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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형 Feb 21. 2021

검찰관 나리

<나의 기억 현상소> 제3화

멀리서 보면 토끼를 닮았다고도 하고 둘도 없는 호랑이 형상이라고도 하는 조그만 나라 남쪽에서였다. 한 여인을 검찰관 나리는 심문했다. 


“북쪽의 강물이 어떻게 깨끗할 수가 있습니까?” 


그녀는 어릴 적 리틀엔젤스 단원으로 40여 개 나라를 순회공연했고 중년이 되어서는 재미교포로서 고국의 북쪽을 일곱 차례나 방문했었다. 법의 창고 구석진 곳의 한 문구에 따르면 북쪽은 적국이었다. 검찰관 나리의 강철 머릿속에는 정언명령 하나가 도사리고 있었다. 


적국의 강물은 깨끗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유유히 흐르는 맑은 강들을 포클레인 탱크 부대가 마구 파헤치고 유린한 것은 적국에서가 아니었다. 


어째서 검찰관 나리는 가슴에 작은 천사가 깃들어 있는 사람을 미워하게 된 것일까? 그에게도 리틀 하고 엔젤 한 시절은 있었다. 어른들이 수재라는 올가미로 목을 조아오기 전, 음산한 육법전서와 애국의 갑옷을 걸친 권력의 마약을 맛보기 전이었다. 


일찍부터 가슴보다 머리가 발달했던 그는 영화 ‘대부’(Godfather)를 유독 좋아했다. 마피아 중간 보스와 부패한 경찰서장을 한 방에 보내 버린 젊은 살인마 알 파치노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고급 술집의 고매한 마담의 얼굴에다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그는 말하곤 했다. 


“마피아 중에는 매력적인 놈도 있단 말이야. 하지만 놈들은 쓰레기야. 우린 합법적으로,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만 총기를 난사하지.” 

    

그러나 때론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리틀 엔젤의 노랫소리가 들려오곤 하는 입술 붉은 마담은 얼음처럼 차가운 이성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녀 안의 만만찮은 천사는 이마를 빛내며 말하는 것이었다. 


‘네 놈의 애국 때문에 강물은 썩어가고 섹스도 사랑도 추문이 되는 거야. 네 사타구니에 달린 흉기 같은 시시한 물건이 애국의 보증수표일 순 없는 거고. 나는 새끼 손가락 하나로 널 무너뜨릴 수 있어. 하지만 그 전에 넌 내 목뼈를 부러뜨리겠지.’ 

     

연꽃은 진흙에서 활짝 피어난다. 이 같은 불가사의는 도처에 있다. 악마의 머리 위로는 반드시 날갯짓을 하는 천사가 있다는 것. 


검찰관 나리의 늙은 하수인들이 부실한 식도로 급히 밀어 넣은 애국이란 섭취물을 길거리에 웩웩 토해내던 그날도 그랬다. 이를 보다 못해 싱그러운 처녀의 몸으로 진토 세상에 현현한 천상의 리틀 엔젤이 있었다. 


“애국이란 태극기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그 광경을 목도하고는 붓다가 영산회상에서 행한 염화시중(拈花示衆: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임)의 장면을 연상했다지만 그녀는 손수 만든 피켓을 들고 서 있었을 뿐이었다. 악다구니로 애국하는 ‘어버이’들과 그들이 낳은 남아인 검찰관 나리 앞에서 가만히 웃어 보였다는 말이다. 그 천사의 이름은 ‘효녀’였다. 


검찰관 나리의 진짜 대부(Godfather)가 애지중지했을 큰 따님이 빈털터리로 영어의 몸이 되기 몇 달 전인 2016년 1월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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