미국은 전에 그에게 보내던 은근한 시선이 아닌 노골적인 차별으로 그를 보복합니다.

출장에서 돌아오는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공항에서 추가 심사를 거쳐야 하고, 직장에서도 이제서야 그를 미워해도 되는 이유를 찾았다는 듯이 그를 완전히 외부인이자 적으로 대하지요.

그가 사랑하는 여인 에리카와의 관계도 그를 도와주지는 않지만 이 얘기는, 러브 스토리는 모든 소설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므로 책에게 남겨두기로 하지요.


고백하건대 저는 거대한 역사적인 사건 속의 개인을 드러내는 소설을 좋아합니다.

김연수 작가의 ‘꾿빠이 이상’, 그리고 조너선 사프런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수 없게 가까운’같은 소설들이요.

비슷한 종류의 책들과 비교했을 때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는 상대적으로 노골적으로 사건이 드러나는 소설입니다.

저도 찬게즈와 함께 뉴스를 보고 있었을 만큼 피부에 와닿는 사건에 관해서 분명히 존재하지만 터부시되는 관점에서 이야기를 적어내린 것이 신기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소설입니다.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인 찬게즈가 상대방에게 대화를 건내는 형식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일종의 모노드라마처럼요.

저로서는 낮선 문체였는데 중간에 늘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꽤 좋은 힘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더군요.

찬게즈의 일과 사랑 얘기 뿐만 아니라 중간 중간 대화 상대방에게 건내는 말, 웨이터에게 건내는 말도 더해져서 지루할 틈이 없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찬게즈가 엄청난 스토리 텔러라는 점은 제가 보증합니다.

찬게즈의 얘기를 빨리 더 듣고 싶은데 책 속에서 계속해서 조성되는 어떤 공포감 때문에 이야기가 중간에 끊길까봐 계속해서 마음을 졸이게 되는 점도 이 책을 더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읽어 보시면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실거에요.


저처럼 역사 속 개인의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 특이한 문체의 소설을 읽어보고 싶으신 분, 짧은 소설을 찾고 계신 분, 매력적인 스토리 텔러를 만나보고 싶으신 분께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를 읽어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첫 번째 책. 켄트 하루프의 '축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