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할 마음을 먹는 게 나라고 쉽지만은 않았다.
아이의 아빠이고, 남들 보기엔 멀쩡한 대기업 다니는 평범한 남자인 남편이 주는 울타리가 아주 필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둘째가 초등학교 1학년이어서, 집에서 잘 보살펴주고 싶어서 운영하던 학원도 잠시 접고 있는 터였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월급이 없다면 다시 학원 일을 하든, 부동산 일을 배우든 일을 해서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고, 아이들에게는 지금보다는 훨씬 소홀해질 것이다. 워킹맘도 힘든데, 싱글 워킹맘이 되는 것이다.
주거 환경도 마찬가지. 신혼 초부터 갈아타기를 수차례, 드디어 내가 원하는 곳에 마련한 내가 애정해 마지않는 이 집도 아마 매도해야 할 것이다. 매수부터 인테리어 공사까지 한 땀 한 땀 내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을 감수하기로 했다. 아이는 내년이면 2학년이 되어 엄마 손길이 조금은 덜 필요할 것이고, 좁은 집이어도 우리 셋 마음 편히 지낸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이다.
이혼녀라는 사실이 나에게 주는 모든 불이익을 인정하고 수용할 때, 진짜로 이 세상에 처음으로 홀로 서기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이 복잡할 땐 빈 종이에 표를 그려 이대로 같이 살기 vs 이혼하고 홀로서기의 장단점을 써 내려갔다. 아무리 비교하고 생각해도 이제 난 홀로 서야만 했다.
이혼소장이 거의 다 작성됐을 무렵, 동생과 친정 부모님께 사실을 알렸다. 힘든 일을 미주알고주알 말하지 않는 성격에, 그냥저냥 잘 지낸다고 생각하던 부모님의 충격이 말이 아니었다.
엄마는 그동안 이렇게 힘든 걸 몰라줘서 미안하다고 우셨다. 하지만 역시 딸이 이혼하는 것은 싫은 듯 아이들과 함께 유학이라도 가는 건 어떠냐 하셨다.
아빠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듯, 김서방이 정말 그랬냐, 이게 언제 적 일이냐, 지금 일어난 일도 아닌데 왜 이제 와서 그러냐라는 반응이었다.
이 즈음엔 내 결정도 어느 정도 섰고, 일도 진행이 돼 가는지라 몇몇 지인들에게도 마음을 털어놨다.
그래도 애들 아빤데 이혼은 좀 아니지 않냐, 아빠가 애들 때리는 거 말을 안 해 그렇지 어느 집이나 있다, 남자 애들에겐 아빠가 필요하다는 반응들엔 아무리 내 마음이 확고했어도 쉽게 마음이 무너졌다.
이 말들이 진짜 나를 위한 말들인지, 자신들이 세상을 보는 시각을 투영해서 하는 말들인지 구분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