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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형 Feb 20. 2021

그 여인의 이름

<나의 기억 현상소> 제2화

곡주사라 했다. 하지만 대구시 덕산동 염매시장 골목의 좁고 허름한 술집이자 밥집인 그곳 간판에 페인트로 적힌 이름은 성주 식당이었다. 전직이 별 두 개 군인이었던 검은 선글라스의 사내가 18년째 대통령을 하던 때였다. 


막걸리에 부추 지짐에 간장 종지에 콩나물국과 밥을 한 상 그득 내오는 주인 여자는 사람들이 아지매라 부르면 아지매가 되고 이모․고모․숙모라 부르면 이모․고모․숙모가, 할매라 부르면 할매가, 누님이라 부르면 누님이 되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혼자 곡주사를 찾아왔다. 

“이모, 나, 갔다 올게요.” 

제 차례가 왔다는 뜻이었다. 

순결한 양은 번제의 때가 오면 순명하게 마련이다. 

“꼭 그래야 하겠나.” 

이모는 김 나는 흰쌀밥을 고봉으로 담은 밥상을 차려 내왔다. 

“부디 몸조심하거래이.” 


청년이 가야만 했던 곳은 경찰서와 고문실과 법복을 입은 꼭두각시가 좌정한 재판소를 통과해야만 가까스로 닿을 수 있는 감옥이었다. 독재 타도, 선글라스는 물러가라. 입 닫은 상아탑, 고개 숙인 세상을 향해 이 한 마디를 토설한 대가였다. 


그 열혈 청년들은 본래가 낭만적 시인이어서 성주 식당을 다른 이름으로 장엄하고도 싶었다. 곡주사. 시대를 통‘곡’(哭)하고 저‘주’(呪)하는 청년 지‘사’(士)들의 아지트, 해방구인 곡주사(哭呪士). 여기엔 꼭 막걸리라는 ‘곡주’(穀酒)가 있었으니 곡주사(哭呪士)는 곡주사(穀酒寺)로도 장엄되었다. 술에 시에 노래에 춤도 덩실거리다 보면 눈물도 쏟아지는 것이어서 그곳은 또한 청정한 도량[寺]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구중궁궐에서 한 방의 총성이 울렸다. 터질듯한 먹구름에 구멍이 난 것이었다. 소나기가 쏟아졌고 곡주사에선 환성이 터졌다. 해방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선글라스가 쏟아낸 역한 피, 그 피를 먹고 자라온 독충들은 어둠 속에서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5월 봄날, 곡주사 아지매는, 아니 이모는, 아니 누님은 땀내 나고 기름때 묻은 몸빼를 가만히 벗고 장롱 속에 개켜만 놓았던 치마저고리를 꺼내 단정히 차려입었다. 검은 선글라스를 낀 자들이 몰고 온 지프차에 올라타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도살자였고 그 도살장으로 곡주사의 조카들이, 동생들이, 청년들이 줄줄이 끌려오는 것을 핏발 선 눈으로 보아야 했던 세모시 옥색치마의 고운 여인의 이름은 순옥, 정순옥이었다. 


이토록 정직하고 순정하고 옥처럼 빛나는 이름도 있을까. 


도살자들이 벌겋게 단 인두로 지지고 군화발로 으깨고 구더기 끓는 욕설로 능멸한 이름이었고 그 때 염매 시장 골목을 사랑한 열혈 청년과 날품팔이 노동자, 노점상들에겐 천의무봉, 아득한 고향이 된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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